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바람도 싫어하는데 올여름은 에어컨 필수 사용자가 될 수밖에 없을 만큼 살인적인 폭염이었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10년 후엔 올여름이 가장 시원했다고 말할 정도로 여름 더위는 해가 갈수록 극성을 부릴 거라고 예측했다. 환경 훼손의 혹독한 대가는 폭염과 더불어 제 색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늦은 단풍으로 나타났지만 그래도 11월 막바지에 이르니 아침저녁엔 찬기운이 감돈다.
손발이 찬 편이라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수면 시 폭신폭신한 양말을 신고 자야 한다. 시장에 갔다가 좌판에 쌓인 양말 더미에서 수면 양말 두 켤레를 골랐더니 처음이라 그런가 탄력이 대단하다. 하룻밤 신고 잤더니 발가락끼리 붙어 조이는 느낌이었다. 발이 수면 양말에 길들여지려면 몇 번은 세탁기를 들락거려야 할 것 같다. 새것이라는 자부심에 한껏 오른 기가 좀 꺾여야 비로소 발에 알맞은 형태가 뭔지 알아챌 테니까.
사람도 마찬가지.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선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므로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다가서는 방식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우린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세월 지나 서로가 파악된 후엔 처음보다 수월해지긴 하나 이 또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므로 모두 편한 사람으로 남진 않는다. 이것이 양말과 다른 점이다. 양말은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편안해진다. 처음 가졌던 팽팽한 자신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탄력이 전체적으로 느슨해지기 때문에 신은 듯 아닌 듯 한결 편해진다. 양말이 치른 희생 덕분에 발은 수면 양말 속에서 아늑해지고 난 따뜻한 잠에 빠질 수 있다.
느슨해진 양말처럼 상대를 존중하며 부담스럽지 않은 태도로 다가올 때 우린 그 사람이 편하다고 느낀다. 반면 자기 의견이나 방식, 세계관을 강요하며 정답인 양 떠들어대는 사람. 유머로 치장하여 상대를 깎아내리는 사람. 농담이라면서 상대의 아픈 과거를 들추어 비아냥대는 사람. 대화의 맥을 끊거나 공격적인 말투를 일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땐 대화 내내 심리적 냉대를 견뎌야 한다. 기본적인 태도조차 가지지 않은 사람과 마주한 대화는 상당한 감정적 소모가 따르기 때문이다.
대화의 공백이 생겼을 때도 그 공간이 불안하지 않다면 상대는 편한 사람이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고 아무 말이나 지껄여야 그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불편한 관계라고 확정해도 될 듯싶다. 침묵의 공간을 참을 수 없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끄집어내야 한다면 심리적 피로감에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과도한 노출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나 마찬가지므로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유해도 될 사생활의 경계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대화가 중단됐을 때 침전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공유 설정 경계가 무너지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그 만남은 정서적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화 중 공백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다음 대화를 위한 틈이라고 생각해야지 아무 말 대잔치로 대치하려는 것은 신중한 선택이 아니다.
보통 과시적이거나 가식적인 사람도 신뢰와 편안함을 주지 못한다. 인정과 관심을 차지하고 싶다면 진정성으로 무장해야지 겉치레나 과장으로 포장하려 하면 신뢰도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때때로 본인은 잘 감췄다고 생각하지만 과시나 가식의 의도는 빤히 전달될 수밖에 없다. 피상적인 대화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고 만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우린 자연스럽게 다가서게 된다. 인정과 관심 중독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로 바로 서야 상실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해지는 양말처럼 세월 안에서 편하게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양말이 탄력을 내어주고 내 발을 포근히 감싸 듯 상대도 날 위해 무릅쓰고 헌신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편안한 사람으로 남은 것이다. 나 또한 그에게 충분한 유대감으로 다가서고 있는지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차분히 돌아보려 한다. 이미 고마운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