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도피자를 위한 변명
중학교 도덕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할수있는 말을 생각해보라고 했고
잠시후 아이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나는 기꺼이 손을 들고
“힘든 사람에게 잠시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곳이 참 많습니다.
조금 쉬다오면 머리가 맑아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 그럴수 있구나, 자 다음?” 이라는 상황을 기대했다면 완벽히 틀렸다.
선생님은 모두 앞에서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여행이라니 현실 도피적이고, 힘든 상황과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조언이다.
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니!!!”
당시 나는 분명 혼이 나고 있었고,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반 전체의 분위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책상 밑으로 숨던지 차라리 교실을 나가버리던지 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수업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그 다음 상황은 전혀 기억에 없다.
아니 도대체 중2가 현실을 얼마나 알겠으며.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이 행여나 도움이 안된다 해도
선생이란 사람이 그런 단어선택을 하면서까지 면박을 줄수 있단 말인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차갑고 조금의 아량도 없는 선생의 말투와 표정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나이가 드니 그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겠지 싶다가도
그로 인해 생긴 응어리진 마음을 풀 생각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같은 질문에 3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다른 답을 하게 될까?
물론 이제 나는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어떤 말도 쉽게 내뱉지는 못한다.
누구에게나 여행을 가라고 하지 않을만큼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고민을 같이 해볼만한 아량도 생겼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상황에 맞게 “여행이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시절에 나처럼 해맑게 대답하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중학생 때와 다르면서도 여전히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장소를 잠시만 벗어나도
그 무게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음을 살면서 여행을 통해 여러번 경험했다.
때로 대상이 있다면 맞서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게 있다쳐도,
그렇지 않다면,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힘든 일은 반드시 싸우고 견디고 이겨내야 끝이 나는 게 아니었다.
그럴 때 다녀온 여행은 삶의 힘듦을 이겨낼 또 다른 힘을 조금은 생기게 했다.
여전히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볼 때는 한가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빡빡한 세상에 조금은 숨 쉴 틈이 있지 않을까.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힘들 때 어떻게 하나요? 여행을 가보지 않을래요?”
“당신은 여행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