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 하지만 몹시 부러운 사람이 있다. 자야겠다고 맘만 먹으면 5분도 안 돼 다릉다릉 코고는 사람이 그렇다. 남편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베개에 닿은 머리가 베개를 인식하기도 전에 곯아떨어진다. 잠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면개시장애'로 뒤척이는 내 옆에서 단잠에 빠진 모습을 보노라면 얄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들기까지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여행을 가거나 친적집에 방문하여 자야 할 경우 베개에 닿은 뒤통수에선 통증이 일고, 좌우로 방향을 바꾸어도 딱히 개선되는 건 없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신경이 바짝 긴장하곤 한다. 시간은 더디 가고 눈을 껌벅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공간에는 무기력만 떠돈다. 창밖에서 희끄므레한 빛이 들어와 어두운 천장에 갈긴 빛질만 말똥말똥 쳐다본다. 자야지, 눈을 감아보지만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잦아들어 잠 속으로 빠져들지 못한다. 간혹 깨알만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별무리처럼 반짝이다 지니가 램프 속으로 사라지듯 휭하니 빠져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집이라면 거실로 나와 책을 보거나 내일 할 일을 미리 할 텐데 바깥 잠을 잘 때는 모든 게 불가능하다. 그저 시간의 꽁무니를 쫓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번은 모임에서 여행을 갔는데 잠들만 하면 '3시', 겨우 잠들었나 싶으면 '4시'를 외치며 매시마다 알람이 울려 홀딱 밤을 샌 적이 있다. 남의 휴대폰이라 만지기도 그렇고 부아가 치밀어 씩씩대는데 아무도 깨지 않고 숙면에 빠진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탄한 적도 있다.때문에 식구들과 여행할 때도 패밀리룸에서 함께 지내는 것보다 스탠다드트윈룸을 두 개 얻어 나누어 자는 걸 선호한다.
불혹 후반에 접어들자 불면증은 더 심해졌다. 나이가 들어 그러려니 하고 수면 환경에 신경을 썼다. 잠자러 들어가면 빛이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도록 했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도, TV 소리도 영락없이 잠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암막 커튼의 효과를 톡톡이 본다. 어슴프레한 빛조차 스며들지 못하게 방어하는 훌륭한 보디가드다.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따뜻한 물이나 우유를 마시면 불면이 호전된다기에 따라해 보았다. 잠들 만하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겨 오히려 잠을 깨우는 통에 큰 효과는 볼 수 없었다. 물에 닿은 드라이아이스처럼 속이 부글거리고속쓰림 현상만부추겼다.
아주 사소한 걱정거리가 생겨도, 잠잘 타임을 놓쳐도 잠들기가 힘들어 곤혹을 치른다. 잠에 빠졌다가 늦게 귀가하는 식구의 문여는 소리와 씻는 소리에도 잠을 날리는 경우가 있다. 늦은 귀가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면 '오늘 못자면 내일 자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준다. 지극히 합당한 논리지만 내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원리에 불과하다. 하루 이틀 잠을 설치고 나면 몸이 이상 반응을 보인다. 몸살이 나거나 목이 아파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먹기 싫은 약을 먹어야 하고, 약 때문에 좋아하는 커피도 일시적으로 끊어야 하는 등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가슴 언저리를 떠돌며 상승하려던 집중력도 낱낱이 흩어져 일이 몇 배로 힘들어진다. 구조적으로 잠에 집착할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나에게 내일 자면 되지 않냐는 말은 자분자분하게 말해도 비아냥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 아무데서나 콧물 풍선이 부풀도록 잠들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할 것이 불면증이다.
그러다보니 베개에 진심으로 공을 들인다. 쇼핑하다가도 베개가 보이면 이리저리 둘러보며 편할까 아닐까를 세심하게 따져본다. 직접 누워서 체험할 수 있는 경우엔 당연히 누워본다. 하지만 잠시 누워보는 것과 구입 후 베어 보는 것은 느낌과 정도가 딴판이다. 분명 편했는데 집에서 며칠 베고 나면 반드시 불편한 점이 나타나곤 한다. 가운데는 머리 모양을 감싸도록 옴폭하게 들어가고 양 옆은 누웠을 때 어깨 높이를 감안해 높게 만든 베개가 수면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해서 일주일 체험을 신청해 보았다. 옆으로 돌아누우면 어깨 높이를 감안해 가운데보다 높게 만든 곳으로 머리가 올라가야 정상인데 옴폭 파인 가운데서 머리만 돌아가다보니 이론처럼 편한 수면을 유도하지는 못했다. 원형의 목베개, 푹신한 베개, 메밀 베개, 가운데 구멍이 뚫려 뒤통수를 편하게 받쳐주는 베개, 어깨를 받쳐주는 베개, 호텔 베개 등 종류별로 다 베어보다 지금은 메밀 베개에 안착했다. 조물조물 매만져서 나에게 맞는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눕기 전에다음잇감의 구김살을 펴듯 평평하게 베개를 고른다. 누워서도 이리저리 매만져 두상에 편한 모양을 잡고 몸을 움직여 가장 편한 자세를 잡는다.물론 잠들고 나면 기존의 형태는 오간 데 없이 사라지지만 잠 잘 들기 위한 일종의 의식같은 것이다.자고 나면 베개가 머리 모양을 따라 구덩이처럼 파여 있지만 일단 까무룩 잠이 드는 것으로 만족할 만한 베개다.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해 봤지만 보조 역할에 그칠 뿐 수면 장애는 시시때때로 나를 겁주는 망나니였다.
