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른 학교에서
오랜만에 들른 늦은 오후의 학교는 한적했다. 군데군데 서있는 벚꽃나무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벚꽃잎이 남아있었지만 새 학기의 왠지 모를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건물들은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한 내 기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의 낮만 기억하는.
학과실에서 졸업장을 가지고 나오는 길에 학교 본부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기로 했다. 벚꽃나무 아래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가 왠지 모르게 추워 보였다. 지난겨울에 두툼한 옷만 입고 보다가 어느새 옷이 얇아지니 옛 기억에 그랬나 보다 싶었다. 얇은 재킷을 입은 친구가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지냈어?"
예의상 물어오는 이 인사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 "그냥 살아."나 "별일 없어."가 이제껏 대부분의 답이었다. 이 대답은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살아보니 별일이 있어도, 그래도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려 하기도 한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이 날도 별수 없이 그런 대답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 달 전부터 쓰던 시나리오를 여전히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 대답을 듣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나는 요즘 진짜 너무 힘들어."
학기 초라 주말도 반납하고 매일 밤 10시까지 일한다는 친구의 생일은 저번 주 일요일이었다. 주말에 일하는 것도 서럽고 가뜩이나 생일이라 더 시무룩해 있는데 생일 케이크를 본 과장님이 한 말씀하셨단다.
"요즘은 회사에서 이런 것도 챙기나?"
친구는 그날 조퇴를 했다고 했다. 비록 밤 8시긴 했지만.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집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 이런 게 사회생활이라면 다들 그냥 이렇게 5년이고 10년이고 사는 걸까 하면서.
우리는 학교 안을 걸었다. 벚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데 나는 친구의 말을 들을 뿐 해줄 말이 없었다. 이야기는 점점 심심하게 흘러가다가 대학교 때 우리가 좋아했던 교수님에 대한 얘기로 향했다. 쉬는 시간뿐 아니라 수업 후에도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던 교수님이었다.
우리가 얘기하던 그날은 교수님이 학교 앞 어느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레집에서 수강생 몇 명에게 점심을 사주시던 날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친구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고 나는 글을 쓰며 먹고살고 싶다고 답했다. 교수님은 살면서 의도가 있든 없든, 실수든 아니든, 고개 숙일 일이 많다고 했다. 부탁할 일도 뭐 그렇게나 많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강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처음 말했던 순간의 오묘한 기분을 여전히 기억한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교수님이 밥을 사주시는 날은 많았고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기 때문에 친구가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나는 그날을 기억해냈다. 학교 안 벤치에 앉아 친구는 그때 교수님이 했던 첫 번째 "잘 부탁드립니다"의 순간을 자신도 느꼈다고 얘기했다. 온전히 자신을 위해 인사의 말을 내뱉는 첫 순간.
사회초년생의, 시작하는 사람의 부탁을 자신도 하고야 말았다고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엊그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작품기획서를 제출하면서 나도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두 손을 부여잡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열심히 쓸게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