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일기(1)

엄마

by 향긋

30년 평생, 취미로 가장 오래 배운 것은 연기였다. 술집 오픈 직전까지 무려 6개월을 다녔다. 그래봤자 6개 월일수도 있으나 쉽게 흥미를 느끼고 쉽게 흥미를 잃는 나로서는 최장 기간이었다.


첫 달에 기초반 두 개를 듣고 바로 고급반으로 올라가 했던 수업 중 하나 과거의 나를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특정 시점의 나를 골라, 그때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되도록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내뱉는 형식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는 나를 비추는 조명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 한가운데, 그 속엔, 26살 여름의 내가 앉아있었다. 그 당시 막 헤어졌던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해 힘들어하는 내가 앉아있었다. 그때에 비해 아주 조금 괜찮아졌을 뿐인 30살의 내가, 과연 해줄 말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말은 술술 나왔다.


"걔 너 없이도 잘 살아. 죽지 않고 잘 살더라."


라고 시작했던 거 같은데,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몇 마디쯤 뱉었을까,


"괜히 엄마한테 화풀이하지 마."


말을 하며 놀랐다. 나에게 너무 아픈 일이었기에 엄마도 나도 나만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엄마 연기 학원에서 나 스토킹 당했던 때를 떠올렸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얘기를 하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화풀이하지 말라고 말했어. 그때를 내가 후회하고 있었나 봐. 미안해."


수업이 끝난 후 엄마에게 전화했다.


"화풀이할 대상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앞으로도 엄마한테만 화풀이해. 남자 친구도, 친구도 뒤돌면 결국 다 남이야. 엄마가 다 들어줄게."


엄마의 대답을 듣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감사했다.

동시에 내가 남을 위로할 때 느꼈을 상대방들의 감정들까지 감히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래서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어떤 상황이든 남을 위로할 정도의 마음 한 뺨 정도는 남아있던 거구나. 그건 바로 내가 쉴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나는 내가 참 잘 컸다 여겼는데 참 잘 키워주셨구나.


그날의 감동은 아마 영원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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