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는 잠을 못 이루는 밤이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겼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랑만 섹스를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는. 요나에게 섹스란 돈으로 환급되는 자신의 재능이었다. 그것을 공짜로 준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요나의 친언니는 국제회의장에서 활약하는 능력있는 통역사였는데, 요나가 영문 이력서를 봐 달라고 했을 때 정확한 번역 요율을 제시했다. 단가는 에이포 용지 한 장에 십 만원이었다.
어떻게 친동생에게 그럴 수가 있냐고 따졌을 때 언니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프로페셔널일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무료로 기부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타인이든 친동생의 의뢰든 일하는 데 있어서는 똑같은 열정과 똑같은 성의를 다해서 한다. 너야말로 언니라서 대충 봐주거나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느냐? 일과 혈육 간의 정을 혼동하지 말아라. 언니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언니에게 혈육에게도 공짜로 해 줄 수 없는 게 번역이라면, 요나에게는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라도 공짜로 줄 수 없는 게 섹스였다.
요나는 섹스에 있어 프로페셔널이었다. 요나는 자신의 섹스를 팔아 차례차례 원하는 것을 얻었다. 요나는 다른 여자들은 섹스를 팔지 않는지 궁금했다. 팔지 않는다면, 어떻게 평범한 회사에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아 차를 사고 집을 사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걸까? 그들에게는 단지 기회가 없었던 것 아닐까? 최초의 고객이 요나에게 접근했던 압구정의 한 옷가게, 두 번째 고객을 만났던 W호텔의 바, 세 번째이자 가장 큰 금액을 제시했던 고객을 만난 방콕 B 리조트의 존재를 그녀들은 모르는 것 아닐까?
요나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혼식을 통해 생애 단 한번 섹스를 파는 것으로 보였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성스럽게 포장되긴 하지만, 사실상 앞으로는 이 남자하고만 섹스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셈 아닌가. 그 대가로 남자는 집을 마련하고 여자를 먹여 살릴 돈을 벌어오고.......
요나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래 여성들은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남성 우월주의 시각이에요? 나는 남자친구와 결혼식 비용도 신혼집 마련 비용도 동등하게 절반씩 냈어요. 결혼해도 일을 할 거고, 남편과는 집안일과 육아를 공평하게 나눠 할 거예요.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했던 직장 동료였거나 동창이었거나 친구였던 여성들은 결혼 후에는 하나같이 비슷한 푸념을 내뱉었다.
언제부턴가 집안일은 당연히 내 차지가 됐어요. 일을 해도 육아는 여자 몫이더군요.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눈치를 보며 조퇴하는데, 아이 아빠는 회사 일에만 집중하죠. 나를 무보수 가정부쯤으로 생각하는지, 시댁 식구들이란 사람들은 무슨 요구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내가 불공정 거래를 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정말로 내 눈을 찌르고 싶은 심정이에요.
요나는 자신의 처지가 그녀들에 비해 딱히 낫다거나 못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요나는 재능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재능을 팔아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자본주의의 최선最善을 실천한다는 쾌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요나에게는 재능을 널리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무조건 예스라고 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짜는 안 돼요. 당신의 재능을 비싸게 팔 때만 세상이 가치를 알아줍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당신을 나누어 주세요.”
“저더러, 창녀가 되라는 말씀이신가요?”
7년 전 어느 봄 날, 겨우 스무 살이었던 요나는 노파 앞에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노파는 불투명한 구슬 같은 눈으로 요나를 바라보았다.
“저주를 풀 방법은 그것 밖에 없습니다.”
요나는 발목을 잡힌 어둠에서 벗어나야 했고 노파가 제시한 그 방법은 과연 효과적이었다. 요나가 재능을 나눌수록 인생에 낀 먹구름의 색이 바랬다. 게다가 적지 않은 물질적 보상도 있었다. 그녀는 강남의 34평 아파트에서 쾌적한 삶을 살았고 독일제 자동차를 몰았고 부모님에게도 효도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파는 행위가 한 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전 국민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팬티를 보이는 것보다는 나았다. 익명의 다수가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자장면을 먹는 것보다는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의 일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으니까.
요나는 전문적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었다. 에이전시에서는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고 안전 보장을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 수수료 30퍼센트를 떼고 고객을 연결해 주었다. 귀찮은 고객을 떼어 버릴 때에도 에이전시가 도움이 되었다.
때로는 삼 개월, 육 개월 단위의 스폰서 계약으로 요나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고객도 있었다. 그러나 요나는 한 고객과의 만남은 최대 3번이라는 자신만의 규칙을 정했다. 고객과의 만남이 길어지면 반드시 귀찮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고객의 여자 친구이거나 부인이라는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심부름센터의 남자가 뒤를 밟거나 하는 일들이.
