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그림 소설
미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뺨에 울긋불긋한 여드름 세 개가 돋아있었고, 눈 밑의 기미는 며칠 새 더 짙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세수를 할 때, 손바닥에 닿는 피부의 감촉은 전에 없이 거칠었다. 미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대로 피부에 탄력을 주기 위해 축 늘어진 볼 살을 이리저리 꼬집어도 보고 찰싹찰싹 소리 나게 때려도 봤다. 그럴수록 거울 속의 얼굴은 밉게 일그러질 뿐이었다.
미라는 얼굴을 싹 다 밀어버린 뒤 쓸데없이 남아도는 면적을 깎아 내고 새로운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싶었다. 미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미라는 언젠가 연예인 여러 명이 나와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연예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한 남자 연예인은 이렇게 말했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미녀가 어떤 삶을 사는지 평생 알지 못하고 죽을 거예요. 미녀 앞에서는 모든 문이 자동으로 열리거든요.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하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죠."
미라는 토익 점수도 없고 학점도 형편없었지만 대형 제약 회사에 단번에 취직한 동기 J를 떠올렸다. 면접장에 잠시 나온 사장은 인사팀장에게 지나가는 말로 "쟤, 사회생활 참 잘 하게 생겼다."라고 했고, J는 합격 통지서를 받아 사장 비서실에 배치됐다.
그 후, 미라의 과 동기 사이에서는 "사회생활 참 잘 하게 생겼다"가 유행어처럼 번졌는데, 미라를 포함한 대다수는 스스로 사회생활 잘 할 얼굴이 아니라며 자조했다. J는 소주 광고에서 골반춤을 춰서 유명해진 아이돌 '수리'와 무척이나 닮았던 것이다.
오전 11시가 되자 미라는 별 수 없이 집을 나서서 도서관으로 갔다. 요즘 미라가 가진 것이라고는 도무지 줄지 않는 시간뿐이었다. 영진과 헤어진 후로는 하루 종일 누구와도 한 마디 나누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영진은 미라가 일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 다음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전화는 꺼져있었고 영진의 자취방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미라는 일 년간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를 다니며 번 돈으로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는 영진에게 밥과 커피를 샀고 시험 교재까지 사 주었다. 언젠가 미라가 영진에게 자기를 왜 만나느냐고 물어봤을 때 영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넌 예쁘지는 않지만 착해. 예쁜 애들은 널렸지만 착한 여자는 드물거든, 진짜 착한 여자 말이야."
미라는 도서관에 가자마자 컴퓨터에 앞에 앉아 한 시간 동안 '잡스 코리아'에 접속해 구인광고를 샅샅이 뒤져 쓸 만한 것을 메모해 두었다. 딱히 지원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그렇게 해 둬야 마음이 편했다. 기적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또 그 회사도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는 날이 언젠가 올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생각이 그 대목에 이르면 미라는 목구멍에 자갈이 박힌 것처럼 답답했다.
영진은 기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와 꿈이 있었고 미라는 영진의 그런 점이 좋았다. 늘 자신이 돈을 쓰면서도 영진의 꿈에 투자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자부심 좋아하네, 미친년. 넌 그냥 호구였어.' 미라는 분한 마음에 발을 굴렀고, 그 요란스러운 동작에 열람실에 있던 사람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미라는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서 신문 진열대로 갔다. 머리를 식히기에는 신문 만한 게 없었다. 미라는 매일 다섯 종류의 일간지를 맨 뒷장부터 거꾸로 넘겨가며 샅샅이 읽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인 광고란도 빠짐없이 읽었다. 주로 피상속자를 찾는다던지 실종자를 찾는다는 광고 사이에서 영진의 소식을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그때 미라의 눈에 아주 작은 글씨로 쓰인 광고가 들어왔다.
<미인 기계 시험 참가자 모집>
미인으로 새로 태어나는 기회! 20-30세 여성에 한함. 시험 참가자에 한해 비용 일체 무료. 선착순 5명.
T. 02-563-98XX 미인 기계 연구소
구인 광고 위쪽에는 개미허리로 유명한 여자 연예인이 청바지를 입고 허리를 드러낸 채 엎드린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나처럼 되고 싶어?'라고 묻는 듯했다.
