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꾸리던 사업에 비상벨이 울리면서 빈손으로 시작해 마련한 집이 경매 위기에 놓였다. 사정이 여의찮다는 건 짐작했지만 사지로 내몰릴 거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열심이고 성실한 사람이기에 잘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견디다 보면 벗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대책없이 빗나갈 줄이야. 허망했다. 열심이고 성실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신이란 말인가?
쥐가 난 정신은 뻣뻣하게 굳어 기능을 상실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느 먼 지방으로 가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사이로 아직 끝나지 않은 애들 교육이 사나운 기세로 달려 들었다. 꼼짝할 수 없었다. 선원이 냉동 창고 안에서 절망했던 것처럼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기만 했지 파닥거려 솟아오를 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니 초라해서 기죽고, 작아진 마음에 한 번 더 기죽고, 헤쳐나갈 방도를 찾지 못해 맥이 빠지는 상황이 순서대로 일어났다.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정어들이 안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넘어져서는 한탄만 쏟아냈다.
'내 길은 왜 가시밭이어야만 하냐구?'
내 안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원망을 쏟아내는 일에만 남은 힘을 보탰다. 애먼 곳에 생각을 내려놓다보니 돌파구를 찾는 일에 쓸 힘이 모자라 매일 같은 지점의 허들 앞에서 끙끙거렸다.
남의 사정일 때는 어쭙잖게 끼어들었다. 물론 위로한답시고 뱉은 말이 틀린 게 아닐지라도 상대가 실행하기엔 버거울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절박함이 외려 힘이 된다고들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마음이 쪼글쪼글 졸아드니 생각은 매사 부정적 정서로 꼰 동아줄에 가 매달렸다.
'끝내 올라야 할 산이구나'를 직감하면서도 산을 오를 사람이 나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처음 겪든 다시 겪든 시련 앞에서 꼿꼿이 무릎 세워 시간을 관통하라는 건 순전히 문자적인 견해에 불과했다. 저절로 꿇어지는 무릎은 이미 내 소관 밖이었다.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다보니 간혹 예상치 못한 새 힘이 나를 세우는 듯했다. 평범한 일상으로 견인하고 있다는 기운도 느꼈다. 냉탕·온탕이 수시로 바뀌는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서 위안이 꿈틀대는 것도 목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온도 차가 크다보니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현상이었다.
고비 앞에서 생각은 엄마가 손 놓친 세 살배기 애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든 맘대로 튀어 나갔다. 최악의 상황으로 좌절로 상실감으로 튀어가 쓸데없는 가정을 끌어들였다. 긍정의 미래쪽은 생략한 채 냅다 수렁으로만 내달렸다. 걱정의 늪에 가 닿으면 불안감에 휩싸여 허우적대고 부정적인 기운에 가 닿으면 범사가 일그러졌다.
생각은 자유하면서도 부자유했다. 정말이지 까탈스러운 놈이었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었고 누르고 싶지만 눌리지 않았다. 풀기도 전에 포기하는 미분·적분처럼 어려운 영역이었다. 깨지지 않게 잘 다루기만 하면 꼬인 창자를 푸는 링거액이 될 줄 알았는데 언감생심이었다.
내 것이라 다루기 쉬울 것 같았지만 내둘리거나 당하기 일쑤였다. 분명 내 것이 맞는데 남의 것처럼 굴며 어깃장을 놓을 때면 환장할 노릇이었다. 별것 아닌 것도 마음에 담아두고 되새기며 별것으로 만들었다. 생각이란 놈은 얼마든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절감했다.
색깔도 모양도 없고 다함도 다됨도 없는 것이 유난을 떨었다. 뭣도 아닌 주제에 사람을 쥐락펴락하냐고 욕사발을 뱉어내도 아랑곳하지 않는 놈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