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집시 (4)

by MIA

그는 종교만 없을 뿐 이미 성직자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처음 그에게서 맡았던 식물의 향기는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저버린 신을 저주하는 대신 경배했다. 어느 날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가 그 운명에 저항하다 허망하게 죽어버린 것과 달리 그는 식물이 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한다. 물론 모모는 종종 오해를 받았다. 잠든 여자에게 유사 성행위를 하는 변태라는 비난, 신종 성매매를 그럴싸하게 포장했다는 비난, 누워서 쉽게 여자들의 주머니를 턴다는 비난. 한 번은 단골 고객의 남편이 찾아와서 가게를 뒤집어 놓은 적도 있었다.


“니가 성불구라는 증거를 대 봐! 내 마누라 옆에 누워서 네 놈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보라고! 내 마누라랑 붙어먹고 뻔뻔하게 돈까지 받아? 에라이, 천벌 받을 천하의 고자 새끼!!”


모모는 그 후로, 원하는 고객에 한해 잠자는 전 과정을 촬영한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 촬영을 원하는 고객은 거의 없었다. 의심 많은 남편에게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의심이 덜어지는 건 아니라는 게 여자들의 주자이었다.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누워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외설적인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최대한 비밀스럽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 하니까.


“그럼 주무시고 가시겠어요, 요나 님?”

“오늘은 고양이로.”


부드러운 솜털이 요나의 뺨을 스쳐지나 어깨를 감쌌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요나는 흐물흐물하고 말랑말랑한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요나는 금세 꿈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요나는 거대한 기계에 깔려있었다. 기계가 목까지 짓누르는 탓에 고개를 들 수 없어 기계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차갑고 무거운 기계에서는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그거 기중기에요, 기중기. 한 번 깔리면 대책 없지.”

“쯧쯧, 깔리지 않는 게 최선인데 젊은 아가씨가 뭘 몰랐구먼.”


머리 위쪽에서 남자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요나는 목이 타서 견딜 수 없었다.


“목이 말라요...물 좀 주세요.”


요나의 목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 하고 입 안에서 맴돌았다. 자신이 벌거벗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단 걸 알았지만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여기서는 누구나 알몸이니까요.”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요나가 마지막 힘을 짜내 고개를 들었을 때, 태양을 등진 모모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이마에서 땀을 흘리는 그 역시 벌거숭이였다. 그리고 그의 남성은 사막의 선인장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요나는 이틀에 한 번은 모모를 찾았다. 달콤한 잠은 이제는 중독이었다. 다행인 것은 모모는 요나와 달리 장기 고객도 환영한다는 점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는데, 불면증에 걸린 여자들 뿐 아니라 단지 외로워서, 인간의 접촉이 그리워서 오는 여자들도 꽤 있다는 점이었다. 한 번 모모를 찾아온 여자들은 계속 찾아왔다. 그녀들은 모모를 독점하고 싶어 했다. 요나는 대기 손님들의 눈빛만 봐도 그녀들이 모모에게 얼마나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요나는 손님이 없는 시간에 종종 찾아와서 커피를 마시며 모모와 이야기를 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에서 심각한 주제까지 모모와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모모가 불면의 원인을 찾아보라고 했고, 요나는 모모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불면은 스무 살 때부터 가끔 앓던 병인데, 최근 들어 심해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남자가 결혼을 하자는 거예요, 만난 지 세 번 만에 청혼했어요.”

“놀라운 일도 아니네요. 요나 씨처럼 매력적인 여성이라면...저라도 그랬을 것 같군요.”

“정말이에요?”


모모는 대답 없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을 때면 요나의 방어막은 금세 허물어졌다.

재현을 처음 만난 건 육 개월 전이었다. 카페에 앉아 있던 요나에게 가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큰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막상 요나 앞에 서자 주뼛거리며 힘들게 운을 떼었다.


“이런 건 처음인데, 흠, 그러니까...괜찮으시다면...번호를, 흠흠, 번호를...알려 주실 수...있을까요?”


남자는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울 것 같은 인상을 지었다. 요나는 수첩을 찢어 에이전시 전화번호와 입금 계좌를 써서 남자에게 건넸다.


“한 시간에 백 만원이에요.”


쪽지를 받아든 남자는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요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 쪽이 그, 콜걸이나 뭐 그런 류라는 겁니까?”


요나는 대답 없이 빙그레 웃었다. 한 번 여자를 사는 남자는 계속 여자를 사고, 한 번도 여자를 사지 않는 남자는 평생 사지 않는다. 물론 드물게 금연에 성공하는 남자가 있듯 여자를 사다가 사지 않는 남자도 있다. 가장 위험한 부류는 뒤늦게 여자를 사는 재미를 알아버린 남자들이었다. 계속 여자를 사온 남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비즈니스이자 게임임을 잘 알아서 뒤처리도 언제나 깔끔하다.


돌연 스토커로 변하거나 스폰서 계약을 원하는 이들은 뒤늦게 여자를 사는 법을 알아버린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낭만주의자가 되어 거래에 로맨스를 끼워 넣었다. 이 남자는 위험한 부류였다. 남자는 말없이 카페를 나가더니 잠시 후 두툼한 은행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하얀 봉투 안에는 현금 백 만원이 들어있었다.


