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그린 생각
동양의 몰디브라는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에 다녀왔다. 동양의 뉴욕, 동양의 하와이, 동양의 어쩌고는 죄다 시시하다는 걸 이미 아는 나이지만 그 작은 섬을 둘러싼 바다는 정말로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적어도 편집된 프레임 안에서는 동양의 몰디브라 불릴만 했다. 그러나 그 섬에서 찍은 아름다운 바다,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숏만 보면 티 하나 없는 옥이지만 그 프레임을 조금만 확장해 보면 당장 모래밭에 뒹구는 페트병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따로 쓰레기통도 없는지, 구덩이를 파서 쓰레기를 한 데 모아 놓은 곳도 있었다. 그 쓰레기를 태워 버리는지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했지만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걸 봐서 제대로 된 처리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말레이시아 현지 투어 가이드들은 외국인 관광객(주로 한국과 중국인)들을 보트에 태우고 와, 적당한 데서 스노클링을 시킨 다음 배가 고파진 관광객들을 섬에 풀어놓는다. 뷔페식으로 차린 밥을 배식해 준 다음, 자기들도 나무 그늘에 앉아 밥을 먹고 바다를 구경하고, 셀카를 천구백구십구 장 정도 찍고 한 두 컷의 인생 샷을 건지고 만족해하는 관광객들을 다시 보트에 태우고 사라지는 것이다.
섬에서 염소를 키우고 사는 현지인들은 관광객들이 남기고 가는 쓰레기 더미를 어찌 처리할 줄 몰라 다 끌어안다가 파도가 쓸어가도록 놔두고, 해변에 쓰레기가 뒹구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져 종국에는 그 천국의 섬과 쓰레기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에 무덤덤해진 걸까? 관광지 섬에 대한 말레이시아 정부의 정책에는 아마도 환경 보전이라는 항목이 없거나 매우 느슨할 것이다. 먹고살기 바쁜 주민들이 법으로 통제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굳이 나서서 행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쓰레기 문제로 관광객이 줄어든다든가 혹은 섬 전체가 가라앉을 기후 변화의 위험이 눈 앞에 증거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떤 실질적인 조처도 취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의식 있는 소위 공정 여행 또는 착한 여행을 하는 자였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그 쓰레기들을 다만 몇 개라도 주워 들고 왔거나, 혹은 미국식의 명랑함과 적극성을 갖춘 여행자였다면 외국 관광객들까지 설득해서 다 같이 손에 손에 쓰레기를 들고 돌아가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만 그들처럼 자기 땅도 모자라 남의 땅, 심지어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며 오물을 생산하고, 쓰레기를 남기는 이기적인 관광객에 지나지 않았다.
언젠가 세부에 갔을 때, 나는 그다지 고급 리조트에 묵지 않았음에도 그곳에서 관광을 한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리조트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현지인들은 다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 살고 있었고, 아이들은 맨발로 다녔고, 낡은 옷가지에는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있어 처참할 지경이었다. 세부에 도착하기 전후로 위험하니 절대로 리조트 밖을 걸어 다니지 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렇지만 부와 가난이 명암처럼 선명히 대비되는 그곳에서 안락한 리조트 안에만 머물며 맛있는 걸 먹고, 수영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물론 나도 충실한 관광객의 입장에서 다 즐겼지만) 어쩐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 같았다.
그리고 나와 동행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리조트 밖으로 걸어 나갔으며, 호핑 투어를 해 주겠다는 현지인을 따라가서 뭐에 홀린 듯 투어 계약을 해 버린 것이다. 다음 날, 우리가 허름한 보트에 올라타자 그 필리핀 아저씨의 친척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와서 우리에게 팔찌를 강매(?)했고, 우리는 기꺼이 호구가 되었다. 남들처럼 바다 중간에서 스노클링을 했지만, 아저씨가 점심을 먹으라고 데려다준 곳은 어느 관광객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무인도였다. 그곳에서 아저씨는 직접 잡아온 듯한 수상한 물고기를 바닷물에 씻어 모닥불을 직접 피운 다음 고기를 구워주었다. (정글의 법칙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요리가 또 말도 안 되게 맛이 있었다. 그리고 물고기도 살지 않는 황량한 그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사지가 잘리지도, 장기를 떼이지도 않고 무사히 호텔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온 뒤, 세부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보았다. 다들 끝내주는 섬 풍광과 호핑 투어 때 먹은 9첩 반상 뺨치는 점심 만찬 사진이 보란 듯 전시되어 있었다. 아, 이들은 천국을 봤구나. 이왕 같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는 것이면 천국을 보고 왔어야 했는데, 나는 괜히 애써서 어둠을 보고 온 것이었다. 한동안 그 아저씨에게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 투어야 말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착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투어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페소는 거대 여행사나 기업에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고, 모조리 그 아저씨와 친지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다. 친구와 나는 그 후로도 우리는 세부에서 했던 억지 착한 여행을 떠올리면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는다. " 살아 돌아온 게 어디야."
