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림 여행 6
이번 제주 여행의 주목적은 사촌 동생 M이 올해 3월에 문을 연 게스트 하우스 방문이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운영이라니, 말만 들어도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자세히 속을 들여다보면 웃을 수만은 없는 사정 (자금 문제, 운영의 어려움 등등)이라는 게 있는 법이더라. M은 게스트하우스를 열기 전 일 년간 제주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월급으로 약 30만 원을 받고 일하며 게스트하우스 운영의 노하우를 익혔다고 한다.
제주 공항에 도착해 몇 년 전에 만났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 사촌 동생 M군을 기다렸다. M군은 차를 몰고 공항까지 마중을 나왔다. 귀여운 경차에서 산만한 덩치의 M군이 내렸고... 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아기적 모습이 어른거렸다. 비탈길을 못 내려가서 내가 손을 꼭 잡아줘야 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벌써 이렇게 커서 혼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이 되다니...(훌쩍) 참 대견하고 세월은 야속하다.
게스트 하우스는 동쪽으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했기에 가는 길에 요즘 핫한 월정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M은 월정리에서 망고주스를 사 주겠다고 했다. 월정리에서 망고주스를 마시는 게 요즘 트렌드라고 한다(?)
아직 본격적인 피서철은 아니라 (이때가 6월 초였다.) 해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적당히 한가한 해변에 죽 늘어선 노란 파라솔이 해변의 방점처럼 찍혀있었다.
일 년차 도민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망고주스를 사들고 해변으로 나갔다. 바다를 배경으로 망고주스를 든 인증숏을 찍어야 한다는 도민의 조언에 따라 나도 사진을 남겼다.
오후 세시를 넘어가는 시각, 아침부터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나는 제주도민 M에게 월정리의 맛집으로 가자고 했다. M은 전복돌솥밥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차를 돌렸다. 그런데 그곳이 어찌나 맛집인지 별도의 건물에 대기실까지 있었고, 이미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M이 도민만 아는 비밀의 핫스폿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는데...
월정리에서 십 분 정도만 달리면 나오는 한적한 바다였다. 보아하니 관광객은 얼씬도 하지 않고 않는 도민들만 한가로이 산책 나오는 곳이었다. 고요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청명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할망(망태기를 짊어진)의 동상이 인상적이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저수지는 바다와 연결돼 있는데, 여기로 양식하다 실패한(?) 물고기들을 방류한다고 한다. 보통 크기가 작거나 하여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고기라는데, 자세히 보니 바닥에 광어로 추정되는 물고기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이 물고기는 아무나 건져가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제주도 사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더니 참말이었다.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식당으로 돌아가서 그 유명하다는 전복돌솥밥을 마주했다. 돌솥밥은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고, 고명으로 올라간 전복이 지나치게 얇게 저며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전복 내장으로 양념한 밥맛은 아주 좋았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전복돌솥밥은 오직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다음 목적지는 관광지의 대명사 섭지코지였다. 이병헌과 송혜교 주연의 초히트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드라마를 사실 나는 못 봤다. 그 시기에 딱 외국에 있던 때라, 섭지코지가 드라마에서 어떤 배경으로 등장하는지 아직까지도 모른다. M군은 일일 가이드를 자처하며 일 년 차 제주도민으로서의 노련한 운전 솜씨로 나를 섭지코지로 안내했다.
우리는 주차를 하고 울타리를 따라 쭈욱 걸어 올라갔다. 앞서서 걷기 시작한 수많은 사람을 따라 걸으며 오른쪽으로 펼쳐진 바다를 감상했다. 파란 바다를 보며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온 몸과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섭지코지 꼭대기에는 하얀 등대가 있었다. 처음에는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남들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가까워졌다. 등대로 가는 마지막 계단 앞에서 잠시 망설인 건 사실이나, 여행을 하며 깨달은 게 있다면 언제나 끝까지 가 보면 더 멋진 풍경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무리해서라도 끝장을 보는 게 좋다, 적어도 여행지에서는.
그리하여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면... 뭐 이제까지 걸어오며 보던 풍경이었다. 끝까지 가 보았음에도 실망스럽거나 별 다른 풍경을 못 볼 때도 있다. 여행의 묘미란 보장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별로다 싶으면 그저 재빨리 오던 길로 돌아가면 된다. 내려오던 길에 아까 봤던 바다를 또 봐도 그 아름다움은 질리지가 않았다.
첫째 날의 제주 도민 투어는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그 날의 이야기는 아직 반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