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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Oct 26. 2022

장臟 낼 사람으로 살아요

장기기증 서약

뇌사자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합니다. 유명 인사의 장기기증 사실이 알려질 때 기증자가 일시적으로 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 줄어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아직 뇌사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이죠.
[공감언론 Newsis 2022.9.29]


뇌사 시(장기기증)나 사후(각막기증)장 낼 사람으로 살겠다고 서약을 한 게 2019년 2월이니 3년 전 일다.


장기기증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 전이지만 방법을 몰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외출했다가 명동성당을 둘러보던 중 한마음한몸운동본부(故김수환 추기경 설립) 장기기증 홍보 부스가 있기에 남편과 함께 서약하게 되었다.


인류애가 불타서, 지극히 이타적이라서, 사회적 의무감이 투철해서가 아니다. 소심한 소시민으로 살다보니 거룩한 마음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나에게선 온전한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 다른 이에게선 새 삶의 시작이 될 수 있다면 끝까지 품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장기기증 서약은 법적 구속력 없는 약속의 의미라 의사가 바뀌면 변경 및 취소도 가능하다. 실제 기증 시점에서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률적으로 기증이 이뤄질 수도 없다. 때문에 서약한 그날 동의를 구하는 뜻에서 아이들에게 알렸더니 장기 적출 후 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허술해 가족들이 곤혹을 치렀다는 뉴스(2017년 한 언론사 인터뷰로 알려진 일부 병원의 시신 수습 소홀 문제) 못 보셨냐며 지적하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리 있는 반대라 우리 의견을 무조건 관철시키기엔 무리가 따랐다. 차츰 정비되지 않겠냐고 다독이긴 했지만 가족에게 불이익이 간다니 맘이 복잡했다.


기증자에게 점잖은 예우는 당연할 거라 해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 오래 전 결정이었고 마침 기회가 왔기에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인 것이다. 불합리한 처사라는 생각과 함께 망설임이 깃들었다.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려다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 싶으니 기증의 의미가 마모되기분이었다. 기증자의 마음이 부족한 예우 때문에 취소된다면 나눔의 희망은 윤곽도 무게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 안타까운 심정었다. 그래도 따뜻한 맘으로 신청한 것이니 예우가 달라질거라 기다려보기로 했다.



《넛지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3부에서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람직한 선택 설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장기기증자를 유치하는 활성화 방안 몇 가지를 서술해 놓았다.


스스로 기증을 원하다고 입증해야 기증이 이뤄지는 명시적 승인.

주州가 사망자나 가망 없는 사람들의 신체 권리를 소유하여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장기를 적출할 수 있다는 상례적 적출-괴기스럽지만 많은 주각막에만 이 규정 허용.

모든 시민이 장기기증에 동의한다고 추정하되 기증을 원치 않을 경우 의사를 표명할 기회를 제공하는 승인 추정.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의사 표시란을  갱신할 때 체크 표시를 하게 하는 선택 위임,

이 그 예다.


미국은 모든 주가 명시적 승인을, 유럽은 많은 국가승인 추정을 법으로 채택하고 있단다.

여기엔 정치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있고 자신의 신체에 무엇이 행해지는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방법있지만 장기기증 유치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절실 만큼 척박한 예우에 대하여도 고민하지 않았을까 짐작 보았다.


꺼끄꺼끌하게 남았던 기증 예우대해 검색도 해보고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전화도 봤다. 다행히 낳았던 우려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내용이 전달되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보건복지부 산하) 기증 업무 및 기증자, 유족 예우를 맡은 기관이란다. 운구 및 행정, 복지 서비스를 돕심리적 회복을 위해 애도 상담까지 진행하도록 <기증자 및 유가족 예우 표준 매뉴얼> 두고 있단다. 2017년 언론 보도 이후 예우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니 아이들의 염려를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약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난 후 등록카드가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미비한 제도로 국민적 인식과 공감대 형성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기증자와 유가족의 예우 문화가 선행되면 생명 나눔은 자연스럽게 확산되리란 예감이 든다. 그래야 이 작은 등록카드가 기증자와 유족에겐 아름다운 마무리로, 환우들에겐 한 줄기 빛으로 선명하게 투영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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