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하지만 사실이었다. 굳이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아도 내가 동물 키울 자격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을 괴롭히는 대신 동물 털로 만든 물건을 사 들이기 시작했다. 거실 바닥에는 호주산 천연 양털 러그를 깔고, 소파에는 북극곰 털가죽을 그대로 벗겨낸 모양의 러그를 깔았다. 북극곰 러그에는 곰 얼굴과 검정 발바닥 네 개가 붙어 있었는데, 주둥이에는 이빨과 발에는 발톱까지 있어 진짜 북극곰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낸 양 정교했다.
북극곰 러그를 산 뒤로는 퇴근한 후 소파에 앉아있다 그대로 잠드는 일이 많았다. 푹신한 곰 털에 파 묻혀 있다 보면 잠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괴로운 날, 포근한 곰털을 몸에 두르고 있으면 거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마저 들었다. 회식이라도 하고 들어온 날은 검은 구슬처럼 매끈한 북극곰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말을 걸곤 했다.
“너 사실은 진짜 북극곰 아니니? 북극곰은 속살이 검다며? 그런데, 인간들이 네 가죽을 통째로 벗긴 거야?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온 거야.......”
그렇게 잠드는 날이면 커다랗고 하얀 북극곰이 나타나 나를 꼭 안아주는 꿈을 꾸기도 했다. 곰의 품은 따뜻했고, 온몸의 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나는 그 감촉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최대한 늦장을 부리며 일어났다. 그 꿈이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한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참 후에 하게 되었다.
박사다 씨에게 전화가 온 건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사무실을 나가 막 승강기를 탄 참이었다. 박사다 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곰 인형을 데려 온다고요?
“아니오, 인간이요 인간.”
“인간이 곰 인형을 데려 온다고요? 박사다 씨, 제가 지금 승강기 안이라 잘 안 들려요......”
로비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창백하고 무표정한 박사다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담당하는 거래처인 하이브리드 생명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 연구소를 삼 년 넘게 다니면서 서른 번은 넘게 마주쳤지만, 가벼운 인사 외에는 말을 나눠본 적 없었다.
늘 내가 연구소 앞에 도착하면 나와서 보안카드를 찍어 문을 열어주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뒤 승강기를 함께 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17층 문 앞에서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방문객 전용 라운지로 들어갔고, 그는 왼쪽으로 꺾어 굳게 닫힌 하얀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는 내부 직원도 잘 모르는 일급비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상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회사였다.
그런데 그 박사다 씨가 한 밤중에 전화를 걸어 곰 인형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해 대자 왠지 불길해졌다. 혹시, 괴한한테 납치라도 당해서 아무 번호나 누른다는 게 내 번호였고, 납치범들이 눈치챌까 봐 이상한 소리를 한 걸까? 마음이 다급해져 박사다 씨 번호를 다시 누르고 뛰듯이 걸어 회사 정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주저앉을 뻔했다.
눈앞에 박사다 씨가 서 있었던 것이다. 연구소에서 바로 빠져나왔는지 늘 보던 하얀 가운 차림이었다. 몇 달 안 본 사이 볼은 움푹 패었고 눈에는 붉은 핏발이 섰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었다. 솔직히 그는 지옥에서 온 사자 같았다.
“박사다 씨! 괜찮아요?”
“갑자기 연락해서 죄송합니다. 딱히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박 과장님이라면 제약 업계에 계시니까 전국을 다니며 이상한 사람도 많이 만나 보셨겠지요. 박 과장님 이야말로 잘 맡아주실 거 같아서, 제가 이래 봬도, 어, 사람 보는 눈은 좀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좀 따라오시지요.”
박사다 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급한 듯 내 팔목을 잡아 이끌며 지하 주차장 쪽으로 갔다. 이상하게도 그 행동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협조하며 서둘러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가 그의 하얀 밴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문을 잠그고 달리기 시작했다.
“제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아무도 믿지 마세요. 연구소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일을 제 손으로 성공시켰단 말입니다.”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괴물을 탄생시켰어요. 신의 영역에 도전한 죄로 천벌을 받을 겁니다. 지금 연구소에는 저를 찾느라 혈안이 돼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됩니다. 제가 이러는 건 유 과장님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이지만, 저는 도저히 누구에게 이 일을 털어놔야 할지, 저 괴물을 어찌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기어코 박사다 씨는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가 신종 마약이라도 발명했나 의심했다. 늘 냉혈한 같이 침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 그가 한없이 낯설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차를 세워 봐요. 이런 식으로 날 납치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요?”
그때, 차 뒤 자석의 골판지 상자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강아지인 줄 알았지만 조명을 비춰 보니 털이 갈색인 새끼 곰이었다.
illust by MIA
“저건 뭐죠?”
“저게 그 괴물입니다.”
“새끼 곰 같은데요.”
“단순한 곰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자라는 곰 인간입니다.”
"뭐라고요?"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박사다 씨를 도와 새끼 곰을 상자 째 집안으로 들여놨다. 박사다 씨는 집안을 둘러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부터 설명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두 달 만에 얼굴 보는 거라고요.”
박사다 씨의 설명은 짧았다. 하이브리드 연구소에서는 말 그대로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해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명체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완연한 불법이지만 연구소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지속적인 로비를 했고, 최근에는 국가가 선정한 첨단 신생명과학 분야 우수기업으로 지정돼, 거액의 지원금도 받았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의 대표적인 작품은 양의 머리를 한 개였는데, 양처럼 온순하고 풀을 먹는 신종 개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손녀가 특히 아끼며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하이브리드 연구는 이미 이십 년 전부터 지하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구소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새로운 종의 탄생을 목표로 하고 연구에 착수했다.
이미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을 선점하기는 어렵고 인구 절벽이 눈 앞에 다가온 대한민국은 다른 것으로 인간의 노동력 감소에 맞서야 한다는 계획이었다. 황당무계하고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조악한 계획이었고 윤리적 논란도 만만치 않지만, 그 모든 것은 정부 고위 관계자의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인간이 부족하다면 유사 인간을 만들면 될 거 아닌가. 안 되는 게 어딨어?"
하이브리드 연구소의 하얀 철문 안에서는 법과 도덕과 자연의 질서를 무시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사실 실패할 확률이 월등히 컸기에 감히 그런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사다 씨가 그걸 성공시켜 버렸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