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는 한 여름에도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입어야 할 만큼 추웠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여름 한 철 머물다 가는 리조트의 통나무집을 한 채 빌렸다. 다른 여행객들을 마주치기 싫어 일부러 다른 통나무집과는 멀리 외따로 떨어진 곳을 골랐다. 집 바로 앞에는 강이 있어 연어가 튀어 오르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마루는 본능적으로 강에 두 발을 담그고 서서 연어를 한 손으로 낚아챘다. 물론 발톱이 없어 금세 연어를 놓치긴 했지만, 놀랍게도 마루는 일주일 만에 두 손으로 연어를 잡는 방법을 터득했다. 우리는 저녁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어를 구워 먹었다. 얼마 안 가 마루는 익히지 않은 연어를 통째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주변을 산책한 후 집에 돌아와 각자 시간을 보냈다. 마루는 연어를 잡거나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거나 하며 종일 자신만의 놀이에 몰두했다. 나는 그런 마루를 창문으로 지켜보며 벽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마루는 종종 숲에서 벌꿀과 블루베리를 따 왔다. 우리는 팬 케이크를 구워 벌꿀과 딸기를 얹어 먹었다. 식사 후에 나는 커피를, 마루는 마시멜로를 넣은 핫 초코를 마셨다.
마루는 언어 기능을 급격히 잃어갔다. 간단한 단어도 기억나지 않는지 말을 하려 할 때마다 고통스러워했다. 곧 마루의 어휘는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 연어, 강, 숲, 꿀- 로 대폭 줄었다. 말을 하는 대신 마루는 괴성을 지르거나 발을 구르거나, 팔다리를 휘저으며 의사소통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갓난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듣는 엄마처럼 그의 말을 다 알아 들었다. 우리 사이에 이미 언어는 필요 없었다.
어느 날 새벽에는 집이 흔들리는 기척에 잠을 깼다. 지진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집안의 물건은 멀쩡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마루가 없었다.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보니 마루가 세 마리의 갈색곰과 함께 있었다. 알래스카에 사는 진짜 야생 곰이었다. 주둥이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었다. 마루는 그 곰들과 두런두런 무언가 얘기를 하다 내가 나가자 손짓 발짓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재현했다. 곰들이 먹을 것을 찾으러 우리 집에 와서 창문이며 문을 잡고 흔들었는데, 마루가 밖에 나가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바닥에는 빈 꿀통이 나뒹굴었고, 곰들은 발바닥에 잔뜩 묻은 꿀을 핥고 있었다.
“마루, 그러다 곰이 계속 찾아오면 어떡해?”
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마루는 어깨를 으슥했는데, 마치 ‘나도 원래 곰이라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마루는 매일 곰 친구들과 숲 속으로 놀러 다녔고 외출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해가 뜨기도 전에 친구들이 찾아왔고, 마루는 벌꿀 팬케이크를 담은 도시락 통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 번 나가면 마루는 해가 질 무렵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마루는 종종 집으로 돌아와 나를 볼 때면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가, 내 냄새를 맡고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루가 나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는 건 자명했다. 마루는 이제 완전히 언어 기능을 상실했고, 친구들에게 배운 듯 ‘우 오오오’라든지 ‘퓨르르르’ 나 ‘크아 아아 앙’ 같은 소리만을 냈다. 마루가 딱 한 번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온 적 있었다. 한 밤중에 마루는 나를 급히 흔들어 깨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 있잖아. 기억났어. 내가 곰이었을 때는 말이야.”
마루가 워낙 또박또박하게 말했기 때문에 꿈인가 싶었다.
“곰이었을 때는 뭐?”
“응...어...우오오오오오오!”
“마루,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봐. 곰이었을 때는 어땠는데?”
마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 내가 곰이었을 때는.”
“그래, 네가 곰이었을 때.”
“좀 더.......”
“좀 더?”
“보드라웠어.”
“보드라웠다고?”
“응. 곰이었을 때는 내가 보드라웠어.”
그 말을 마친 마루는 다시 침대에 풀썩 쓰러져 잠들었다. 털이 북실 북실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난 걸까. 나는 털이 거의 없는 마루의 팔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아침이 됐을 때, 마루는 다시 언어를 잃은 한 마리 곰으로 돌아가 있었다. 말을 걸어도 대꾸 없이 현관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는 이제 도시락도 싸 가지 않는다. 종종 입가에 피를 묻혀 오기도 하는데, 숲에서 잡은 들짐승을 먹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마루, 어젯밤에 나한테 한 말 기억나?”
나는 푸근한 마루의 등을 껴안으며 물었다. 마루는 귀찮다는 듯 슬쩍 몸을 뗐다.
“분명히 나한테 말했잖아. 곰이었을 때는 좀 더 보드라웠다고. 내가 꿈꾼 거야?”
마루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억지로 눈을 맞췄다. 하지만, 마루의 눈은 초점도 없이 흐렸다. 마루는 괴로운 듯 끙끙거리기만 했다.
“미안해.”
등을 돌리고 앉은 마루의 어깨에 기대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어깨가 젖어 가는데도 마루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귀를 쫑긋거리며 숲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신경 썼다. 마루는 침을 질질 흘리며 발을 굴렀다. 저 멀리서 친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친구들을 발견한 마루는 벌떡 일어나 괴성을 질렀다. 친구들도 그에 화답해 함께 괴성을 질렀다. 마루가 달려 나가려는 순간 나는 마루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이민 가방에 넣어 온 털 망토를 꺼냈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어 날은 더 추워질 것이었다. 마루의 어깨에 털 망토를 두르고 매듭을 꽉 묶자 제법 폼이 났다. 마루는 털가죽이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마루는 친구들처럼 몸을 숙여 손과 발을 동시에 사용해 뛰어갔다. 멀리서 보니 사이좋은 곰 가족이 경주라도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마당에 앉아 책을 읽으며 숲 속을 주시했다. 점심 겸 저녁으로 연어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밖에 먹고 있자니 새 두 마리가 날아왔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비둘기처럼 큰 덩치에 참새 무늬를 한 새였다.
새와 빵을 나눠 먹고 있자니 청설모가 끼어들었다. 청설모에게도 빵을 던져줬더니 커다란 빵을 한 입에 물고는 달아나 버렸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해가 지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백야였다. 시간은 오후 10시가 지나있었다. 백야 때문인가... 백야 때문이겠지. 파카를 입고 담요까지 둘렀지만 밖에는 추워서 더는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숲 속을 바라보다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긴 밤이 시작되려 했다.
<끝>
illust by 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