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단상. 이

달갑지 않은 동거, 두통

by 오순미
소음인은 편두통을 앓을 때가 잦다.


두통에 시달린 지도 30여 년 가까이 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불쑥불쑥 찾아오는 두통 때문에 오랜 시간 몹시 고달팠다. 두통이 시작되면 일상을 돌보기도 어려운데 강의까지 해야 해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사그라들길 바라다가는 구토 증상까지 떠안아야 했으니까. 맞는 약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한 동안은 진통제에 의지해 '고충에서 살아남기'식으로 버티느라 하루 하루 꼿꼿할 수가 없었다.


끼니를 놓치거나 과식하거나 위장 장애가 나타나면 두통은 한 벌처럼 따라다닌다. 파도타기 응원처럼 배 속이 너울거릴 때 머리까지 지끈거리면 걸리버의 손아귀에 힌 듯하다. 폐부 깊숙이 들어와야 할 산소가 길을 찾지 못해 호흡이 약해지다 끊어질 지경까지 갔다. 이마 왼켠으로 빨대처럼 솓은 혈관은 작은 움직임에도 욱신거린다. 초음파로 듣는 태아 심장 소리가 에서 울리는 것 같다. 구토 증상도 나타나고 빛이 다가오면 뉘엿거린다. 두통을 당해 낼 재간이 없어 늘 막막하다. 두통과 위통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내 안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갈취할 때도 속수무책이다. 부서진 의욕이 여기저기 널브러져도 거둘 만한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코끝을 스친 냄새에도 두통은 진격해온다. 담배 연기, 장작 연기, 페인트, 짙은 향수, 모기향, 비린내 후각 세포가 꺼리는 냄새에 노출되면 즉각 조짐이 나타난다. 길가다 담배 연기가 끼쳐올 것 같은 상황이 감지되면 숨을 참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대중 교통 이용시 향수 냄새 밴 사람이 옆에 서면 다른 자리로 옮기든가 내려버린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날은 영락없이 두통의 방문을 맞아야 한다. 아로마향은 식물에서 체취한 향으로 두통에 특별한 효능이 있대서 사용해봤더니 내 두통이 유별난지 역효과였다. 언제 촉발할지 모르는 지뢰밭을 가느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조심하며 살았다.


지하 강연장, 영화관, 백화점, 공연장 등 창문 없는 장소도 두통의 안전 장치를 순식간에 부순다. 반드시 영화관에서 관람해야만 하는 대작들이 있을 땐 앓을 생각하고 집을 나선다. 때로는 관람 중에 두통이 일어 종영할 때까지 참고 나면 '트롤리 눈알 젤리'처럼 내 안구도 매끈하게 빠질 것 같다. 이럴 때를 대비해 두통약 준비는 필수고 느낌이 온다 싶으면 잽싸게 삼켜야 한다. 문화 생활을 누리는 기쁨보다

예견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게 내 형편이었다.


한여름 효자 에어컨과 선풍기도 상극이다. 거실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덜 미치는 곳이 내 자리고 비교적 냉기가 덜한 방으로 종종 피신한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남편이 잠 잘 때 돌리는 선풍기 바람이 싫어 여름엔 발치에 베개를 놓고 거꾸로 잔다. 자동차를 타면 에어컨 방향을 조절하여 내게로 오는 냉기부터 차단한다. 버스를 이용할 땐 내 자리 에어컨은 막아버리거나 끈다. 지하철은 약냉방칸을 찾아다닌다. 1,3,4호선은 4,7번 객실, 5, 6, 7호선은 4,5번 객실, 8호선은 3,4번 객실이 약냉방칸이라는 사실을 미리 숙지하고 외출한다. 2호선은 혼잡도가 높아서 약냉방칸을 운영하지 않는단다. 약냉방이라고는 하나 두꺼운 카디건을 챙겨야 한다. 사람마다 체감 온도가 다르다보니 약냉방칸도 나에겐 시베리아다. 가장 최악은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야외와 냉방이 잘된 실내를 번갈아 드나드는 것이다. 이건 뭐 두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여름 여행이 반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방기의 냉랭한 기류와 태양의 강렬한 기운이 작당한 '컬래버(콜라보)'에 대책없이 걸려들기 때문이다.


