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방', '동화체험마을'-문경모전도서관

시민을 배려한 남다른 방식...문경시의 생활권을 엿보다

by 오순미

한동안 예천에서 근무하게 된 남편이 문경시 모전동에 숙소를 정한 후로는 서로 오며 가며 지내는 중이다. 숙소 정리 후 가까운 도서관 먼저 검색해 보았다. '책이음' 서비스를 신청하면 전국 어디서나 도서 대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800m 거리에 '문경시립모전도서관'이 잡혔다. 15분이면 너끈히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뚜벅이에게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길치여서 처음엔 정직하게 지도를 따라갔지만 두 번째부턴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릴 여유가 생겨 도서관 가는 길이 때마다 새로웠다.


'문경시립모전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시계탑은 나를 돌연 청량리역으로 데려갔다.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번화가라 학창 시절 청량리역 시계탑은 종종 약속 장소이곤 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어 당시 시계탑은 만남의 장소로 최적의 상징물이었다. 모전도서관 앞 시계탑을 보자 그 시절 역전의 광경이 그려지고, 유행했던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문경시립모전도서관 전경과 지난 시간을 추억하게 한 은빛 시계탑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첫눈이 온다구요-이정석-1986)'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훑는데 문경시청 뒤 도서관, 도서관 건너 모전공원이 자리 잡은 게 보였다. 행정·지식·휴식을 한자리에 배치한 걸 보며 문경시가 시민을 배려하는 방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세 가지 기능을 하나의 생활권에 묶어 놓았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누구나 와서 일보고, 머물고, 휴식할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에서 시민의 삶을 돌보는 문경시의 태도가 읽혔다. 시민이 중심인 문경시의 곁을 종종 누려볼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도서관 옆 모전공원은 다양한 공간을 가진 알찬 공원


도서관으로 들어가기 전 그때 그 노래를 들으며 산책 먼저 하겠다는 생각에 공원부터 들렀다. 12월에 갔을 땐 대형 트리가 설치되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는데 1월 16일에 방문했을 땐 해체 후였다. 대신 입구 벽면을 차지한 관광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황장산 촛대바위, 대야산 용추폭포에 특히 더 눈길이 갔다. 여행자나 타지인에겐 문경을 알아가는 유용한 정보였다.


공원으로 들어서면 정상부에 비행기가 보인다. 동네 공원에 웬 비행기지 싶어 계단을 오르면 전투기 2기가 전시된 광장이 나온다. 문경시의 기상을 구현하기 위해 공군 본부로부터 무상 대여해 설치한 것이다. 노후된 전투기지만 공원 정상에 배치해 놓으니 위세가 당당했다.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문경 '수호기'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번영과 희망을 상징하는 공중 이륙 전투기. 사진엔 없지만 화합과 협동을 표현하는 지상 착륙기까지 2기의 전투기가 공원 상부에 설치돼 있다 .


모전공원은 동네 공원임에도 야외 공연장을 갖췄다. 외에도 음악분수, 다목적구장, 장미원, '공스장'까지 구비한 알차고 깔끔한 공원이다. 겨울이라 장미도 지고 음악분수도 휴식기지만 봄이 오면 생동감 번지는 광경에 나도 일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문경 모전공원 장미원에 설치된 장미터널과 장미신전


둘씩 셋씩 짝지어 산책도 하고 운동기구로 체력단련도 열심인 시민들에게 공원은 하루를 시작하는 장소다웠다. 공원을 이용하는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에게서 활기와 여유가 전달되었다. 도서관에 머물다 바깥공기가 절실할 때도 공원은 최상의 휴식처로 알맞은 곳이었다.



모전도서관 어린이자료실 방문기


공원을 둘러보고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2층 종합자료실만 이용하다 1월 16일 세 번째 갔던 날엔 <감정호텔>이란 그림책을 보려고 1층 어린이자료실로 갔다. 창가에 놓인 빈 백, 미니 소파 등 아기자기한 좌석이 다양했다. 그중 원형경기장형 책꽂이 안이 가장 인기 있는 듯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독서하는 모습이 진지해 보였다. 문득 어릴 적 이종사촌과 놀이하던 아늑한 비밀 공간이 떠올랐다. 아기 포대기 끈을 가구와 방문 손잡이에 묶으면 모서리를 낀 양 벽면과 포대기가 이룬 삼각형 공간이 그곳이다. 아이들에겐 작고 분리된 공간이 안전지대이지 않나. 어른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곳, 무한 상상력이 작동하는 자기만의 장소. 도서관이 이 책꽂이를 설치한 건 아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결과라고 짐작됐다.

▲문경 모전도서관 어린이자료실 원형경기장형 책꽂이 안에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자료실 끝 모퉁이에 '책 읽어주는 방'이 궁금했다. 들어가 보니 반달형 방에 스케치북만 한 동화책을 탁상달력처럼 세워 놓았다. 초등학생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구슬꿰기를 하고 있기에 도서관인데 다른 이에게 방해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 정도면 밖에서 잘 들리지 않아 허용하는 수준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단다. 순간 꼰대가 된 듯해 멋쩍게 웃으며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애들 키우면서 베갯머리 독서하던 생각이 떠올라 큰 동화책을 한장씩 넘겨 보았다. 잠자라고 읽어주다 애들보다 먼저 잠들었던 젊은 날이 어른거렸다. 그 방은 일하랴 육아하랴 피곤하고 벅찼던 젊은 날의 내 자화상 같아 애틋함이 배어났다.

▲문경 모전도서관 '책 읽어주는 방'의 모습


여기저기 둘러보다 동화구연가 지인이 추천한 <감정호텔(리디아 브란코비치)>이란 그림책을 꺼내 탁자에 앉았다. 어떤 감정이 찾아오든 서두르고 다그칠 게 아니라 섬세하게 보살펴야 훌훌 털 수 있다는 감정 해결 길잡이 책이다. 오랜만에 읽은 그림책에서 표현과 조절이 쉽지 않은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가 나를 지키는 시작점이란 걸 감지하게 되었다.

▲독일의 '리디아 브란코비치'가 쓴 그림책 <감정호텔>


모전도서관에는 체험형 동화구연을 진행하는 '동화체험마을'이란 별도의 공간도 있다. 가상 현실과 동화구연을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동화 속 배경에 주인공이나 등장 인물로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영상 놀이터다. 영상 세대인 유아들이 온몸으로 책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몰입도가 높을 듯하다. 읽어주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참여형 놀이로 진화시켜 독서에 흥미를 유발하도록 신경 쓴 점이 돋보였다.


시계탑, 원형경기장형 책꽂이, 책 읽어주는 방, 동화체험마을까지 모전도서관은 회귀 징후를 자극하는 사물과 장소로 내 그리움의 곁불이 되었다. 내 지난 시간에 생생하게 닿았던 문경의 요소들은 타임캡슐을 개봉한 기분이었다. 지난날이 느리게 활강하는 곳에서 주섬주섬 챙겨본 기억에 마음까지 훈훈했다.


낯선 도시 문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공원과 도서관 덕분에 문경시에 한 발 더 내디딘 느낌이다. 모전도서관은 '책이음' 서비스에 참여하지 않는 도서관이어서 도서 대출은 불가한 처지지만 새록새록 떠오르는 정겨운 도시로 문경시를 담아보려 한다. 가끔 들를지라도 여행자가 아니라 시민의 시선으로 문경을 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