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마가 쓴 <동의수세보원-1894>에 따르면 사람의 체질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체질에 따라 몸의 기운이 다르므로 같은 병일지라도 다른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학 이론이 사상의학이다.
출처<사상의학 커뮤니케이션>
사상의학에서 인간의 체질을 네 가지로 구분하는 기준은 폐, 간, 신장, 비장(위와 신장에 이웃한 장기로 혈액 속 세균을 죽이고 적혈구를 만들어 저장하는 역할을 함=지라)의 크고 작음과 강하고 쇠한 정도라고 한다. 소음인은 '신대비소'라 하여 신장이 발달하고 비장이 약하단다. 소화가 잘 되지 않지만 배출은 잘 되므로 기가 부족한 상태에 놓이기 쉽단다. 각 장기는 감각기관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소음인은 신장과 관련된 입은 건강한 반면 비장과 관련된 눈의 상태는 좋지 않아 눈 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다고도 한다. 같은 소음인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고 경우의 수도 많기 때문에 사상체질에 100% 의지할 수는 없다. 다만 서로의 체질을 알고 있다면 나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취약한 부분을 미리 체크해 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네 가지 체질 중 내가 어느 체질에 해당하는지 별도로 진단받은 적은 없다. 소화기, 두통 등을 치료받기 위해 드나들던 한의원 원장이 외모, 체형, 병증, 인상 등의 요인으로 볼 때 소음인 성향이 높다며 섭취해야 할 음식의 주의 사항을 일러준 적 있어 소음인으로 알고 살았다. 혹시나 하고 참여한 온라인 사상체질 테스트 설문에서도 소음인에 해당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소음45, 태음34, 소양13, 태양13으로 소음인의 기질이 강했다. 이전부터 한방 치료를 종종 받았던 탓에 사상체질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체질일까 궁금해 나열된 특징들을 살피다 소음인에서 '어맛! 나야'는 데칼코마니를 본적 있어 짐작은 했더랬다. 그런 이유로
'별나게 예민한 건 소음이이기 때문이야.'
'소음인은 원래잠자리가 예민한 사람이야.'는 점차 나의 모양새로 굳어갔다.
-하체보다 상체가 약하다.
-신장이 발달하고 비장 기능이 약하다.
-신경이 예민하여 소화불량이 잦으며 가장 건강할 때란 소화가 잘 될 때다.
-속이 비었을 때는 속쓰림 현상이 나타난다.
-체한 증상이나 과식 후 두통이 따른다.
-편두통을 앓을 때가 자주 있다.
-비린 음식, 날음식을 싫어한다.
-수족 냉증이 심하고 추위를 잘 탄다.
-여름철에도 땀이 적다.
-깊은 잠을 못자고 불면에 시달리는 경우가흔하다.
-잠자리가 예민하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경향이 있어늘 골머리 아파하는 체질이다.
-작은 일에도 마음을 끓이고 별일 아닌 일에도 불안해한다.
-걱정이 많아 신경성 질환을 호소한다.
-조그만 일에도 조바심을 낸다.
-잘 되어가는 일도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이 깔끔하고 치밀해서 매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자신이 정해 놓은 영역을 넘어오는 것을 싫어한다.
-새로운 일보다 늘 하던 일이 편하다.
-모험보다는 안전한 길을 선호한다.
-맡은 일은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
-지극히현실적이고 의심이 많으며 신중해서 남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편이다.
-예민하고 쉽게 우울해지며, 섭섭한 말에 곧잘 상처받는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소심하고 소극적이다.
-한 번 정한 습관은 꾸준히 유지한다.
소음인의 특징이며 동시에 나에게도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소음인은 신경이 예민하여 소화불량이 잦으며 가장 건강할 때란 소화가 잘 될 때다.
저녁 밥 잘 먹고 깔깔대며 드라마 보다가 갑자기 배가 뒤틀려 응급실에 간 적도 있고, 잘 자다가 식은땀으로 온 몸이 젖을 만큼 배가 꼬여 119에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다. 위장에 지장을 줄 만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과식하지도 않았는데 멀쩡하다가 느지막이 체한 증상이 나타날 때는 어이가 없다.
배 속이 꽉 막혀 답답하거나 먹은 게 분노하여 역류할 때는 환장할 노릇이다. 막힌 것보다 차라리 역류가 낫다. 변기통에 쭈그려 앉아 눈물에 콧물에 삭이지 못한 음식물까지 꾸역꾸역 쏟아내면 기진맥진 지치긴 해도 속은 한결 편해지니까.
의사는 신경쓸 일이 있었냐고 묻지만 콕집어 그럴 만한 이벤트는 떠오르지 않는다. 저 혼자 이유없이 토라져 미동도 않는 위장에 속절없이 당해야만 하는 내 처지가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살아내기에 열중하는 사람의 생기를 단박에 끊는 것도 유분수지 이건 반칙 아닌가?
소화기가 한번씩 삐끗하고 나면 2~3주는 살맛도 멈춘다. 밍밍한 죽으로 삼시세끼를 때우고 거친 반찬은 피해야 한다. 좋아라 하는 하루 한 잔 커피도 중단해야 하고 맛깔난 빵도 금지 품목이 된다. 사는 재미나 의욕이 뿔뿔이 흩어지는 나날들이다.
