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곰이었을 때 (3)

by MIA

새끼 곰을 상자에서 꺼내놓자, 고양이처럼 내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어딜 봐도 그냥 한 마리 곰이었다. 새끼 곰은 소파로 기어가더니 북극곰 털에 온 몸을 비비고는 인조털을 혀로 정성스럽게 핥았다.


“엄마 생각이 나는 걸까요?”


“저 아이의 엄마는 인간입니다. 인간 여성의 난자를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곰인데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죠?”


“앞으로 3개월 이내에 인간의 모습이 점점 나타날 겁니다. 곰은 정말 빨리 자라니까요. 인간보다 세 배는 빨리 늙는 셈이죠. 사실 전 이 프로젝트가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박사다 씨는 나에게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두툼한 봉투 안에는 노란 지폐가 가득 들어있었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손으로는 죽일 수 없으니, 6개월만 부탁합니다. 밥은 그냥 사람이 먹는 걸 먹이시면 됩니다. 한 달 정도는 죽처럼 부드러운 음식을 먹이세요.”


몇 달 만에 나타나 난데없이 새끼 곰을 돌봐달라는 그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말릴 새도 없이 쏜살같이 복도로 뛰어나갔고, 내가 쫓아오는 걸 보고는 황급히 승강기 닫힘 버튼을 눌렀다. 복도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전속력으로 뛰어 승합차에 올라타고는 무서운 속도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새끼 곰은 북극곰 털 위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몇 번이고 복기해 봤지만 결론은 박사다 씨가 약물에 취해있거나 미친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박사다 씨가 주고 간 돈 봉투를 옷장 서랍에 그대로 넣었다. 언제라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가 나타나 돈을 달라고 하면 통째로 다시 줄 셈이었다.


무슨 소리가 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새끼 곰이 마룻바닥을 굴러다니며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그 애는 나와 살게 되어 행복한 모양이었다. 새끼 곰은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언제나 마룻바닥에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렸다. 나는 늘 마룻바닥에 붙어 있는 새끼 곰에게 마루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석 달가량 죽만 먹였는데도 마루는 쑥쑥 자라났다. 정말로 인간으로 자라나려는지 몸의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몸에서 털이 우수수 빠졌고 튀어나온 주둥이가 조금씩 들어갔으며, 두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6개월째에 접어들자 마루에게 바지를 입히고 마스크와 모자를 씌워서 공원에 데리고 나갔다.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유치원생이었다.


마루는 집에서는 간단한 단어를 내뱉을 정도로 언어 능력도 늘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루는 자신이 인간 아이들 무리에 끼어도 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날 밤, 나는 마루가 잠든 틈을 타 온몸의 털을 밀어 버렸다. 갈색의 부드러운 솜털이 바닥에 잔뜩 쌓였다. 털을 다 모아보니 작은 이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동네 의상실을 찾아갔다. ‘샤론 의상실’이라는 고풍스러운 간판은 색이 바래고 먼지가 덕지덕지 쌓여 있었다. 유리창도 몇 년은 닦지 않았는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얼룩이 심했다. 털 뭉치를 카운터에 내려놓자 머리가 새하얗게 샌 할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유심히 살폈다.


“이렇게 진귀한 걸 어디서 구했지?”


할머니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털을 쓰다듬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 뒤에 의상실을 찾아가자, 할머니는 갈색 털로 아주 멋진 아기용 망토를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산지 일 년이 지나자 마루는 말을 곧잘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품 안의 새끼 곰이었다. 마루가 집에 온 후로, 나는 야근을 줄이고 술자리도 피하며 되도록 집에 일찍 왔다. 돌아오자마자 마루를 껴안고, 쓰다듬고, 뽀뽀 세례를 퍼붓고, 잠들 때까지 마루를 품에 안고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았다.


겨울에 마루를 품에 꼭 껴안고 자면 마루가 전해주는 온기는 심장 부근을 데우고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회사 일도 잘 풀려 인생에서 드물게 마음이 느긋하고 근심이 없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박사다 씨가 느닷없이 흙발로 쳐들어 와 마루를 뺏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그가 나타나 마루의 출생 비밀에 대해 속 시원히 밝히길 바랐다. 내 눈으로 곰이 인간처럼 자라는 걸 보면서도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도 박사다 씨가 어딘가 숨어서 악질적인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마루는 세 살이 되자 키가 140cm까지 자랐고, 자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마루가 옆에 없었다. 집안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박사다 씨가 와서 데려간 걸까? 한 동안 잊고 있던 공포가 되살아났다. 출근도 미루고 마루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나자 마루가 돌아왔다.


옷은 흙 투성이었고 뺨과 팔뚝에는 온통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마루는 등 뒤에 감춘 손을 내밀었는데 꿀이 뚝뚝 흐르는 벌집이 통째로 있었다. 벌에도 쏘였는지 두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마루가 무사한 걸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어, 이거 꿀, 맛있어. 선물하려고.”


“선물? 나한테 이걸 선물하려고 그렇게 다치면서 벌꿀을 딴 거야? 나 단거 좋아하지도 않아.”


“음, 오늘 생일이니까.”


이미 수년 전부터 생일을 챙기기 않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생일이 한참 지나있기 일수였다. 마루가 언젠가 생일을 물어봐서 말해준 적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졌다. 마루가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자 달콤한 벌꿀 냄새가 퍼졌다. 마루는 벌꿀이 묻어 찐득해진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온 얼굴을 구석구석 핥았다.


일곱 살이 되자 마루는 완전한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 키가 170cm까지 자랐고, 몸무게는 80kg에 육박했다. 얼굴엔 아기 곰 푸우처럼 아직 귀여움이 남아 있었지만, 팔과 다리는 근육이 붙어 탄탄해졌다. 다만 단 걸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인지 배 둘레만큼은 넉넉했다. 자신도 어른이 되었다는 자각이 생겼는지 다른 남자 인간처럼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인맥을 총동원해 호텔 잡부 일을 구해줬다. 마루는 반듯한 제복을 입고 호텔 입구에 서 있다가 손님의 짐을 방까지 옮겨주거나,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머리 대신 힘을 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요령 피우지 않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며 언제나 해맑게 웃는 마루는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마루와 친해지고 싶으면 사탕이나 초콜릿 하나만 쥐어주면 됐다.


illust by MIA



어느 날은 마루의 바지 주머니에서 초콜릿과 사탕이 열 개나 나온 적도 있었다. 마루는 돈을 쓸 줄 몰랐으므로 월급은 그대로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나는 그때까지도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마루에게 강요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마루에게 입버릇처럼 열심히 허드렛일 말고 진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마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짜 일은 뭐지? 내가 하는 건 일이 아니야?"


“물론 네가 하는 일도 진짜 일이야. 하지만, 직위가 올라가면, 그러니까 열심히 하면 앞으로는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처럼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일 말이야?”


“말하자면 그런 거지. 그러면 조금 더 많은 돈을 받게 될 거고 그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아질 거야.”


솔직히 마루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 지난번 생일 선물로 받은 요가 볼을 굴리기 시작했다.


사적인 세계에서 나는 마루와 단둘이 작은 섬에 사는 표류 자였다. 이따금 배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손을 흔들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만의 작은 파라다이스를 겨우 찾았는데 왜 굳이 떠나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작은 섬이 서서히 가라안고 있다는 건 우리만, 아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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