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일상이 주는 불안감을 늘 옆구리에 달고 살았다. 숨돌릴 만하면 여지없이 끼어들어 새치기하는 근심거리가 또 어떤 간섭을 하려는 걸까?
괜한 걱정이 엄습해 순조로울 때도 편한 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태반이다. 자제하고 조심하며 살아온 날들의 보상이 경매라니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용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하고두려웠다.
남편에게 악다구니? 퍼붓지 않았다.온 힘을 쏟았음에도 엎어진 걸 알기에 어떤 말도 내뱉을수 없었다. 내 한 마디에 남편이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짐작에 입술은 쇠 빗장을 단단히 걸었다. 충분히 자애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의리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마음이었다.
그렇다고 다독여주지도 못했다. 잘하지 그랬냐는 속마음이 천지분간 못하고 불쑥 나올까 봐 마음도 말도 지하 저 밑바닥에 매장해버렸다.
그 지경에도 의지할 사람은 남편 뿐이었다. 남편이 어떻게든 극복할방법을 제시할 거라 믿으며 처진 어깨로 돌아온 날에도 그 입술이 달싹여지길 흘끔흘끔 쳐다봤다. 오늘은 어떤 묘수를 갖고 왔을 거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동태를 살피곤 했다. 아무 말없이 지나가는 날이면 내 속에선 불에 탄 고무 냄새가 났다. 역겨운 냄새에 두통이 따르고 어질어질 토할 것 같은 몸을겨우 지탱하며 내일이면 나타날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곤 했다. 일도 집중이 되지 않아 강의 들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웅크리고 앉아 눈에 선 핏발을 씻어내며 견디는 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데 보탬이 되지도 못했고 경매를 막지도 못했다. 중차대한 일이고 내 일인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얻어 맞는대로 휘청거릴 뿐 똑바로 서지 못했다.그날의 상황에 따라 슬라임처럼 이 모양 저 모양을 반복하며 살아냈다.흐느적대느라 함께 헤쳐가야 할 길을 혼자 가게 내버려 둔 꼴이 되고 말았다.
선원이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처럼 내 눈에도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내게 남은 것이 뭔지, 그것으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는지 가늠조차 버거웠다. 벽을 뚫고 나갈 채탄기가 자꾸 장애물에 부딪혀 피로감에 짓눌린 균열만 바라봤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따로 떼어둔 것에 설마 이리 호되게 삐끗할 줄이야. 짐작조차 해보지 않은 터라 대처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남편도 집만은 지켜야 하기에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공들여 채워 넣은 한통의 물이 남의 목구멍에 수액으로 내달리게 생겼다. 살면서 내게 벌어진 최악의 난관이었다. 머리는 폭발 직전의 가스통이었고 혈관은 싸늘한 냉기로 움츠러들었다. 심장이 툭 떨어지며 내게 찾아온 봄날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단 한 번도 들떠서 웃고 떠들지 않은 나에게, 노심초사하며 엄격하게 살아온 나에게 집을 빼앗긴 청천벽력은 살아온 명맥을 끊는 쓰나미 그 이상이었다. 마치 동전을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갑갑했다. 불행은 축배를 들 때 갑자기 오는 거라더니 허풍이었다.
경매 목록에 올라간 우리 집을 내 명의로 입찰 가능하대서 한 줄기 소망을 품고 낙찰 희망가를 제출하러 갔다. 경매 전문가와 함께 갔으나 천지간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외톨이 같았다. 처음 가보는 법원에선 감정가, 낙찰, 입찰, 유찰 등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은 명사들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종헌례 후 태평소가 울려퍼지 듯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낯설었다. 생소한시간은 두통을 유발했고 잦은 심호흡을 요구했다.
오랜 기다림 끝 마지막 순서였던 내 사건 번호는 맥없이 불발로 끝나버렸다. 간발의 차로 덜 써낸 내 입찰 서류는 휴지 조각이 되어 훨훨 날았다. 순식간이었다.
출근한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태연한 척 집으로 돌아와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소름이 전신을 뒤덮었다.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일어섰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설마'에 의존했던 안일한 생각을 모조리 불살났다. 늦었지만현재의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발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생각에 오그라든 허리 펴 살아내기에 촉수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질척거려 신발에 묻은 흙은 족쇄가 되었다. 성에 차지않는 시간에서 벗어나려고 가늘어진 힘줄로 안간힘을 쏟아내도 잔혹사는 가슴을 짖이겼다.밟아도 밟아도 스펀지처럼 되살아난 객쩍은 생각들은 훅 훅 잽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