"신종 장기 매매 수법인가? 설마, 아직도 이런데 속는 사람들이 있을리라고..."
미라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광고 부분을 살며시 찢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미라가 그 수상한 연구소에 전화를 한 건 일주일 뒤였다. 누구와라도 좋으니 말을 하고 싶기도 했고, 솔직히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다섯 번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미라가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하십시오."
중저음의 중년 남성이었다.
"저... 미인 기계 광고를 보고 전화드렸어요."
"광고요? 아... 그게 취소를 한다고 했는데 그대로 나갔나 보군요.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더 이상 사람을 모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미인 기계라는 것이 뭐지요? 정말로 그런 게 있기는 한 건가요?"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그는 목소리를 한층 더 깔았다.
"그 기계는 확실히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문제지만요. 그럼 이만..."
"잠시만요! 그 미인 기계라는 게 정말로 있고, 또 매우 성공적이라고 한다면 숨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광고를 본 사람으로서 그 기계를 시험해볼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불법만 아니라면 말이죠."
미라는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깊은 한 숨을 내 쉰 다음,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았다. 여러 사람이 제각기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렇다면 일단 저희 사무실로 내방하십시오. 광고에 나간 대로 선착순 5명까지 비용은 무료입니다."
남자가 알려준 주소는 강남의 빌딩 숲 속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번쩍번쩍하는 통유리로 된 현관을 지나 로비로 가자 사원증을 목에 건 직원들이 바삐 걸어 다녔다. 미라는 잠시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걸음걸이도 당당한 그들에 비해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에 배낭을 멘 자신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았다.
그때 멀리서 한 남자가 미라를 발견하고 환히 웃으며 걸어왔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상의 훈남이었는데 특히 피부에 꿀을 바른 듯 윤기가 났다.
"지금쯤 오실 거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인 기계 연구소를 찾아오신 이미라 님 맞으시죠? 저는 편하게 미스터 김이라고 부르십시오."
둘은 긴 복도를 가로질러 복도 맨 끝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숫자판에는 1F와 B15 밖에 없었는데 김은 B15을 눌렀다. '지하 땅굴이라도 가나?' 미라는 초초해졌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김에게서 풍겨 나오는 상큼한 민트향이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우자, 어리석게도 다시 마음을 놓았다. 미라는 새삼 자신의 체취가 걱정되었다.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리고 외출해 본 것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자 바로 유리문이 나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다랗고 긴 하얀 방이 나왔는데, 소파 하나와 탁자 하나가 있었는데, 탁자 위는 담배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와 종이컵, 신문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방 끝 쪽에 긴 책상 하나가 있었는데, 네 명의 남자가 무슨 심사위원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기서부턴 박사님들이 알아서 해 주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김은 당황한 미라를 내버려두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미라는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 서서 여차하면 버튼을 누를 태세를 갖췄다.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네. 저 정도면 그냥 살아도 될 텐데." 마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가 말했다.
"그래도 본인은 상당히 불만일 거야. 아무리 잘 봐줘도 미인이라 하긴 어려우니까." 머리가 벗어진 살찐 사내가 말했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이야. 얼마나 미인이 되고 싶은지 열망의 크기가 중요한 거지, 결국은." 얼굴이 창백하고 안경을 낀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머리가 벗어진 살진 사내가 끼어들었다.
"미인이 되고 싶지 않은 여자가 있으려고? 하물며 저렇게 애매하게 생긴 여자는 더 고민일 거야. 차리리 대놓고 못생겼다는 말을 듣는 여자는 일찌감치 성형 수술이라도 하지. 저런 경우는 화장으로 커버할 수 있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예뻐진다는 말을 믿다가, 결국 별 볼일 없는 남자 만나서 그냥저냥 살다 죽는 거지. 평생 남한테서 예쁘다는, 미인이라는 소리 한 번 못 듣고 말이야."
머리가 새까맣고 안색이 어두운 남자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미라는 울컥하여 살찐 사내를 노려보았다.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미라는 주먹을 꽉 쥐고 살찐 사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는 당신은 뭐 보기 좋은 얼굴인지 알아요?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쪄가지고! 남의 외모 품평할 시간에 거울이나 봐요!"
미라는 씩씩거리며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소리쳐 본 건 평생 처음이었다.
