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종종 잡지나 신문에서 고객들의 얼굴을 발견하곤 한다. 밤의 고객들은 집합적이고 몰 개성한 존재로, 비슷하게 지루했고 비슷하게 활기가 없었다. 낮의 세계에서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한 명의 번듯한 생활인으로서 생산자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새삼 놀라운 것이었다.
고객 중에는 자신의 회사에 취직자리를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사장은 요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듯 말했다. 그냥 내 비서나 하면서 전화나 받고 커피나 타고... 어려운 일 하나도 없어. 앉아만 있어도 따박따박 월급 200만원씩은 나오니까 이런 일 하지 말고...아니 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뭐랄까, 좀 더 떳떳한 일을 하면서 이건 그냥 취미로다가...무슨 말인지 알지? 응? 나이는 점점 들 텐데, 부모님도 걱정 하실 테고...뭐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면 그만이지만...진짜 내 딸 같아서 하는 소리야.
요나는 자신이 비서로 일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다. 비록 6개월이었지만 요나도 남들처럼 회사를 다녀 본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저주를 피하기 위해 이력서를 여기저기 뿌려댔는데, 처음으로 연락이 온 조그만 무역 회사의 사장은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네.” 한 마디로 요나를 합격시켰다. 회사의 크기나 명성이나 월급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러나 회사에 다니는 6개월 동안 요나는 자신이 저능아가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질 만큼 자신이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늘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지각이었고, 전화를 건 사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사람에게 연결시켜 주었고, 남들이 십 분 만에 해치우는 서류 작업도 한 시간 걸려서 겨우 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남자 직원들이 요나에게 유독 친절히 구는 바람에 여자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저는 낮에는 무능한 인간이에요. 남의 일자리를 뺏고 사장님께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요나는 겸손하게 거절했지만 거기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요나는 누구보다 더 자신을 잘 알았다. 어떤 인간들은 낮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요나는 밤이 되어야 영민해지고 활동적이고 잠재력이 드러나는 저주받은 족속이었다.
“짜증나...짜증나...다 죽여 버리겠어...잠을, 잠을 자야 하는데. 이 무능한 것들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하고...언제까지 내가 뒤치다꺼리를...잠을 자야하는데.”
여자는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여자의 눈에는 시뻘겋게 핏발이 서고 눈가에는 다크 써클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양 볼도 홀쭉한 것이 영락없이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요나는 같은 병을 앓는 사람으로 그녀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잠을 잘 못 주무시나 봐요?”
“그럼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는 사람이 내가 여긴 뭐 하러 오겠어요?”
“아.”
여자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욕을 하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다시 전화를 받고 노트북을 두드리다 욕을 했다. 요나는 궁금한 게 더 있었지만 다시 말을 붙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쨌든 여기서 요나의 불면증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예상외로 먼저 들어갔던 여자는 삼십분이 지나자 바로 나왔다. 그 사이 강아지 탈로 바꿔 쓴 남자가 다시 두 번째 여자를 호명했다.
“크리스탈 님, 들어오십시오.”
티파니, 크리스탈...요나는 신청서를 작성하며 자신도 예명을 지어야할까 생각하다가 관두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요나라는 이름을 본명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아무리 본명이라고 말해도 의심했고 세례명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나가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요나의 부모님은 기독교가 아니었고,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요나라고 지었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다. 요나 언니의 이름은 나비였다. 요나라는 이름이 이상하다면 나비라는 이름도 이상하다. 그러나, 요나나 나비나 둘 다 딱히 자신들의 이름에 불만이 없었다. 요나라는 이름이 이상하다는 건 순전히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두 번째 여자가 커튼 안으로 들어간 지 이십분이 흘렀다. 여자는 삼십분 만에 나올 것인가? 요나는 가게에 비치된 다섯 권의 잡지를 모조리 읽은 후,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한 점 걸려있었다. 사막의 밤이 배경으로, 피부가 까만 여자가 곤히 자고 있다. 여자의 뒤쪽으로 사자 한 마리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다. 요나의 눈에 그 사자는 여자가 키우는 애완동물 같이 보였다.
illust by MIA
사자가 지켜준다면 사막 한 가운데서라도 마음 놓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건조한 모래 바람이 날리고 까만 하늘에 별이 총총 뜬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사막에 가야지, 라고 생각한 요나는 문득 자신이 여행을 제대로 다닌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고객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밀라노로 홍콩으로 싱가포르로 하와이로 날아다녔지만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비행기를 타느라 제대로 풍경을 본 적이 없었다.
인 터 내 셔 널 호 어. 누군가는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INTERNATIONAL WHORE.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요나는 누군가에게 대답했다. 요나는 가게 안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어느 틈엔가 잠이 들어서 꿈속에서 이상한 곳을 헤매고 있는지도 몰랐다.