불면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가정의원 진료를 받고 간청해 수면제를 처방받기도 했다. 미치도록 잠들기 힘들 때만 복용할 것을 약속하고 며칠 분을 받았다. 약사가 처음 복용하는 거냐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한번에 반알씩만 먹으라고 조언했다. 자주 복용하면 판단력이 저하되고 치매의 위험도 있다며 겁주었다. 웬만하면 먹지 말라고 무섭게 얘기한 듯했다.
'인위적으로 잠을 유도하는 약이니 이로울 리 없다는 거 알면서도 오죽했으면 처방받았을까. 걱정 않고 먹을 수 있게 아무 말도 하지 말지. 의사나 약사가 한 말 때문에 편하게 복용하기는 이미 글렀네.후유증의 책임은 나한테 있다는 걸 확인시키려는 거겠지?'
속으로는 아랫 입술 빼물며 팔자주름 진하게 새겨진 얼굴로 팔짱을 꼈지만 겉으로는 상냥한 인사를 전하며 약국을 나섰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이지 뒤통수가 뻐개지려고 할 때만 반알을 삼켰다. 새끼 손톱 반만한 백색 정제의 위력은 정말이지 획기적이었다. 단잠에 빠져 자고 나면 아침이 새로웠다. 가뿐하고 경쾌했다. 어제의 햇살에 몸이 나라졌다면 오늘의 햇살엔몸이 파닥였다. 명쾌한 잠이었다. 잠 못 드는 밤과 함께 하느라 간당간당한 수액으로 견디던 나에게 수면제 반알은 불면을 꿰매어 곤한 잠을 수놓았다.
이후 수면제의 유혹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오늘까지만 먹을 거야.'
하다가 연 3일을 복용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애꿎은 고막에 약사의 꾸짖는 목소리가 꽂혔다.
'지나치게 의존하는 건가? 벌써 중독인가?' 싶어 견디기도했지만 종국엔 수면제를 만지작거리는 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집에 있을 땐 어지간하면 극복하는 것으로 하고 바깥 잠을 잘 때만 복용하자고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몇 개월을 복용하고 나니 개운한 잠을 보상하는 반면 두통이 따랐기때문이다. 잠을 잘 자는데 비해 뭉근한 두통이 또 다른 걸림돌이 되어 나타났다. 짧은 시간의 깊은 잠, 잠들지 못해 헤매는 시간을 해결하는 대신 수면제는 두통을 불러오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추가되었다.
처방받은 수면제는 '졸피뎀' 성분이며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분류되는 불면증 단기 치료제였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수면제 종류란다. 수면을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 GABA(Gamma-AminoButyric acid의 약자, 감마아미노뷰티르산:포유류 뇌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아미노산 성분-노화나 질병으로 원활한 생성 불가)를 활성화시키고 세로토닌을 억제하여 수면을 유지하는 원리란다. 중추신경을 둔화시켜 수면을 유도하는 시간이 신속해서 반드시 취침 전에 복용할 것을 권한단다. 때때로 자신을 타인처럼 느끼고 자신과 분리된 경험을 하게 되는 이인증, 수면 운전, 기억상실증, 우울증 악화, 두통, 어지럼증, 몽유 증상 등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단다. 어떤 약이든 오래 복용하면 부작용이 따르거나 내성이 생긴다는 거 알지만 5~6개월만에, 매일도 아니고 못견딜 때만 반알씩 먹은 게두통으로 이어지다니 어처구니없다. 예측된 부작용에 정확하게 반응하는 내 몸은'왕석현의 비웃음(영화 과속 스캔들)'을 살 만하다.
수면제는 가급적 바깥 잠을 잘 때만 이용하던 중 캐나다로 이민 간 예전 직장 선배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갱년기 불면증으로 힘들 때 효과를 보았다던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보조제를 선물로 주었다. 처방받은 수면제보다 크기도 작고 천연 재료로만 제조했다니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아 안심이 되는반가운 선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멜라토닌' 덕분에
'잠 못 드는 밤, 너 가만 안 두겠어.'란 방자한 기운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혀 밑에 물고 있으면 사르르 녹아 잠을 부른다더니 단박에 효과가 나타났다. 분량도 많고 유통 기한도 넉넉해 오랜 기간 도움이 될 것 같아 시름을 놓았다. 한동안은 '멜라토닌'에 의지하여 잠들기 어려운 고통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3 개월쯤 지나자 '멜라토닌' 역시 수면제를 먹었을 때처럼 두통이 동반됐다. 지속적인 복용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참을 수 없을 때나 이용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독였다.
