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정 아니라고 함부로 판단했어

멈추고 싶은 생각 1

by 오순미
이 이야기는 1950년대 영국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영국의 컨테이너 운반선이 화물을 내리기 위해 스코틀랜드 항구에 선착했을 때다. 짐이 다 부려졌는지 확인하던 한 선원이 냉동 컨테이너에 갇히고 말았다. 그가 안에 있는 걸 모르고 다른 선원이 문을 닫았던 탓이다. 갇힌 선원은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며 구조 요청을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곧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원은 냉동실 벽에 시간 별·날짜 별 고난의 과정을 새겨 나갔다. 그의 기록에는 창고 안의 냉기가 자신의 코와 손가락을 얼게 하고 몸도 마비시킨다고 적혀 있었다. 언 부위가 견딜 수 없이 따끔거린다고도 묘사했다. 자신의 몸이 굳어 얼음이 되어가는 결말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배가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냉동실 문을 연 선장은 죽은 선원을 발견했다. 놀라운 사실은 냉동 창고의 장치가 가동되지 않았던 상태라, 내부 온도가 섭씨 19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냉동 창고 안에는 장기 보존용 식량도 충분했다. 결국 선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살벌한 추위와 지독한 굶주림이 아니라 ‘이곳이 냉동실이기 때문에 곧 얼어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이었던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중에서


젊어서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선뜻 공감하기 힘들었다. 작동되지 않는 냉동 창고 안에서 살벌한 추위를 호소하며 마지막을 맞았다는 게 의외였기 때문이다. 지나친 공포감에 점령당했지만 곧 죽음을 불러올 만한 환경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인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이 가지 치기도 없이 어떻게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 것인지 도무지 수긍할 수 없었다. 처음에야 당혹스러운 나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다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자리잡고 곧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선원의 생각은 왜 여기서 멈췄을까? '위기에서 살아남기'가 작동하는 게 본능 아닌가? 창고 안을 살펴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생략했다. 기록까지 남긴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극단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선원이라는 호칭으로 불렸으니 젊은 사람일 것이다. 짐이 부려졌는지 확인하는 업무자라면 신참일 수 있다. 젊은 신참이라면 기운찬 에너지가 고였을 텐데 냉동 컨테이너 안이라는 사실에만 생각이 집중되도록 그대로 두었다는 게 의문이다. 뇌지도에 '열악한 장소'만 덩그러니 남겨 곧 죽을 거라는 주문만 외운 듯하다. 체념 앞에서는 그 무엇도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더니 선원의 이야기는 절망감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땐 그랬다. 왜 그랬냐고 나무랐다.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건만 아무런 방법조차 꺼내들지 않은 그를 얕잡는 투였다. 각도를 틀어 눈에 잡힌, 몸이 느낀 상황에 집중했다면 살아나갈 단서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간단한 행위조차 하지 않은 선원이 어처구니없다고 혀를 찼다. 세상이 만만할 때라 원리를 앞세워 생각하면 무엇이든 해결될 줄 알았다. 내 사정이 아니라서 쉽게 저울질하고 판단했던 부끄러운 시절 얘기다.


내게 주어진 숙제가 되고 보니 역시 선원의 사정과 다를 바 없었다. 남의 일은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시야가 가능하지만 내 일은 합리적일 수 없었다.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불안만 떠올랐다. 폐저유소 안에 홀로 갇힌 듯 막막하기만 했다. 머릿속에는 걱정만 자욱했다.


염려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누우면 어두운 천장으로 끝, 해체, 불가, 밑바닥과 같은 불안정한 단어들이 섬광처럼 번득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눈물 젖은 베갯 로 또 다른 날이 밝아와도 생각은 정지선을 그어 그 어떤 긍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위기에서 살아남기의 본능 따윈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