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콘서트라는 것을 처음 가봤기 때문에 팬미팅하러 가는 마음가짐으로 출발해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글로만 마주했던 정감을 얼굴로 마주하게 되니 한참을 들떠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저분이 남편분이신가?"
친구가 가리킨 오른쪽 구석에는 한 남성이 시인의 모든 것을 포착하고 말겠다는 듯 몸을 사방으로 구부리며 휴대폰 카메라로 무대 위를 찍고 있었다. 나는 놀랐다. 그녀가 결혼한 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녀의 글에서 존재론적 외로움을 마주하곤 했다. 삶에서 이것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그런 생각을 왜 하면서 사냐고 나에게 물었다. 비논리적이지만 나름의 논리는 갖춘, 그러니까 우리가 알면서도 알 수 없는 그런 게 있더라 하고 답했다. 아무튼 그런 본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시로써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니.
나는 무대 위 시인을 찍는 열성적인 남성을 찬찬히 살폈다. 시인의 남편. 평범해 보인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긍정적여 보이는 사람이다.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묻는, 파고들면 슬픈 일이 생긴다는, 혼자 있어도 같이 있어도 괜찮다는 시인을 웃으며 보듬어줄 시인의 남편. 나는 시인에게 결혼을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시인은 답했다.
2. 7월, 비로 뿌연 창가에서.
비 내리기 직전의 하늘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그 용기로 나는 두 가지 일을 해냈다.
우선, 노트북을 열고 지난 내 모든 글들을 읽었다.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시, 짤막한 소설, 제출한 원고, 일기들까지... 글의 내부적인 부족함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그다음으로는 이 글을 썼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글에 묻어나는 갖가지 공간과 사람들, 냄새, 움직이는 것들의 속도. 글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존재했던 기억들을 그려냈다. 안국역 거리, 외대 앞, 북구의 끝 양산동, 건물이 무너진 학동 버스정류장 앞 카페, 친구 집 방 침대, 인권 법 수업 교수님.
스물셋 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곰팡이 핀 딸기잼을 빵에 발라먹다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고 경악하며 일기에 적었다. '음식은 밝은 곳에서 먹어야 한다.', '해피엔딩은 없다.'
그리곤 죽음에 대한 소설을 썼다. 고작 곰팡이 핀 딸기잼을 먹고 죽는 일은 없을 테지만 우습게도 그 일로 죽음이 두려웠던 거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녀는 단념한 듯 죽음을 받아들였다. 외로움 같은 죽음이었다.'
나의 창작이란 대단치 않게도 이런 극단에서 왔다.
두 번째로 나는 지난 연인에게 사과의 문자를 보냈다. 할 말을 다 적고 나서 보내기 전에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제발 보내지 말라고 했다.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상대가 나의 사과를 받아줄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의 타당성을 인지하고 친구의 말에 한껏 공감한 후 문자를 보냈다. 이제야 사과하는 나의 이기성도 사과한다는 말을 덧붙여서. 반나절이 지나서야 상대는 문자를 읽었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답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서운했다. 이 서운함마저 언젠가는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터무니없는 용기가 이뤄낸 이 어이없는 성취 때문에 기분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창밖의 거센 비는 창문의 것이 아니었다.
3. 전주에서의 낮.
오자마자 현상한 전주 필름
에어비앤비로 빌린 주택 안에서 넷이 둘러앉아 게임을 했다. 어떤 물건이나 장소에 대해 돌아가면서 설명을 하면 그중에서 정답을 모르고 설명하는 라이어를 찾아내는 게임이었다. 그 판에서 나는 라이어가 아니었고 주제어는 '양식장'이었다. 한 친구가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가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웃겨서 실소를 하고 말았는데 놀랍게도 그 친구는 라이어가 아니었다. 그 친구의 고향인 함평에는 양식장을 하는 친구네가 있다고 했다. 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떠올리는 물체의 이미지 범주는 꽤나 주관적이고 선험적인 것이었다. 나는 양식장을 가본 적이 없어서 TV에서 본 양식장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양식장을 감싸고 있는 검은 TV 프레임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다.
도란도란 붙어 앉아 같이 게임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30cm 거리의 외로움. 물리적인 거리는 의지로 바꿀 수 있지만 이 고독의 거리는 좁아들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세계에는 온전하게 자리잡지 못한 것들이 있다.
4. 소울에 메이트가 필요할까.
소울에 메이트가 필요할까
나는 오래도록 소울 메이트를 갈망했다. 소울끼리 맺어지는 동맹은 곧 생존을 위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나의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솔직한 감정을 얘기해도 이해해줄 상대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영혼이 자립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서로의 것들을 갉아먹으며 기생적으로 생존하는 관계를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