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름은 모모였다. 요나만큼이나 가명 의혹을 강하게 받을 이름이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말로 아무런 사건 사고가 없어서 따분할 정도의 인생이었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돌아왔고 어머니는 집안 일을 했다. 어머니는 꼬박꼬박 아침, 점심, 저녁상을 차렸고, 학교에서 돌아온 모모에게 매일 손수 만든 간식을 챙겨주었다.
외동아들이었던 모모에게 장난감은 넘칠 정도로 많았고 용돈도 부족함이 없었다. 모모는 공부에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인지 중학교 때까지는 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어머니는 모모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고액의 과외를 붙여 줄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3년간 바짝 노력하면 명문대 진학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모모 역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별 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명문대에 진학해 일학년을 마치기 전에 군대에 다녀온 후 어학연수를 떠나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복학해서는 학점 관리를 착실히 하고 봉사 활동 등 스펙 쌓는데 매진해 외국계 기업이나 대기업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해외 영업의 인재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어머니처럼 요리를 잘 하는 여인을 만나 아이를 둘이나 셋 낳고,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 자신의 뒤를 이를 훌륭한 국제적 인재를 만들어 그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은 또 아이들을 낳아 자신의 후손이 세계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기며 대대손손 번창하는 것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 것. 이것의 열일곱 살 때 모모가 그린 인생의 지도였다.
피 끓는 청춘의 꿈이라기 보단 30, 40대 가장의 바람에 가까웠지만 모모는 진지했다. 외동아들로 자란 영향도 있을 것이다. 모모는 늘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놀아달라고 보채는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형이나 누나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집안이 조용하다는 건 공부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모모는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모모의 인생은 계획대로 잘 풀려갔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명문 사립대에 진학했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해 군대에 다녀왔다. 그런데, 캐나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던 중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모모는 영어 스터디를 함께 하던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얀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3개월 뒤에 어학연수를 떠나야 하는 터라 여자 친구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스터디가 끝나고 열린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먼저 손을 잡은 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두 사람은 모텔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에서 키스하고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여학생의 손은 모모의 바지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 때까지 여자 경험이 없던 모모에게 여학생의 손길은 전신이 떨리는 경험이었다. 모모는 여학생의 손을 이끌고 빨간 조명이 빛나는 파라다이스 모텔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술기운에 허겁지겁 옷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맨살을 더듬었다. 여학생의 살에서는 과일 같은 단 내가 났다. 어릴 적 어머니가 텔레비전 위에 방향제로 놓아두곤 했던 모과 향과 비슷했다. 모모는 영역표시를 하듯 여학생의 온 몸을 입술로 핥고 모든 구멍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여학생은 모모의 목을 껴안고 다음 행동을 재촉했다.
“지금이야. 어서!!”
모모는 어느 구멍을 공략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여학생의 도움으로 힘들게 목적지를 찾았으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모모의 남성이 여학생의 몸 안에 들어가자마자 죽어버린 것이다. 그 여학생의 몸매는 실로 환상적이었다. 적당한 크기에 탄력 있는 가슴, 잘록한 허리에 탄탄한 허벅지, 가늘게 쭉 뻗은 종아리. 이런 여자가 나체로 누워있는데 아무 짓도 못하는 남자는 고자 밖에 없을 거다, 라는 생각이 모모의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모모의 지능과 의지력과 인내심은 이 순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자 모모와 여학생은 껴안고 잠이나 자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모모가 눈을 떴을 때 여학생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먼저 연락해 온 건 예상외로 그 여학생이었다. 일주일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저녁으로 크림 파스타와 화덕 피자를 먹고 당연한 수순인 듯 맥주를 마시러 갔다. 점점 취해가는 여학생을 보며 모모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학생이 모모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야릇한 눈빛을 보냈을 때 모모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래도 되는 걸까?”
여학생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모모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더 찔러 넣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모모는 침을 꿀꺽 삼켰다.
파란 네온사인이 빛나는 엔젤 모텔에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술이 깬 뒤였다. 이번에 여학생은 옷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모모도 여학생 옆에 털썩 누웠다. 여학생은 등을 돌려 옆으로 눕더니 모모에게 껴안으라고 했다. 모모는 잠자코 여학생을 껴안았다. 그러자 일분도 안 돼 여학생은 잠이 들었다. 코를 만져보고, 머리카락을 당겨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품안에서 곤히 잠든 여학생을 보니 모모도 어쩔 수 없이 잠이 왔다. 친구들이 알면 십년 동안 놀림감이 될 이야기였다.