어느 순간 위장이 역모를 꾸밀지 몰라 찬음식을 멀리하고 소식(小食)으로 몸을 사린다. 찬음식은 장을 자극하여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뜨끈한 음식을 먹어야 위장의 꼼수에 빠지지 않는다. 냉면이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땐 복부에 온열 찜질기를 둘러 따끈하게 달래면서 내려보내야 배 속이 잠잠하다. 유난떤다고 이죽거릴 만도 하나 나만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므로 주변 시선 따윈 무시하려 애쓴다. 위장의 매서운 분풀이에 걷어차이는 것보다 유별나다는 질타를 받는 게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입에 맞는 음식이라도 평소 먹던 양을 초과하면 기분이 질겅질겅 씹히는 느낌이다. 조심은 하지만 먹다보면 적량의 수위를 잊을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음식 양이 푸짐한 식당이나 일인당 일인분 주문을 요구하는 식당은 부담스럽다. 3인분으로 십시일반하면 네 식구 충분할 텐데 4인 시키면 다른 식구들이 과식하게 된다. 반만 먹고 반값만 지불하면 안 될까 싶을 때가 허다하다. 특히 코스 요리 막바지에 나오는 정성스러운 후식이야말로 잔혹사다.
명절에 시댁에만 가면 잠잠하던 소화기관이 요란스럽게 설레발을 쳤다. 시댁은 명절 전날의 점심이 막걸리에 전이다. 기름진 음식이 달갑지 않지만 시댁의 풍습이니 따라야 했다. 어떤 날엔 회를 떠오기도 하고 중국 음식을 시킬 때도 있지만 딱히 좋아하는 종류가 아니라서 역시나 반갑지 않았다. 날음식, 기름진 음식이들어 오면 배 속이 '불편'이란 두 글자로 두르고 시위를벌여 명절 내내 더부룩하게 지내거나두통에 시달렸다. 속편한명절을 위해 비빔밥 재료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한두 번 하다 그만두었다. 기름진 음식도 부담이지만 하루 종일 집안을 채운 기름 냄새는 혹독한 매질이나다름 없었다.
큰 홀에 가득 차려진 뷔페 음식도용의주도하게 먹지 않으면 탈이 난다. 동서양이 한 접시에 담겨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국경 없는 곤죽이 되어 속이 어지럽기때문이다. 한정된 가격이니 많이 먹는 놈이 이득이라는 건 알지만 절대로 바벨탑을 쌓을 수 없어 본전 생각에 또 아찔하다. 평소에 먹을 수 없는 것, 따뜻한 것 위주로 섞이지 않게 듬성듬성 담아온 두세 접시면 벌써 포만감이 찾아든다. 혹여 음료수나 과일 라떼 한 잔 곁들이면 배불러서 숨쉬기가 곤란하다. 뷔페 음식은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 '내돈내산' 자리는 가급적 피하며 산다.
언젠가 부부동반 모임에서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며 홍어삼합을 대접한 적 있다. 단 한 번도 입에 넣지 않은 음식이어선지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풍기자 벌써 찌푸린 미간으로 선명한 두 줄이 거부 의사를 밝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한 이의 성의를 생각해 주름진 미간을 잽싸게 거두긴 했으나 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한민족의 특질인 지나친 권유에 못이겨 목구멍을 넘어간 딱 한 점의 홍어는 그날 밤 나를 만신창이로만들었다. 내 몸에서 더는 머물 수 없다며 위 아래 뚫린 구멍을 향해 냅다 탈출 시도를 감행했기때문이다. 1박 휴식하러 간 리조트에서 밤새화장실만 들락거리며 남모를 고통에 시달린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홍어를 먹어본 적 없다. 홍어뿐 아니라 몸이 내켜하지 않는 음식은 되도록 수락하지 않는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피를 끈적하게 만든다는 한의사의 말을 들은 적 있다. 혈액이 탁해지면 흐름이 느려지거나 정체되어 각종 질병을 일으킨단다. 뇌질환, 심장질환, 소화불량, 두통, 불면증 등 여러 가지 후유증을 동반할 수 있단다. 특이 사항 없을 경우 '신경성이다, 스트레스성이다'고 말하는 의사에게 신뢰감이 없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는 듯했다. 먹지 않겠다는 음식을 억지로 권하는 것도 상대에겐 스트레스다. 본인은 세상에 이런 맛 없어서, 한 번 먹으면 반할 거라 확신해서 권유하겠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지옥을 경험하는 이도 있다는 걸 안다면 지나친 권유는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몸과 마음은 스스로 챙길 때 쾌청한 법이니 자신의 체질을 확실히 알아 괴로움이 따를 듯한 음식은 거절할 줄 알아야 위장의 홀대를 피할 수 있다.
간혹 식성이 변했나 싶은 순간을 의식할 때가 있다. 초밥이나 시댁표 녹두전이 먹을 만하고젓가락이 구운 생선 위에서 노닐 때가 그렇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 먹지 않는 것을 보면 온전히 변한건 아닌듯하다. 기회가 되어 먹을 때 전보다 덜 힘들다는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어 삼합, 게장, 새우장, 생굴 따위와 백숙의 닭껍질은 여전히 거부하는 음식들이다. 비리거나 물컹한 식감의 음식은 십중팔구 소화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양가 대단한 음식일지라도 꺼려지는 음식은 반드시 노여움이 치솟기에 미리 차단하는 게 상책이다.
소화가 잘 되어, 답답하거나 속쓰림 증상또는 두통이 나타나지 않을 땐 연근처럼 숭숭 뚫린 가뿐한 몸속에서 흥겨운 가락이 저절로 새 나온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남편의 한 마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