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가 미국에 간지 삼 년이 흘렀다. 보스턴에서의 삶은 식사 준비와 설거지와 빨래와 청소라는 단순한 집안일의 연속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같았고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게 뻔했다. 두 사람은 아기를 가지려 했지만 아기는 생기지 않았는데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재현의 포닥 월급으로는 두 사람이 먹고 사는 데도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요나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차비를 아끼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이 주일에 한 번, 지하철을 타고 퀸시 마켓에 가서 저렴하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장바구니 가득 사오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 시장에서는 오렌지를 한 바구니에 2달러에 팔았다. 요나가 좋아하는 아보카도도 블루베리도 먹고 싶은 만큼 쓸어 담을 수 있었다. 시끄러운 이탈리아 상인들이 서로 싸우듯이 이야기하는 걸 볼 때면 요나는 어릴 때 엄마와 가곤했던 시장의 풍경이 떠올랐다. 한국이 딱히 그립지는 않았지만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재현은 포닥 과정을 끝내고도 자리를 잡지 못 했다. 비자 문제 때문에 6개월 안에 취직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재현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현의 부모님은 이미 재현이 미국 대학에 조교수로 취직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스턴의 대학들은 재현에게 냉담했고, 외국인에게 비자 비용을 내주면서까지 취직시켜 줄 기업도 전무했다. 그 즈음 재현은 한국이라는 말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킬 만큼 예민해졌다. 재현의 마지막 선택은 뉴욕으로 가는 것이었다. 대학 선배가 뉴욕에서 꽤 큰 스시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스시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선배는 비자 비용을 내 줄 정도로 배포가 크기도 했다.
뉴욕행이 정해 진 후, 재현은 매일 부엌에서 회 뜨는 연습을 했다. 대학 강의 하는 것보다 스시맨이 돈을 더 잘 번대. 미국은 그런 나라잖아. 어떤 기술이든지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재현은 주문을 외우듯 매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 재현을 지켜보는 요나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뉴욕은 보스턴보다 열 배는 더 복잡한 도시였지만, 내내 집에 있는 요나에게는 어느 곳이든 비슷했다. 재현이 스시 가게에서 남은 생선과 채소를 매일 가져왔기에 요나는 따로 장을 보러 나갈 필요도 없었다. 이즈음 재현의 주문은 ‘투룸 아파트로 이사 갈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 매자’는 것이었다.
저녁에 돌아오면 손님들에게 받은 팁을 탁자에 늘어놓기도 했다. 요나는 재현이 행복하다면 스시맨이든 배관공이든 상관없었다. 둘은 밤마다 아이를 가지면 어떤 집에 살지 어떤 학교에 보낼지 미래 계획을 그려보곤 했다.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이런 평온한 날들이 계속 이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 날 밤, 재현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나즈라, 나즈라...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잠들었다. 재현은 그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나더니 그 날부터 일을 나가지 않았다. 원인은 나즈라였다. 엠아이티 연구실에서 함께 포닥 과정을 밟았던 인도 출신의 나즈라가 엠아이티에 조교수로 취직이 된 것이다. 나즈라는 지도 교수와 함께 뉴욕에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재현이 일하는 스시 가게에 우연히 들렀다. 지도 교수는 재현의 변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또 다른 재능을 찾아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재현의 용기를 칭찬했다.
“재능? 용기? 미국놈들 가식은 하여간...그냥 대 놓고 불쌍히 여겼다면 내 자존심이 덜 상했을 거야. 나즈라, 그 자식은 내가 거기서 일하는 걸 알고 찾아온 게 분명해! 나즈라도 되는데 왜 나는 안 돼느냐고!”
“공부를 다시 하고 싶으면 해. 돈 좀 못 벌면 어때, 내가 나가서 일할게.”
요나의 말은 진심이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면 카페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라도 할 작정이었다.
“창녀 주제에.”
“뭐?”
“네가 뭘 할 줄 아는데? 또 다시 몸이라도 팔겠다고?"
남자는 더러운 것을 떼어내기라도 하듯 자신의 팔을 잡은 요나를 한 손으로 밀쳐냈다.