생리 전후로도 두통은 나를 갉는다. 원인 중 가장 큰 무게로 짓누른다. 다른 원인들은 어쩌다 비껴가기도 하지만 생리 만큼은 플랫폼이다. 급행처럼 건너뛰는 법도 없다. 마치 내 두통의 책임자인 양 정확하게 로그인해온다.

생리 관련 두통은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이란다. 생리 주기 중 여성 호르몬은 성질이 다른 두 종류가 절반씩 분비된단다. 생리에서 배란까지는 난포호르몬(에스트로겐)이, 배란에서 생리까지는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이 발생하는데 생리 전 황체호르몬에서 난포호르몬으로 바뀔 때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며 두통을 일으킨단다. 황포호르몬은 부종, 체온 상승, 짜증, 두통을 유발하며 난포호르몬은 세로토닌(뇌혈관 수축 작용에 관여,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줄여 행복감을 증가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뇌내 물질을 감소시켜 뇌혈관 확장을 일으키고 두통을 야기한단다.


처음엔 손쉽게 진통제를 복용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두통 때문에 속쓰림까지 동반되었다. 진통제가 강해 속이 버티질 못했다. 새벽녘에 닥친 두통으로 잠에서 깨면 빈 속에 진통제를 먹을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삼켜야 했다. 새벽 세네 시 물에 만 밥은 정말 고역이었다. 결국 종합병원에서 뇌파, CT촬영 검진을 받았다. 검사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편두통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없고 사람마다 유발 요인도 다양하단다. 호르몬의 영향일 수도 있고 유전적 요인일 수도 있으니 친정 엄마와 함께 검사를 받으란다.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후여서 함께 진료받을 수 없는 터라 편두통 약만 처방받아 돌아왔다. 처방받은 두통약은 나와 맞지 않아 심각한 구토 현상을 일으켰다. 다시 내원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기존에 먹던 진통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망이었다. 위가 불편할 때는 진통제를 먹을 수 없어 한의원에 가 침도 맞고 약을 복용하며 두통과 싸웠다. 그러다가 새로 개원한 가정의원에 속쓰림 예방약을 지으러 갔다가 편두통 전용 약을 권하기에 처방을 받았다. 뭣보다 빈 속에 먹어도 부작용이 없다는 말에 솔깃했다. '알모트립탄제'가 주요 성분으로 확장된 두개 내 혈관을 수축시켜 편두통을 개선하는 전문 의약품이라고 했다. 의사 말대로 빈 속에도 편안했고 통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었다. 자다가 이미 두통이 진행되었을 땐 복용해도 느슨해졌다 다시 시작됐지만 두통이 시작되려고 할 때 바로 먹을 경우엔 효과 만점이었다. 완경기 무렵까지 이 약으로 무시로 닥쳐오는 두통을 관리했다.


편두통 완화제에는 '트립탄제, 에르고타민제, 보툴리눔 독소, 진통제' 등이 있단다. 중 '트립탄제, 에르고타민제'는 세로토닌 수용체에 작용하여 확장된 뇌혈관을 수축시키고 통증 전달 과정을 저해하여 편두통의 증상을 완화시킨단다. '보툴리눔 독소'는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하여 근육의 과도한 수축을 막아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편두통 증상을 완화시킨단다. 매우 적은 양을 희석해 국소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부작용 없이 비교적 안전한단다. '진통제'는 통증을 제거하는 약물로 마약성과 비마약성으로 구분한단다. 진통제를 복용하다 트립탄제로 갈아타면서 속쓰림과 두통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어 그나마 새벽녘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두통은 반 잔의 와인, PC나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 불면, 강한 스트레스 등에도 도발을 감행했다.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피하여 달아났지만 가끔은 이유없이 집적거리기도 했다. 두통에 들볶이는 날엔 뇌 안에 군살이 돋아 혈관마다 짓눌리고 신경마다 매질을 당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완경기 이후 강도가 좀 약해지고 빈도도 줄어든 것 같아 한시름 던 상태지만 완전히 제거된 게 아니어서 여전히 내 두통의 원인과 불가근불가원 중이다.



202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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