모모와 여학생의 만남은 쭉 그런 식이었다. 모모가 여학생을 안고 있어도 몸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학생이 이용하는 쪽이었다. 여학생의 이렇게 고백했다. 네 품에서 자면 잠이 정말로 달아. 한 순간에 훅, 하고 묵직한 잠이 내 존재 자체를 덮쳐. 동시에 내 몸은 흐물흐물해지고 무기력해지는데 기분은 정말로 끝내줘. 그러니까 뽕 맞은 것처럼, 뽕을 맞아본 적은 없지만 분명 이런 기분일 거야.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나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령 꿈만 꾸고 실행할 용기가 없었던 일도 지금 하면 어쩐지 될 것만 같아. 그 여학생은 정말로 꿈만 꾸던 일을 실천했다. 오디션을 보러 어느 영화사의 문을 두드렸는데, 거짓말처럼 단 번에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따 냈다. 여학생이 섹시한 형사로 출연한 조폭 영화는 그 해 말 개봉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곧바로 스크린의 기대주로 떠 올랐다.
모모가 일 년 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캐나다에서 돌아왔을 때 그 여학생은 ‘설희’라는 이름으로 영화와 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었다. 검색창에 설희를 치면 ‘무 보정 몸매’ 가 연관어로 함께 떴다. 연예인을 잘 모르는 요나도 설희는 알았다. 설희랑 닮았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라고 물어온 고객들이 꽤 있었다. 요나는 아무리 자신에게 후하게 점수를 매겨도 설희와 닮은 점을 찾긴 어려웠다.
설희를 닮았다는 말은 요즘 남자들이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일단 던지고 보는 작업 멘트 같은 것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설희를 닮았어요. 모모가 요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을 때 요나는 얼굴을 붉혔다. 그 말은 작업멘트가 아닌 진실처럼 들렸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설희에게 없는 것이 있어요, 라고 모모는 덧붙였다. 그게 뭔지 요나는 끝까지 물어보지 못 했다.
캐나다 어학원의 기숙사에서 저는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거듭했어요. 어떤 여자를 안든지 제 몸은 반응하지 않았어요. 여자들은 설희처럼 제 품에서 달게 잤어요. 내 기숙사 방에는 매일 다른 여자애들이 찾아왔어요. 어학원에서는 내가 천하의 바람둥이로 소문이 났지만 실상 나는 여자애들에게 푹신한 쿠션이나 침대 역할을 할 뿐이었죠. 수많은 여자들의 샴푸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 보드라운 살결, 조그만 손과 발을 쓰다듬을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라 할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덜 절망적일 수 있었습니다.
성불구로 평생 살아간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상상도 하지 못 할 겁니다. 물론 병원에도 가보고 많은 전문가와도 상담을 했어요. 나는 앞으로 아이를 만들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인재...가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시골의 면사무소나 그런데 취직해서 조용히 죽은 듯이 살다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죽어야하는 게 아닐까. 뉴질랜드로 가서 양이나 치며 살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요.
그런데, 캐나다에서 친하게 지낸 루마니아에 여자 아이가 이 사업의 아이디어를 주었어요. 너의 재능으로 돈벌이를 하는 게 어때? 세상에 불면증에 걸린 여자는 하늘의 별처럼 많아. 그 여자들을 다 네 품으로 쓸어 담는 거야. 물론 공짜가 아니어야 해. 비싸게 부를수록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
모모가 루마니아 여자의 조언을 따른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였다. 모모는 한국으로 돌아와 충실히 학업을 마쳤지만, 미래 청사진이 깨진 시점에서 취업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몇 명인가의 여자 친구도 사귀었지만, “섹스를 하든 못 하든 아무런 상관없어. 나는 너와 손만 잡고 자도 좋아.”라고 말한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 모모는 그 여자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세 번째 여자 친구마저 떠났을 때 모모는 독립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그는 넓은 세계가 아닌 지상의 한 모퉁이에 뿌리내리고 공기와 태양과 물만 소비하는 식물처럼 살다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곳이 강남 번화가의 어두운 골목 끝의 가게였다. 누가 어떤 의도로 골목 끝에 건물을 지었는지 부동산 업자들도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 가게를 발견했을 때도 3개월 째 비어있던 참이라 아주 싼 가격에 월세 계약을 했다. 컴퓨터 한 대와 침대 하나가 그가 가진 재산이었다. 모모는 ‘잠들고 싶은 자 다 내게 오라’는 농담 같은 이름의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했다. 호기심에 한 번 들른 여성들은 단골이 되었고 그녀들은 부지런히 입소문을 내 주었다.
“세상에 그렇게 잠 못 자는 여성이 많은지 저는 처음 알았어요. 그녀들은 하나같이 얼굴색이 어둡고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죠. 내 품에서 단 30분이라도 단잠을 잔 여자들은 당장 얼굴색이 달라졌어요. 저는 회사일과 육아에 지쳐 걱정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그녀들이 애처로웠습니다. 어쩌면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기기 시작했어요. 잠을 빼앗긴 그녀들에게 잠을 돌려는 것. 하늘이 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빼앗고 대신 남다른 능력을 준 이유가 이것이라면 저는 따르기로 한 겁니다.”
illust by 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