재현은 국내 최고 명문대학의 기계공학박사였다. 낮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밤에는 연구에 몰두하였다. 세 번째 만남 후, 더는 요나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남자는 갑작스럽게 결혼하자고 했다. 요나는 이 관계의 끝이 선명히 보였다. 어느 한쪽이 피 흘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나서야 남자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남자는 곧 미국으로 포닥 과정을 하러 가게 되어 있었다. 요나는 재현의 포닥 연봉으로 두 사람이 어느 수준으로 살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그 점은 남자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일 년에 적어도 오 만달러를 받을 테니까 둘이 생활 하기는 충분할 거예요. 나는 학교에 내내 있고 당신은 집에 있을 텐데 돈 들 일이 그렇게 많겠어요? 포닥 과정이 끝나기 전에 대학에 자리 잡을 자신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 엠아이티(MIT) 교수님들이 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답니다.


요나는 모모에게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전 공짜로 섹스를 해 본적이 없어요. 돈을 받은 만큼 성심 성의껏 할 수는 있지만 공짜로 하는 섹스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된 사람에게 잠자리를 할 때마다 돈을 받을 수는 없잖아요?”


모모는 실질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몸에 힘을 빼고 의식을 다른 데 두세요. 의식하는 순간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질 테니까요. 요르단의 사해는 염분이 너무 많아 수영을 전혀 못 해도 몸이 뜬다고 해요. 사해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세요.”


요나는 모모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재현이 요나를 안으려 할 때 몸에 힘을 쭉 뺀 후 의식을 다른 데로 두었다. 챙이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사해에 누워서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그리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 졌다. 요나는 한 남자와만 섹스를 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우주 바깥에서 지구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다른 여자들은 평생 이런 일을 되풀이하고 사는 걸까? 재현은 요나의 몸에서 떨어지자마자 등을 돌리고 돌아눕더니 코를 골았다. 요나도 재현을 등진 채 누워 모모의 품을 그리워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잖아, 아직은. 요나는 그 날도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뒤, 아침에 재현이 집을 나서자마자 모모의 가게로 갔다.


“그 결혼 꼭 해야 해요?”


요나를 두 팔에 안은 채, 모모는 물었다.


“저는 예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저주에 걸렸거든요.”

“저주가 풀리면 괴물로 변하나요?”

“아마 그럴 거예요. 뚱뚱하고 못생긴 초록색 괴물이 될지도 몰라요.”

“어릴 땐 이야기 좀 해 줘요. 요나 씨는 어떤 아이였어요?”

“재수 없는 아이였죠."

"어떤 면에서요?”

“모든 면에서요, 특히 웃는 게 재수 없대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인기 많은 총각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선생님한테 꼬리치며 웃는다고. 한 번은 국어 시간에 시를 써냈는데, 선생님이 제 시를 읽어주며 잘 썼다고 아이들 앞에서 칭찬했어요. 그 날 반에서 늘 뒷자리에 앉는 키 큰 여자아이들 세 명한테 쓰레기 소각장에 끌려가서 한 시간 동안 괴롭힘을 당했어요.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운동화를 밟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는데 제가 재빠르게 피했죠.”


하하하, 모모는 크게 웃었다.


“전 모모 씨가 좋아요.”


요나의 고백에 모모는 어깨를 쓰다듬던 손길을 멈췄다.


“요나 씨는 사랑 받으며 살 자격이 있어요.”


모모는 요나에게 등을 돌린 채 옷을 입기 시작했다. 요나는 모모의 곧은 척추를 눈으로 따라 그렸다. 종아리와 발목 복숭아 뼈를 머릿속에 새겼다. 내가 화가라면 모모를 그릴 텐데.......

시간은 어느 새 오후 2시가 지나있었다. 모모는 하얀 셔츠와 검정 바지로 갈아입고 개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나는 머뭇거렸고 모모는 바닥만 쓸었다. 요나는 현금을 꺼내어 카운터에 올려두었다. 아침 열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네 시간이니까 26만원이었다.


“그냥 가세요.”


모모는 비질을 멈추고 우뚝 멈춰 섰지만 여전히 요나를 똑바로 바라보진 않았다.


“왜요...계산은 정확히 해야 하잖아요.”


"마지막이니까요."


“그럼 저 그림이라도 줘요. 그림 사는 값으로 치죠.”


모모가 꿈쩍도 않자 요나는 벽에 걸린 그림을 기어코 떼어냈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두 손으로 그림을 안아 들어야 했다. 요나는 엉거주춤하게 그림을 껴안고 문을 발로 밀어서 나갔다. 등 뒤에서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CLOSED' 팻말이 좌우로 흔들리며 덜거덕거렸다.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요나는 인적이 드문 다른 골목길로 들어갔다. 어느 집 대문 앞에 폐지가 담긴 박스며 재활용품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요나는 그 옆에 그림을 내려두고 바닥에 주저앉아 조금 울었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자 요나는 그림을 버려두고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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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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