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까탈스러운 놈

멈추고 싶은 생각 2

by 오순미

남편이 꾸리던 사업에 비상벨이 울리면서 빈손으로 시작해 마련한 집이 경매 위기에 놓였다. 사정이 여의찮다는 건 짐작했지만 사지로 내몰릴 거라고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열심이고 성실한 사람이기에 잘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견디다 보면 벗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대책없이 빗나갈 줄이야. 허망했다. 열심이고 성실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신이란 말인가?


쥐가 난 정신은 뻣뻣하게 굳어 기능을 상실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어느 먼 지방으로 가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사이로 아직 끝나지 않은 애들 교육이 사나운 기세로 달려 들었다. 꼼짝할 수 없었다. 선원이 냉동 창고 안에서 절망했던 것처럼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기만 했지 파닥거려 솟아오를 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니 초라해서 기죽고, 작아진 마음에 한 번 더 기죽고, 헤쳐나갈 방도를 찾지 못해 맥이 빠지는 상황이 순서대로 일어났다.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정어들이 안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넘어져서는 한탄만 쏟아냈다.

'내 길은 왜 가시밭이어야만 하냐구?'


내 안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원망을 쏟아내는 일만 남은 힘을 보탰다. 애먼 곳에 생각을 내려놓다보니 돌파구를 찾는 일에 쓸 힘이 모자라 매일 같은 지점의 허들 앞에서 끙끙거렸다.


남의 사정일 때는 어쭙잖게 끼어들었다. 물론 위로한답시고 뱉은 말이 틀린 게 아닐지라도 상대가 실행하기엔 버거울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절박함이 외려 힘이 된다고들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마음이 쪼글쪼글 졸아드니 생각은 매사 부정적 정서로 꼰 동아줄에 가 매달렸다.


'끝내 올라야 할 산이구나'를 직감하면서도 산을 오를 사람이 나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처음 겪든 다시 겪든 시련 앞에서 꼿꼿이 무릎 세워 시간을 관통하라는 건 순전히 문자적인 견해에 불과했다. 저절로 꿇어지는 무릎은 이미 내 소관 밖이었다.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다보니 간혹 예상치 못한 새 힘이 나를 세우는 듯했다. 평범한 일상으로 견인하고 있다는 기운도 느꼈다. 냉탕·온탕이 수시로 바뀌는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안에서 위안이 꿈틀대는 것도 목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온도 차가 크다보니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현상이었다.




고비 앞에서 생각은 엄마가 손 놓친 세 살배기 애 같았다. 어느 방향으로든 맘대로 튀어 나갔다. 최악의 상황으로 좌절로 상실감으로 튀어가 쓸데없는 가정을 끌어들였다. 긍정의 미래쪽은 생략한 채 냅다 수렁으로만 내달렸다. 걱정의 늪에 가 닿으면 불안감에 휩싸여 허우적대고 부정적인 기운에 가 닿으면 범사가 일그러졌다.


생각은 자유하면서도 부자유했다. 정말이지 까탈스러운 놈이었다.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었고 누르고 싶지만 눌리지 않았다. 풀기도 전에 포기하는 미분·적분처럼 어려운 영역이었다. 깨지지 않게 잘 다루기만 하면 꼬인 창자를 푸는 링거액이 될 줄 알았는데 언감생심이었.


내 것이라 다루기 쉬울 것 같았지만 내둘리거나 당하기 일쑤였다. 분명 내 것이 맞는데 남의 것처럼 굴며 어깃장을 놓을 때면 환장할 노릇이었다. 별것 아닌 것도 마음에 담아두고 되새기며 별것으로 만들었다. 생각이란 놈은 얼마든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절감했다.


색깔도 모양도 없고 다함도 다됨도 없는 것이 유난을 떨었다. 뭣도 아닌 주제에 사람을 쥐락펴락하냐고 욕사발을 뱉어내도 아랑곳하지 않는 놈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