'멜라토닌'은 간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인체의 생체 리듬을 조절한다. 멜라토닌 제제는 멜라토닌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수면을 유도하는 작용을 한단다. 멜라토닌 수치가 낮은 노인이나 불면증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면 보조제니까부작용과는 먼 줄 알았으나 사용자의 1% 미만에서 보고된다는 두통이 나에겐 나타나고야 말았다. 외에도 기면증, 어지러움, 소화불량, 졸림, 고혈압 등의 부작용도 따른단다. 부작용에 딱 들어맞는 나같은 사람 때문에 약의 오남용은 강조되어 마땅한가 싶다.
지속되는 불면에 시달리던 중 심리에 관한 책을 읽다 불면도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내용에 눈이갔다.책의 내용을 토대로 나의 일상에서 잘못 알고 있던 불면의 사실들이 떠올랐다.
-하루 7~8시간 자는 것이 건강한 잠이라고 정의한 의학적 견해에 내 잠이 미치지 못하면 알면서도 오답을 써낸 바보처럼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살이 나는 게 아니라 못잤기 때문에 몸살이 날 거라는 심리적 요인에 컨디션이 무너진 것이다.
-일은 닥쳐서 하기 보다 미리미리 해두는 성격인지라 할 일이 생기면 새벽까지라도 끝장을 봐야 맘이 편하다.
잠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같은 것으로 푹 잘 잔 잠은 2시간 정도만 되어도 다음 날을 쾌청하게 보낼 수 있는 상태로 몸이 회복된다는데 하루 자야하는 시간에 지나치게 얽매였던 내가 보였다.
몸살도 잠을 못 잔 게 원인이 아니라 마음이 내린 명령의 결과였다.
일도 급한 게 아니어서 며칠에 나눠 해도 되는 걸 새벽까지 끝을 낸 후 결과를 챙겨야만 맘을 놓을 수 있었던 성격이 수면 사이클을 방해했던 것이다.
불면 치료에 관한 전문적인 책이 아니라서 몇 줄에 불과했지만잠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나이 들면서 찾아온 불면이라 일종의 과정쯤으로 수용했고, 예민한 성격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때문에 불면에 관한 책을 읽으면 지켜야 할 규칙을 더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힐 것 같아 일부러 찾아 읽지 않았던 건데 우연히 읽은 단 몇 줄의 내용이 '마음 다스리기'로 요약되었다. 충분히 이해됐지만 하루 아침에 달라지긴 힘들었다. <알프레드 아들러>였는지 <기시미이치로>의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짧은 내용이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자료 정리해 수업 준비(직업이 독서지도사)하는 일은 급하지 않은 이상 새벽까지 붙들지 않았다. 청소며 정리 같은 집안 일따위는 나부랭이로 간주하기로 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불편했던 마음을 접어 깊숙이 매장하고 내일로 미루는 과단성을 도입했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는 신경줄 끝에 매달아 생각 사이로 오르지 못하게 외면했다. 걱정으로 에워쌌던 딸의 늦은 귀가 때문에 얼굴 붉히며옥신각신 하던 언쟁도 끈떨어진 연처럼 날아가게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질책하며 규칙에 얽매여 살던 시간들을 잘디잘게 부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내게 남은 시간 역시 늘 긴장에 쫓기는 도망자가 될 것 같아 '나 아닌 나'가 되어보기로 했다.
마음 사용을 바꾸기로 했다고 금세 달라지지는 않았다. 불편한 마음은 여전히 기웃거렸고 잠 못 드는 밤도 여전히 뒤통수를 압박했다. 이미 1200~1300도 가마에서 틀을 고정하여 나온 그릇이라 각진 게 싫다고 원형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다만 그릇에 담는 마음을 조절하여 보다 나은 형세를 찾아가려고 애써 보았다. 거룩한 신도 아니고 종교적이치를 깨친 사람도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가닥가닥 풀어보았다. 틀에 박힌 시간을 느슨하게 조율하면서 오늘이 아니어도 되는 일은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 하루가 느긋해지긴 했지만 잠은 잘 자기 힘들었다.
스티커를 받기 위해 600자 이상 '억지로' 채워야 하는 일기 쓰기 숙제처럼 '반드시'라는 부사어를 대동했던 내 수면에서 '억지로'와 '반드시'를 차츰 지워나갔다.
'하루 이틀 못 잔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8시간 못 잔다고 큰일이야 나겠어?'가 날이 가고 달이 가는 과정에서 몸살의 낌새도 거둬가고 왕성한 의욕도 길어 올렸다. 관심 밖에 놓인 불면증도 나와 어울리지 못하고 데면데면 겉돌기 시작했다. 족히 2~3년은 걸린 듯하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벗어난 건 아니다. 지금도 잠 못 드는 날이 더러 있긴 하다. 기본적으로 갖고 나온 예민한 성격까지 개조하는 것은 영역 밖의 일이라 감싸고 달래며 데리고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기에 더러 오는 불면증은 애교로 봐주려 한다. 지금은 스틱형 타트체리를 먹으며 불면의 날을 줄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