“나대지 말고 집구석에 가만히 처 박혀 있어. 밖에 나가서 쓸데없는 짓 하고 돌아다니는 날에는 너 죽고 나 죽는 거니까.”
시간이 흐른 후에도 요나는 그 때 무엇이 재현의 신경을 그토록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재현은 요나를 더러운 것이나 벌레 보듯 했고,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재현은 스시 가게를 그만뒀지만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너를 만난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다. 너 때문에 나까지 더러워졌어. 더러운 년, 벌레만도 못한 년. 넌 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야, 기생충도 너 보다는 양심이 있을 거다. 넌 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피를 빨아먹을 작정이지. 넌 나를 만나면서도 다른 남자들에게 다리를 벌려줬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깨끗한 여자를 만났더라면 내 일도 술술 풀렸겠지. 내 업보다, 내 업보야.......”
요나는 한 낮의 유령처럼 맨하탄 시내를 휘청거리며 걸어 다녔다. 재현의 인생에서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혼자서 시내를 이렇게 돌아다니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7월의 태양은 이글거리며 거리의 모든 것을 말려버릴 기세였다.
요나는 녹아서 없어지기라도 하면, 하고 바랐으나 그 전에 탈수증이 먼저 올 것 같았다. 요나가 멈춰 선 곳은 현대미술관MOMA였다. 미술관 앞에서 한국인 여학생 두 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금요일은 오후 4시부터 무료라던데! 지금 4시 아니야? 아싸, 나이스! 요나도 여학생들을 따라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안에는 난해한 그림들이 잔뜩 있었다. 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그저 뿌린 것도 작품이랍시고 걸려 있었다. 요나는 미술품 투자를 위해 스터디를 한다던 고객을 떠올렸다. 얼마나 공부를 해야 이런 낙서가 작품으로 보이는 걸까? 요나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유난히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큐레이터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작품 설명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입니다. 잠든 집시 여인을 바라보는 사자라, 묘한 조합이죠. 루소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어요.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건 망설인다.’ 루소는 세관원으로 일하다가 마흔 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자신은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했지만 비평가들은 조롱했죠. 누가 봐도 그의 그림은 인체 대칭과 원근감, 비례를 무시한 상상화에 가까웠으니까요. 루소가 지금은 초현실주의 그림의 대가로 여겨지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별로 빛을 보지 못 했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큐레이터를 따라 자리를 이동한 순간,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사막의 모래 위에 지쳐 잠든 검은 피부의 여인과 그 옆을 지키는 사자 한 마리. 집시가 잠든 사막의 끝에는 요나가 그 그림을 버리고 왔던 골목길과 모모의 가게가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의 뜬 달에는 차마 요나가 그리지 못 하는 얼굴이 반짝였다.
요나는 미술관을 나와 센트럴 파크로 걸어갔다. 뉴욕 한 가운데에 이렇게 큰 공원이 있는데, 재현과는 한 번도 와 보질 못 했다. 사방이 트인 잔디밭에 감탄하고 있으려니 미술관에서 본 한국인 여학생들 불쑥 나타났다. 여학생들은 잔디밭에 신문지를 깔더니 나란히 누워서 낄낄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요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들을 따라 벌렁 누워보았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코로 들어와 뇌 전체로 퍼져나갔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주위가 어둑해져 있었고, 드넓은 벌판에 요나 혼자 누워 있었다. 태양을 무방비로 받은 얼굴은 따끔거렸고 어느새 차가워진 바람에 발바닥이 시렸다. 뒤늦게 요나는 옆에 벗어놓은 샌들을 누군가 가져가 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뿐만 아니라 크로스로 매고 있던 핸드백까지 사라져 있었다. 사방은 더욱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요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문득 겁이 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요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젠 돌아갈 곳도 없어. 요나는 그 자리에 다시 누워 버렸다. 바람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다 사라졌고, 멀리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다가 끊어졌다. 마침내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을 때, 요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커다란 짐승이 다가와서 요나의 맨발을 핥았다. 부드러운 털을 가진 그 짐승은 더운 입김을 요나의 얼굴에 내뿜더니 요나의 머리맡에 자리 잡고 앉았다.
illust by MI A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