"그러게 항상 이런 일의 반복 아닙니까. 누가 외모 지적하면 울컥해서 한 대 칠 기세로 따지고 들고. 뭐 평생 그렇게 살고 싶으시면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가시고." 살찐 사내가 냉담하게 말했다.
"안 가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 미인 기계라는 게 뭐 나를 절세미인으로라도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김이 다시 등장했다. 웬 늘씬한 미녀가 그의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검고 풍성한 생머리에 투명한 하얀 피부, 그린 것 같은 눈썹과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과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 군살이 없는 매끈한 팔다리. 하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등에는 날개라도 달려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들어서자 어두웠던 네 남자의 얼굴이 일시에 밝아졌다. 덩달아 사무실도 조명을 하나 더 켠 것처럼 환해졌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다리를 꼰 다음 두 손을 허벅지에 내려놓고, 등을 곧추 세우고 앉았다. 그러자 불룩 솟아오른 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더욱 부각되었다. 미라는 저도 모르게 여자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유리라고 해요."
유리라는 여자는 미라에게 고개를 돌려 기계적으로 인사했다. 하지만 시선은 1m 앞에 떠있는 먼지를 보는 듯 공허했고, 무표정한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여자 친구 분이 참 미인이시네요.” 미라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하하, 유리 양은 제 여자 친구가 아닙니다. 저희 클라이언트인 국내 최고 부동산 재벌의 약혼녀이죠. 유리, 탁자를 치우고 커피 두 잔만 타 주겠어?”
유리는 능숙하게 재떨이를 비우고 신문지를 정리하고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사무실 한쪽에 놓인 선반에서 믹스 커피를 찾아내 종이컵에 붓고 생수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으며 허리를 숙였을 때, 모든 남자의 시선이 유리의 엉덩이에 쏠렸다. 유리는 커피 봉지로 휘휘 저은 커피 두 잔을 미라와 김에게 내밀었다. 김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커피를 받아 들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
“역시 커피는 유리가 타 줘야 맛있다니까. 고마워.”
“당연한 일인걸요.” 유리는 표정도 안 바꾸고 말했다.
미라는 눈앞의 광경에 소름이 돋았다. 자동인형처럼 움직이는 여자, 의심스러운 박사라는 치들, 클라이언트니 하는 용어. 이 수상한 연구소는 여자를 전신 성형시켜서 고급 창녀로 팔아먹는 곳이 분명했다.
"유리 양은 지금 막 하와이의 별장에서 한 달간 지내다 돌아온 참입니다. 청담동과 해운대에도 아파트가 한 채씩 있지요. 유리 양의 청담동 아파트에는 백화점 명품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형 드레스룸이 있습니다. 매년 스무 차례 이상 해외여행을 하고, 주말에는 VIP 자격으로 클럽 파티를 즐깁니다. 무엇보다 별 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이 제품을 설명하는 홈쇼핑 호스트처럼 빠르게 이야기했다.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라도 되나 보죠?"
"미인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만 말씀드리죠. 유리 양은 아름답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공짜로 누립니다. 최고의 미녀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고 할까요.”
미라는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커피를 단 숨에 들이켰다. 얼른 이 곳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라가 배낭을 움켜쥐고 소파에서 일어나자 김이 황급히 저지했다.
"유리 양의 과거 사진을 가져오시죠."
김의 지시에 머리가 새까맣고 안색이 어두운 남자가 사진을 가지고 왔다. 보기 드문 추녀의 전신사진이었다. 넙데데한 얼굴은 온통 붉은 여드름 투성이에 눈은 단춧구멍만 하고 펑퍼짐한 코는 아무렇게나 붙어있었고, 눈썹은 희미한 형태만 있을 뿐이었다. 팔다리의 살은 늘어져 있었고, 배는 맹꽁이처럼 부풀어있어 마치 살찐 황소개구리 같았다.
"이 사진이 이 여자라고요?" 미라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그렇습니다. 유리 양은 미인 기계를 통해 완벽한 미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 연구소의 1호 유리로 대단히 성공적인 케이스죠. 물론 2, 3, 4호도 분발하고 있습니다.”
김이 유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스위치를 켠 것처럼 유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들어왔다.
"유리는 행복해요. 아주... 행복하답니다."
유리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냉장고 광고 모델처럼 말했다.
(2편으로...)
<illust by 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