“요나 님, 들어오십시오.” 잠에 취한 듯한, 꿈을 꾸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여자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나왔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노트북이 든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득의양양하게 밤의 거리로 나아갔다.
커튼 안쪽의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도 천장도 바닥도 하얀색 일색으로, 중앙에는 역시하얀 색의 커다란 침대나 놓여 있었다. 천장에 달린 붉은 천이 물결치듯 내려와 침대를 살짝 가리고 있었다. 방은 입김이 날 정도로 방은 추웠지만 침대만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요나는 새하얀 오리털 이불 사이에 푹 파묻혔다. 하얀 실크 파자마로 갈아입은 남자가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처음이시죠? 요나 님.”
“네. 사실 저는...잠을 자러 왔어요.”
“다들 잠을 자러 온답니다.”
“제 말은...진짜 순수하게 잠만 자고 싶다는 뜻이에요.”
“물론이죠. 긴장을 푸시고 여기 누워보세요.”
남자는 누워서 왼쪽 팔을 내밀었다. 요나는 시키는 대로 남자의 팔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왼쪽으로 돌아누우세요.”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그러자 남자의 오른팔이 요나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왼쪽으로 누워 자면 위산 역류가 예방된다고 해요. 속이 쓰리거나 평소 소화가 잘 되시면 반드시 왼쪽으로 누워 주무세요. 왼쪽으로 누워 자면 심장 운동에 도움이 돼 혈액 순환도 더 잘 된다고 해요.”
남자는 두 팔로 요나를 끌어안고 자신의 가슴에 밀착 시켰다. 등 뒤로 남자의 단단한 가슴과 배가 느껴졌다. 팔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리며 요나는 저도 모르게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요나는 꿈속에서 우주를 유영했다. 별도 없는 캄캄한 우주에는 하얀 오리 깃털만이 떠다녔다.
놀랍게도 우주는 따뜻해서, 마치 미지근한 온천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을 쭉 빼고 배영 하듯 등을 아래로 향하고 누운 채 우주를 떠 다녔다. 그 때 거대한 오리 한 마리가 날아와 요나를 태우고 지구를 향해 날아갔다. 지구를 향해 다가가자 중력이 요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추락하면서 느낀 엄청난 중력의 충격에 요나는 눈을 떴다.
넓은 침대에 요나는 혼자 누워 있었고,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 테이블에 따듯한 허브 차 한 잔이 놓여있었다. 요나는 차를 단숨에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의 시계는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새 한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남자는 카운터에서 예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한 시간 되셨습니까? 요나 님.”
요나는 어쩐지 남자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정말 편안하게 잤어요. 그런데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인가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남들은 수면 전문가라고 불러요.”
“수면 전문가.”
“언제든지 잠이 안 올 때는 찾아주세요.”
일주일 뒤, 요나는 다시 한 번 그 가게를 찾았다. 불면증은 조금 나아졌지만 요나는 더 깊이 잠들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 남자를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해가 떠있는 오후 4시에 가게를 찾았다.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남자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시큼하고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 찼다. 남자는 요나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올텐데.......”
“낮잠을 자기 전에 커피 한잔은 오히려 숙면에 도움이 돼요. 카페인은 몸에 흡수된 지 30분 후에 효력을 발휘한답니다. 낮 잠 자기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자면, 깨어났을 때 카페인의 작용으로 훨씬 더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지지요. 어때요, 오늘은 잠들기 전에 한잔 마셔 보시겠어요? 참, 커피 값은 요금에 포함돼있으니 편하게 드세요.”
요나는 남자가 권하는 대로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를 한 입 머금은 순간, 가게에 떠다니던 꽃향기가 통째로 입안에 들어왔다. 요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한 숨을 쉬었다.
“사실 오늘은 잠을 자러 온 게 아니에요. 그냥 이야기나 좀 할까 해서요. 혹시 이야기하는 것도 요금에 포함되나요?”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요나는 남자를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에게는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돌멩이를 연상시키는 고요함이 있었다. 요나는 처음엔 남자가 식물과 잘 어울리는 사람, 아니 그 자체가 식물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식물, 또는 식물만 먹고 사는 초식 동물. 돌처럼 풀숲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초식 동물.
“당신의 그 능력은...그, 단번에 사람을 잠재우는 그 능력은 정말 어떻게 발견하게 된 거죠?”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나 할까요. 이 능력을 재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재능은 제 개인적인 불행에서 파생된 부록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물론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 부록을 얻으며 만화 잡지를 사기도 했지만, 인생의 부록을 얻으려 일부러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 경우에는 그냥 불행이 닥쳤고, 그 불행을 받아들였어요. 다른 선택권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