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었을 때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옆 자리는 싸늘히 식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주워 몸을 감싸고 거실로 나갔다. 열린 베란다 문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또 가을 냄새를 맡은 건가. 남편은 베란다 바닥에 빨래 감을 쌓아놓고 그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여보, 추운데 또 여기서 잔 거야?”
남편을 흔들어 깨웠더니 겨우 눈을 떴다. 그는 어딘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또 밖에 나왔어? 미안해.”
남편을 침대에 눕히고 솜이불과 담요를 목 아래까지 꼭 덮어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길게 하품하더니 금세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의 기벽은 작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새벽에 서늘한 느낌이 들어 일어났더니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온 집안을 다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거실 베란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걸 봤을 때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가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후들거리는 다리로 베란다 창문을 내다봤을 때, 나뭇가지에서 축 늘어진 그의 맨발이 보였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그 커다란 몸을 나뭇가지에 걸치고 미동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일어났다. 잠에서 깬 그는 자신이 어떻게 그 높은 나무까지 올라갔는지 전혀 기억하질 못했고,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온몸을 덜덜 떨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illust by MIA
나무에 올라간 사람이 무서워서 내려오질 못 하고 있다는 희한한 신고를 받은 소방대원들이 약 십오 분 뒤 도착했다. 사다리차를 올리고 소방대원 셋이 100kg의 거구를 끌어내리다시피 하는 동안, 이웃집의 불이 하나 둘 켜졌다. 마침내 그는 수십 명의 이웃주민들이 지상에 만든 원 안으로 무사히 내려왔다.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 나는 그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수치심에 땅으로 꺼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 큰 어른이 저게 뭐하는 짓 이래, 쯔쯔쯔.”
일흔이 다 된 노인이 노골적으로 혀를 차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머리를 몇 번이고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다음으로 나타난 증상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자는 것이었다. 10월이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냄새를 킁킁 맡더니 겨울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잠이 와서 견딜 수가 없다며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았다. 남편이 백수라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집안일은 고사하고 내내 잠이나 자는데 어느 아내가 화가 나지 않겠는가.
사실 그에게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중이라 인간의 이기적인 변덕으로 그를 탓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곰과 결혼한 사람은 나인데.
“고생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남들 애 키울 때 세월 좋게 놀더니 뒤늦게 그게 무슨 꼴이니.”
온 동네에 우리 부부의 얼굴이 알려진 사건이 엄마의 귀에도 들어간 후로, 엄마는 틈날 때마다 전화를 해댔다.
“그러니까 내가 말렸을 때......”
“그만해요.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걸.”
엄마와 통화를 하면 화가 치밀었다. 동시에 슬프기도 했는데 엄마는 내가 이제라도 그를 버리고 멀쩡한 인간 남자를 골라잡아 결혼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꾸리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병이 되는 법이야.”
그와 결혼하겠다고 처음 집에 데려갔을 때 엄마는 생전 처음 보는 홈드레스를 입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올리고 화장까지 하고 어색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그가 선물로 벌집이 통째로 들어있는 유리병을 내밀자 엄마는 호호하며 소리 나게 웃었다.
화기애애한 식사자리가 끝나고 여동생이 사 온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마실 때, 그는 그때까지 쓰고 있던 페도라를 벗었다. 그 순간 엄마는 입안에 들었던 커피를 내뿜었다. 갈색의 솜털이 부슬부슬 난 그의 머리 양쪽에 동그란 귀 두 개가 여봐란 듯 나 있었다.
“만져 봐도 돼요?”
동생은 허락도 받기 전에 이미 손을 뻗어 귀를 만졌다.
“대박!”
동생이 엄지를 치켜들자 그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아직 입을 못 다문 엄마에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했다. 하지만, 설명만으로 그의 존재를 납득시키기란 장님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는 오늘이 만우절이냐고 되물은 뒤 크게 한 숨을 쉬었다.
“그래서, 곰이었는데 사람이 되었다고?”
“정확히 말하면 곰 인간이야. 곰과 인간의 유전자가 반씩 섞여서 어릴 땐 곰의 모습에 가깝지만 자라면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그런 종족이야.”
엄마는 우아한 귀부인 연기를 집어치우고 아침 드라마의 시어머니로 돌변했다.
“그래서, 이 사람, 아니 곰이랑, 그래 뭐 곰 인간? 그래서 이 시커먼 짐승이랑 결혼이라도 할 셈이라는 거야?”
“우린 이미 같이 살고 있어.”
엄마는 이번엔 뒷목 잡고 쓰러지는 연기까지 곁들였다.
“아이고, 말세네 말세야. 사람이 사람이랑 부대끼고 살아야지 뭔 짐승 같은 거랑 산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연미야, 네 언니 이거 미친 거 아니니?”
“언니 쩐다! 완전 트렌드 세터네. 엄마, 난 그러면 돌고래랑 결혼할래.”
엄마의 두터운 손이 동생의 마른 등짝을 강타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 두 번째 이혼으로 심신이 너덜너덜해져 있을 때였다. 더는 원인 분석이나 후회나 자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내가 만난 남자들이 모두 개새끼였거나 내가 개 같은 년이거나 아니면 둘 다 일수도 있지만, 진실을 알게 된다 해도 과거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생각이 파고 들 틈 없이 미친 듯이 업무에만 몰두했다. 불행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활짝 웃고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닌 탓에 밤에 잘 때는 목이 저릿저릿할 지경이었다. 근 이 년간 밤 열 시 전에는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몸 바쳐 일했더니 확실한 보상이 있었다. 다섯 명의 동기 중 나만 과장으로 가장 먼저 승진한 것이었다. 월급은 두 배로 뛰었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돈을 버는 이유가 쓰기 위해서라는 듯이 나는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것들을.
텅 빈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은 변온동물처럼 차가웠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자 집안의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졌다. 집안에 나 말고 살아있는 생물이 하나쯤 있으면 했다.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를 들이려고 했지만, 여동생에게 상의하자 즉각 반기를 들었다.
“개나 고양이는 무슨 죄야? 언니가 이때까지 병아리 한 마리라도 길러본 적 있어? 죽을 때까지 책임지지 못할 거면 동물은 들이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