에이전시의 도움 없이도 요나는 어디서나 잠재 고객을 만났다. 노파의 이상한 예언 후 첫 번째 고객이 요나를 발견한 뒤로 무수한 고객이 요나를 거리에서 커피숍에서 옷가게에서 헬스장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망망한 대해에 떠있는 부표를 향해 헤엄치듯 인파를 헤치고 요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인파 속에서도 고객들은 요나를 단 번에 알아보았다. 정장차림이든 추리닝 차림이든, 맨 얼굴이든 풀 메이크업을 하든 상관없었다. 요나는 정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는지도 몰랐다. 그게 운명이라면 요나는 저주가 풀릴 때까지 노파의 말대로 널리 재능을 퍼트리리라 다짐했다. 그 기나긴 불면의 밤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날 밤 달은 유난히 밝았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이상한 예감에 요나의 가슴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었지만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을 뒤적이다 일어나보니 30분이 지나있을 뿐이었다. 요나는 그 날 새벽 4시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동이 튼 후 두 시간을 겨우 잤다.
그 날 오후에는 고객을 만나 일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요나가 눈을 떴을 때, 고객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잠든 여자를 강간하는 취미는 없어요. 나 그렇게 변태적인 사람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 바람 빠진 풍선은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요나는 자신의 프로페셔널하지 못 한 점을 사죄하며, 비용은 100퍼센트 환불해 드리겠다고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요나는 그 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요나는 잠을 자지 못 한 날이면 일을 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요나가 두 세 시간이라도 잠드는 날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개점휴업과도 같은 상태에 고객들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에이전시는 약속을 잇달아 펑크 내는 요나에게 위약금을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잠을 이루지 못 한지 사십일 째 되던 날, 요나는 새벽 두 시에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요나가 사는 주상복합은 강남 한 복판에 있었다. 취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걸어 다녔고 24시간 영업하는 카페 안은 환했다. 요나는 너무 환한 곳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갔다. 어둠에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 날 따라 환하게 빛나는 달이 계속 요나를 뒤쫓았다. 아무리 걸어도 골목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몸을 점점 늘리는 뱀처럼 골목길은 길게 길게 늘어졌다.
이 모든 게 꿈인가 싶을 무렵, 골목길 끝에 거짓말처럼 가게 하나가 나타났다. 은은한 불빛이 가게 안을 비추고 있었고, 가게 안에는 화분과 꽃이 가득 놓여 있었다. 카운터를 지키는 남자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요나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는 말없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가게 안은 커피 향과 꽃향기가 뒤섞인 묘한 곳이었다. 작은 테이블 세 개 중 두 개는 요나처럼 혼자 온 여자들이 각각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막 퇴근하고 나온 듯 정장차림에 풀 메이크업을 했다. 요나만 누가 봐도 자다가 뛰쳐나온 듯 한 차림이었다. 요나는 테이블에 있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았지만 무얼 주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메뉴>
기본 30분: 5만원, 60분: 8만원, 시간 초과 시 10분 당 만원.
고양이, 개, 파자마 중 선택 가능
대기 손님은 신청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요나는 신종 성매매 업소에 잘못 들어온 건가 싶어 두리번거리다 카운터의 남자와 눈이 맞았다. 호리호리하고 창백한 얼굴의 남자는 다시 한 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초록 식물과 하얗고 노란 꽃들이 배경으로 어울리는 남자였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카운터의 남자가 사라졌다.
대신 가게 안쪽의 커튼 뒤에서 전신 고양이 탈을 뒤집어 쓴 사람이 나타났다. “티파니 님, 들어오십시오.” 고양이 탈은 얼굴과 몸이 검고 배 부분은 하얀 턱시도 고양이 무늬였다. 티파니라고 호명된 여자가 승리자의 미소를 띠며 커튼 안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여자는 한 숨을 쉬더니 노트북을 꺼내 거칠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illust by MIA
“미리 예약을 했는데도 먼저 도착한 사람 우선이라니, 불공평하지 않아요?”
“여기...자주 오시나 봐요?”
“저 여잔 매번 30분을 초과한다고요. 회의가 더럽게 늦게 끝나더라니 오늘 정말 되는 일이 없네!”
여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왼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이사님. 네네...곧 다 되어 갑니다. 하반기 실적 통계 자료를 고객사에 메일로 전달했습니다. 수익률에 관한보고는 말씀하신 대로 가공했고, 내일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네, 그 점은 이 대리를 대기시켜서...문제가 없도록. 네, 네, 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요나는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봤자 잠을 잘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요나는 가게에 비치된 경제 잡지 한 권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기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양복 입은 네 명의 남자들이 그림 하나를 놓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진이었는데, 그 중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요나의 고객이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요나를 세 번 만나고도 부족했던지 6개월 스폰서 계약을 제안한 남자였다. 기사는 ‘요즘 기업인들 사이에 미술품 투자 스터디가 뜬다’는 내용이었다.
‘스터디 회원은 보통 네다섯 명, 보통 한 달에 두세 번, 점심시간에 모여 투자 가치가 있을만한 미술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데 미술품 감정사 등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도 듣는다. 몇 달간 계속 하다보면 미술품을 보는 눈이 길러져 어느 작품에 투자를 해야 할지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