UN 기후변화 대사에, 환경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요즘 욕을 먹고 있다고 한다. 환경 보호 활동과 연설을 하느라 전용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그가 정작 엄청난 양의 기름을 낭비하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디카프리오는 모순적인 인간의 대표 격이 된 듯싶다. 그처럼 스케일이 크진 않지만, 나 같은 소시민도 매년 한 두 번 비행기 연료를 낭비하고 세계 곳곳에 가서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쓰레기를 생산하고 남의 육지와 바다를 더럽히고 온다. 이제 돈과 시간만 있으면 지구 상 인간이 가지 못 할 곳은 없다. 여행하는 인간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개인의 활동 범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확대되었다. WE ARE THE WORLD 우리는 손을 맞잡고 남들이 가지 않은 곳,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땅이나 바다를 찾아 나선다. 점점 더 많은 섬이 가라앉을 것이고 더 많은 육지가 더럽혀지고 더 많은 동물이 멸종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돌이킬 수 없는 물결 속에 나 또한 휩쓸리며 작은 악을 보태고 있다.
여행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가? 의식의 성장, 견문의 확장은 물론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본디 더러움을 생산해 내는 존재로 인간이 멀리 여행할수록 지구는 필연적으로 더러워진다. 여행할수록 이 지구 상에서 나쁜 건 오직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여행하는 인간은 더 나쁘다. 분명히 세상에는 착한 여행, 공정 여행, 환경을 살리는 여행을 하는 좋은 인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게으르고 그저 사태를 관망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는 여행할수록 나쁜 인간이 된다.
말레이시아 투어의 마지막은 반딧불 관광이었다. 깜깜한 밤, 보트를 타고 칠흑 같은 강을 유유히 흐르며 나무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는 반딧불을 보는 건데, 생전 처음 보는 반딧불이들은 너무 예뻤다. 투어 가이드는 암컷의 불을 가장한 플래시 빛으로 수컷인 반딧불이들을 유혹했다. 반딧불이들은 뭔지도 모르고 떼를 지어 보트 안으로, 사람들 곁으로 날아왔다. 그중 몇 마리는 내 손에 앉아 반짝반짝 빛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마리는 아이들이나 부주의한 관광객의 손에 잡혀 그대로 사망했다. 매일 가짜 빛이 그들을 유혹할 텐데 매일 속아 넘어가는 반딧불이들의 미래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딧불이의 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마, 몇 년도 지나지 않아 그 강의 반딧불이들은 씨가 마를 것이다. 그리고 반딧불이가 더 많은 청정지역에 더 많은 관광 보트가 들어가 똑같은 짓을 할 것이다.
그 옛날 태국에서 코끼리 등에 탄 뒤 코끼리가 쇠꼬챙이에 찔려가며 걷는 걸 직접 본 후로는 절대 코끼리 관광을 하지 않는다. 코끼리 학대 영상을 백 번 보는 것보다 직접 한 번 보는 게 더 효과적이다. 삶이 늘 행복할 순 없듯이 여행도 늘 편집된 천국을 보는 것이 될 순 없다. 어느 시기가 닥치면 누구나 슬픔과 고통을 겪듯, 여행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세계의 그늘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늘 패키지여행만 다닐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여행하는 나쁜 인간으로 남을 테지만, 어떤 여행을 해야 하는가, 이 지구에 어떤 작은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를 어느 명소에 가고 어느 맛집에 갈지 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