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저에게 ‘명랑’은 그야말로 ‘사치’였습니다.
얌전하게 수놓으며 지내다가 나 좋다는 남자라도 나타난다면 덥석 시집을 가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얼마나 조신하게 지냈던지요.
그러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일탈의 욕망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요.
그때 만난 시가 오은 시인의 <없음의 대명사>였습니다.
그곳
-오은
“아빠, 나 왔어!” 봉안당에 들어설 때면 최대한 명랑하게 인사한다. 그날 밤 꿈에 아빠가 나왔다. “은아, 오늘은 아빠가 왔다.” 최대한이 터질 때 비어져 나오는 것이 있었다. 까마득한 그날을 향해 전속력으로 범람하는 명랑.
명랑하다 못해 범람하는 명랑이라니, 이거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철철 흘러넘치는 명랑한 내가 되리라 마음먹었던 제가 있었습니다.
”명랑아~”라고 부르면 저절로 명랑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반백살이 된 지금의 명랑은 좀 더 진중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논술 선생이라는 명함이 부끄럽지 않게 이제는 제 어깨에 책임감을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려 말과 조선 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 기관이었던 성균관에서 ‘성균‘은 주례의 대사악에 나오는 용어로, 음악을 조율하는 것과 같이 어그러짐을 바로잡고, 지나치고 모자라는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 부합하여 제 이름을 딴 ‘손균관’은 사유하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저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이자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는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처럼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