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플랫 화이트
“안돼! 그만!”
“엄마가 안 된다고 했지?”
“또 그러면 혼난다!”
저는 오늘도 소리를 지릅니다. 지금 저는 둘째를 혼내는 중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가끔은 엉덩이를 살짝 때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죠. 둘째를 한마디로 말하면 천방지축, 철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말썽만 부리니 걱정입니다. 언제쯤 철이 들까요?
혹시 예상하셨나요? 맞습니다. 둘째는 저의 반려견입니다. 이름은 포도, 포메라니안 견종으로 하얀 털과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죠. 나이는 11살, 사람 나이로 하면 80세에 가까운 할아버지 강아지입니다. 우선 포도를 만난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조르기 시작했어요. 저는 딸이 7살 때 강아지를 입양하고 파양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막연하게 외동딸에게 동생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동네 펫삽에서 이쁘다는 이유만으로 입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아지의 짖음과 배변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강아지를 키우는 방법이나 견종에 대한 정보도 없이 덜컥 입양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매일 밤, 강아지는 낑낑거렸고, 거실 여기저기에 대소변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훈련해도 안 되더라고요. 한 달 정도 됐을 때, 저의 스트레스는 한계에 달았고 파양을 결정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잘 키우겠다는 분을 찾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면 혹시 학대받을까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좋은 분에게 보낼 수 있었어요. 그 아이를 보내는 날, 우리 가족은 많이 울었어요. 딸은 엄마 때문이라며 원망했고, 저는 죄책감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조금만 참았다면 지금쯤 저의 반려견이 되었을 텐데, 딸에게도 강아지에게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파양을 했었기 때문에 다시 입양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입양하더라고 가정견이나 유기견을 데려오자고 생각했어요. 두 달 정도 입양·유기견 단체를 알아보고 견종 공부도 했습니다. 다시는 파양이라는 잘못된 일을 하면 안 되니까요. 긴 시간을 고민했고, 드디어 가정에서 태어난 포도를 만났습니다. 처음 포도를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얀 털을 가진 솜뭉치.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딸은 혹시나 떨어트릴까 소중하게 가슴에 품었어요. 비눗방울을 손바닥에 놓고 살금살금 걷는 것 같았어요. 그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포도와 가족이 되었고, 조그마한 생명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게 했어요.
포도를 만나고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11년 동안 포도에게 받은 게 정말 많아요.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니 건강해지고,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어요. 동물을 사랑하게 됐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동물과 공존하는 것이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리고 외롭지 않아요. 가끔은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포도는 저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어느샌가 옆에 와서 알사탕같이 동그란 눈을 빛내며 저를 쳐다봐요. 저는 포도를 꼭 안고 털에 얼굴을 묻어요.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으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몇 가지 잃은 것도 있네요. 깨끗했던 피부를 잃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산책하니 얼굴은 기미와 잡티에 점령당했습니다. (나이가 드니 요즘 부쩍 신경이 쓰이네요^^;) 깔끔한 성격도 사라졌죠. 가끔은 포도 엉덩이에 묻은 ddong을 닦느라 손에 묻기도 합니다.^^; 딸의 기저귀도 더러워했던, 한 깔끔했던 제가 아무렇지 않게 포도의 엉덩이를 닦을 때면 실소가 나옵니다. 그리고 늦잠을 잘 수 없어요. 주말이라도 느긋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싶잖아요. 그러나 저와 남편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도 7시만 되면 저희를 깨워요. 혹시 시계를 볼 줄 아는 게 아닌가 하고 남편과 농담과 의심의 경계를 넘나드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포도는 거실과 안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작은 소리로 “윽! 윽!”이런 소리를 냅니다. 마치 “일어나거라. 이 어르신은 일어났는데 젊은것들이 아직도 자냐? 빨리 안 일어나냐?”라며 호통을 치는 것 같습니다.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고 목줄과 배변 봉투를 들면, 포도는 기쁨의 꼬리 돌리기를 하며 현관 앞으로 뛰어갑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더 자고 싶지만 어쩌겠습니까.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바로 산책하려 나가야 합니다.
강아지 눈이 동그란 이유를 아시나요? 처음에는 강아지도 늑대처럼 눈이 옆으로 길었다고 해요. 그러나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환경이 되면서 사람에게 의지하고 사랑받기 위해 눈을 맞췄고, 점점 동그랗게 진화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포도는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저 눈빛은 간식을 원하는 눈빛이네요.
요즘 저는 포도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예방접종 한 번 빠진 적 없고, 사료나 간식도 신경 써서 줬습니다. 하지만 사람처럼 동물도 나이가 드니 없던 질병도 생기고 기운도 예전 같지 않네요. 사람의 인생 주기에 비해 너무나 짧은 삶, 11살인 포도에게는 더 짧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그날에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도록 더 많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포도가 짖기 시작하네요. 저는 또 혼을 내야겠어요. 혼내지만 웃음도 나고 행복합니다. 계속 혼낼 수 있길, 그리고 더 오래 저희 가족과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