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곰이었을 때 (4)

by MIA

마루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결혼할 사람이라고 엄마에게 데려갔다가 쫓겨났다시피 나온 뒤로는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루를 남편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마루는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 덩치 큰 착한 남자였다.


사람들의 대화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아이처럼 잘 웃는 그에게서 흠잡을 데를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호텔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그가 3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손님을 안내하거나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매니저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마음껏 상상하게 내버려뒀다.


삼 년간 마루는 진급도 하지 못하고 직종을 바꾸지 못 한 채 같은 일만을 반복했다. 인사팀에서 몇 번의 심층 면접 끝에 마루가 단순한 작업 이상의 업무를 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사실 직원들은 그의 지능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오래전에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겉보기에 그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차츰 회식 자리 나 중요한 회의에는 그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마루가 곰 새끼가 나쁜 뜻이냐고 물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직원들끼리 모여 있을 때 곰 새끼, 미련퉁이라는 말을 하는 걸 엿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할 때조차 마루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마루가 열 살 때부터 퇴행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 살이면 인간 나이로 치면 서른 살이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곰의 수명은 15년에서 30년이었다. 마루의 육체는 인간이었지만, 수명도 인간과 같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 날은 회사에 있는데 호텔에서 마루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다. 마루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걱정이 돼 점심시간에 집으로 가 보니 마루는 소파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미련 곰탱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그를 흔들어 깨웠다. 마루는 분명히 자신은 욕실로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어째서 소파에서 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댔다.


그 후로도 마루는 종종 결근했고, 이유는 하나 같이 잠에서 깨지 못해서였다. 11월이 되자 마루의 증세는 더 심해졌다. 퇴근해 돌아오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고양이처럼 몸을 말고 잠든 마루를 찾아내는 게 일과였다. 마루는 열 번 연속으로 결근한 후, 호텔에서 해고되었다. 사랑이 식으면 남편이 밥숟갈 드는 것도 보기 싫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녹초가 돼 퇴근하면 집안은 엉망이었고, 마루는 소파에 앉아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채널은 항상 ‘동물의 세계’에 고정돼 있었다.


그 날은 집안에 들어서자 비린내가 확 풍겼다.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 헨젤이 떨어트려놓은 빵조각처럼 생 연어 살이 떨어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비닐과 스티로폼이 널려있었고, 비닐에 든 냉동 연어 대가리에서는 물이 흘러내렸다. 거실의 광경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마루가 생 연어 한 마리를 두 손으로 들고 뜯어먹는 게 아닌가. 텔레비전 화면에는 갈색곰이 강가에 앉아 연어 눈알을 파먹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마루!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마루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 이내 텔레비전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내가 텔레비전을 꺼도 마루의 눈은 여전히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마루는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손에 들린 연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기까지 했다.


그 날 이후로, 마루는 치매 환자처럼 가끔씩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대부분은 소파에 앉아 넋 나간 채 ‘동물의 세계’를 봤다. 밤마다 사라져 베란다에서 옷가지 등을 깔고 자는 이상한 취미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의 뇌에 문제가 생겼고, 다시 짐승의 상태로 퇴보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illust by MIA


심판의 날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박사다 씨는 시간의 블랙홀에 빠졌다 돌아온 사람처럼 아파트 입구에서 그 옛날의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가운도, 헝클어진 머리와 안경, 창백한 안색도 십 년 전 그대로였다. 그는 이번에도 앞뒤 설명 없이 집에 들어가서 마루의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심 박사다 씨가 마루의 상태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랐다.




박사다 씨는 자기 집처럼 당당하게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마루는 거실 바닥에 이불을 뭉쳐놓고 그 위에 잠들어 있었다. 박사다 씨는 마루를 면밀히 관찰하고 동맥을 짚어보고 눈을 까뒤집어 봤다.


“이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어요.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유 과장님이라면, 아니 지금은 차장님인가, 아무튼 잘 키워주실 줄 알았습니다.”


“십 년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예요? 요새 마루 상태가 이상해요, 병든 것 같다고요.”


“맞습니다. 다른 애들은 5년을 못 넘기고 죽어버렸어요. 마루는 정말로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다른 애들도 죽기 전에 퇴행이 시작돼 치매 환자처럼 기억을 잃고 거동도 불편해졌죠. 안타깝지만 퇴행이 시작되고 6개월 안에 대부분 죽었어요.”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내게 마루를 맡긴 건 우연이 아니라 고도의 잘 짜인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 곰 인간을 잘 키워줄 똑똑하고 생활력 있고 외로운 여성들을 골라한 마리씩 맡긴 다음, 그들의 성장을 어딘가에서 몰래 지켜봤던 것이다.


“연구를 위해서 시체는 회수해 가겠습니다.”


“시체라니요? 마루는 아직 살아있어요.”


“곧 죽을 겁니다.”


“나쁜 자식!”


나도 모르게 박사다 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안경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며 한쪽 유리가 깨졌다.


“살려내! 살려내라고! 방법이 있을 거 아니야?”


나는 앙상하게 마른 박사다 씨의 가슴을 마구 때렸다. 어디서 그런 폭력성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수일 이내에 다른 연구원들이 마루를 데리러 올 겁니다. 마루가 죽기 전에 검사해 보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요. 제가 마루의 소재지를 끝까지 숨겼기에 그들이 아직은 모르지만, 곧 들통 날 겁니다.”


나는 마루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세상이 다 끝났다는 생각뿐이었고 이제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박사다 씨는 그런 내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결심한 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루는 다른데서 죽은 걸로 처리하겠습니다. 들키기 전에 어디 멀리 데려가세요."


옷장을 뒤져 보니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이민 가방이 있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마루의 털로 만든 망토와 현금 봉투가 나왔다. 박사다 씨가 십 년 전에 맡기고 간 돈으로, 세어보니 무려 5백만 원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알래스카행 비행기 표 두 장을 샀다. 이민 가방에 옷과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나니 가방이 절반 이상 비었다. 아무리 집안을 둘러봐도 더 가져갈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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