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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Nov 26. 2020

Home hospice, day 12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다 울었다

- 2020년 1월 췌장암 말기 선고 받으심. 평소 아무 병력 없던 시어머니라 당신 포함한 가족 모두 큰 충격.

- 보험 문제 해결, 병원 지정, 함암치료제 투약 위한 central catheter line 수술 등 과정을 거친 뒤 3월부터 항암 치료 시작. 정말 강하게 잘 버티심.

- 항암 받으신다는 사실 외에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생활. 자주 피곤해 하시고, 여러 약을 하루종일 드셔야 했지만 평소처럼 부지런히 집안일도 많이 하시고 가족들 생일마다 젤리 케익도 만들어주심. 엄마 재택근무로 일 하는 동안 세찬이도 친할머니랑 숨바꼭질 하는걸 좋아 하고 또 어머니도 기력 되시는대로 아이와 놀아주심.

- 9월에 61세 생신 파티.

- 10월 중순, 심한 복통으로 병원 입원, 배변 주머니 수술 받으심. 코비드19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인 병문안만 허용 됨 (오후 4-8시 사이에 방문자 1명). 보통 시아버지가 매일 가시고 가끔 시어머니의 세 아들들도 돌아가며 방문. 병원 입원 중 함암 치료는 임시 중단.

- 10월 말 남편 생일에 퇴원 하심. 몇주간의 병원 생활로 몸 많이 약해지심. 아주아주 천천히, 사람들 부축 받으면서 겨우 걸으실수 있게 되심.

- 2일 뒤, 전보다 더 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재 입원. 감염이 확인 되어 급하게 drainage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입원. 코비드19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안정이 필요하신 상태인지라 isolation unit에 1주정도 계심. 가족들도 하루 최대 1시간 방문만 허용 됨 (window visit only). 항암 치료는 아직도 중단 중 (10월 초에 마지막으로 받으심).

- Ventilator 극적으로 떼어내시고 서서히 회복, 중환자실(ICU)에서 PCU로 옮기심. 침대에서만 생활 하신지 몇 주째라 그런지 이제 침대 밖에서 몇 걸음 옮기는것도 너무 힘들어하심.

- 퇴원 얘기가 나오며 병원 case manager과 전화 소통. Hospitalist 의사가 전화 와 paliative phase 권유 함. Oncologist에게 전화 해서 자세히 견해를 들어보니 hospice 권유 함. 암이 너무 많이 진전 되어 항암 치료가 소용 없는 단계라고 함. 전화로 듣고 있던 나도 울고 남편도 욺. 남편의 눈물을 보는건 언제나 힘듦.

- 시설에 들어가는 것 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싶어하시는 당신의 (또 가족들의) 뜻에 따라 home hospice 계획으로 퇴원 하심. 앰뷸런스로 집까지 퇴원 하심. 병원 침대와 다른 필요 물품들 hospice 시설에서 제공 받음. 정기적으로 물품들 (한달 한번 + as needed) 집으로 배달. 정기적으로 간호사들 집으로 와서 hospice care 도움 (최소 주 2회 + as needed 24/7).


***


저녁에 둘째 세진이 젖 먹이고 시어머니 계신 1층으로 내려와 첫째 세찬이랑 놀아주고 있었다. 세찬이는 요즘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또 사진첩에 들어가서 사진들 수정 하고 (좌우 정렬 바꾸기 등), 삭제 하고 하는 것에 맛들렸다.


이번 주말에 친정에 내려갈 참이라, 남편이 창고에서 둘째를 위한 간이 침대(bassinet)를 꺼내왔다. 남편이 간이 침대를 닦고 조립 하는동안 세찬이가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서 (간이침대 다리 하나를 집어들고 자기가 닌자 거북이라며 무술을 하려는 등) 관심을 분산 시키려 세찬이 애기때 간이침대에서 자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학교 가있는동안 시어머니가 나에게 페이스북으로 보내주신 사진&메세지를 캡쳐 해놓은 사진도 있었다.

“엄마 안녕! 먹고 목욕하고 이제 자고있어요. 몸조심해요! 뽀뽀”


침대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께 이 사진을 보여드렸다. 기쁘고 슬픈, 또 다른 여러 감정이 섞인 침묵.


세찬이의 어릴때 사진 속엔 긴 생머리 곱게 묶으신 시어머니가 계셨다. 시어머니는 그 사진들을 보시며 “사진들 많이도 찍었구나” 하셨다.


남편이 세찬이랑 목욕 하러 2층에 올라가고, 나 혼자 어머니 침대 곁에 남았다.

어머니 손을 잡고 다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다. 약대 2학년 초 계획 없이 찾아온 세찬이. 임신중 학교 다닐때 과일 간식들을 늘 챙겨 주셨고, 또 출산 후에도 내가 학교 공부로 또 로테이션으로 바쁠 때 세찬이를 돌봐 주신 어머니. 어머니 덕분에 약대 졸업을 무탈히 할수 있었다. 졸업 하고 레지던시 할때도 어머니 빽 믿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 오기도 하지 않았는가.


어머니는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하며 어머니 병 간호 도와줘서 고맙다 하신다. 시아버지나 남편이 하는것에 비하면 내가 하는건 새발의 피 인데.


아직도 강인하게 하루하루 버티시고 계신다.

장난기 많던 어머니의 눈은, 비록 몸은 침대에만 있을지언정, 아직도 초롱초롱.

그 초롱초롱한 눈에 눈물이 고여 더 빛난다.

“너의 두 아이들 잘 챙기렴. 난 오래 못버틸거같아. 남편도 더 많이 사랑해주고. 지금처럼만, 좋은 아내로 쭉 지내주길 바란다. 또 너의 시아버지... 곧 혼자 될 사람인데 시아버지도 꼭 돌봐드리길 부탁 한다. 곧 혼자 될 사람이니까...”


어머니랑 나 둘이서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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