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트리 (3)

by MIA


‘미나’는 진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여자아이였다. 피부가 검은 데다 늘 헐렁한 옷을 질질 끌고 다녀 ‘깜장 빗자루’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나는 당시 ‘윗동네’라 불리던 곳에 살았는데, 아파트촌인 아랫동네와 달리 합판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만든 판잣집이 즐비한 곳이었다. 거기다 곧 재개발이 되어 판잣집이 모두 철거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나는 전학 온 지 두 달이 넘도록 친구가 안 생겨 늘 혼자 다녔다. 아이들은 어쩐지 미나를 피했고 진호도 딱히 미나와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한 번은 진호 혼자 윗동네까지 간 적이 있었다. 진호는 당시 나비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특히 좋아하는 건 곤충 도감에서만 본 파란 나비였다.


잡은 나비는 곤충 채집통에 넣고 설탕물이 담긴 그릇까지 넣어줬지만 어째선지 나비들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 죽어 있었다. 진호는 죽은 나비를 대신할 새로운 나비를 찾으러 매일 같이 바깥을 쏘다녔다. 그런데 그 날, 진호의 눈앞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파란색 날개의 나비가 나타난 것이다.


파란 나비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나비를 쫓아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윗동네였다. 금방 전까지 진호의 눈앞에 있었던 나비는 산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윗동네는 산자락 바로 아래에 있었는데, 나무와 비닐로 대충 만들어놓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때 갑자기 거짓말처럼 미나가 나타났다. 미나의 무릎에선 피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 다쳤니? 무릎이 왜 그래?”


진호는 아마 처음으로 말을 걸어 준 친구였을 것이다. 미나는 당황한 듯 진호에게서 물러났고, 낡은 치마로 무릎의 피를 쓰윽 닦았다.


"이건 피가 아니라 꽃이야. 꽃이 피려고 피가 흐르는 거야. 내 무릎에서 꽃이 이만큼 피면 나는 나무가 될 거야.”


이상한 아이다. 진호는 발길을 돌려 내려가려고 했지만, 그 순간 미나가 진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너 나비를 쫓고 있었지? 네가 찾는 거 저쪽 덤불에 가면 많아.”


미나는 다리를 쩔뚝거리면서도 거침없이 산길을 올랐고, 진호도 미나 뒤를 따랐다.


지금도 진호가 실제로 본 것인지 환상을 본 것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미나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무릎에선 다시 피가 흘렀고, 피가 흙바닥에 떨어지자 그 자리에 붉은 꽃이 피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네 송이까지 헤아렸을 때, 미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곳엔 마른 가지가 무성한 덤불이 있었다.


“이 안을 봐.”


진호는 미나가 가리킨 덤불 속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미나는 진호를 덤불의 반대편으로 데리고 갔다. 무성한 나뭇가지 덤불이 지면을 마치 요새처럼 삼면을 둘러싼 곳, 거기에 진호가 쫓던 파란 나비가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였다. 마치 그곳이 집인 듯 나비들은 덤불에 가려진 곳에서 낮게 날거나, 나뭇잎에 앉아 있었다.


미나가 다가가자, 나비 한 마리가 미나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는 미나의 어깨에 앉았고, 또 한 마리는 겁도 없이 미나의 손등에 앉았다. 심지어 미나의 치마에도 나비가 올라앉았다. 그러나 진호가 손을 내밀자마자 나비들은 금세 날아갔다.


“나비가 왜 나만 피하는 거야?”


“말했잖아, 나는 나무가 될 거라고. 나비가 나무나 꽃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


둘은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비 구경을 하며 놀았다. 이름 모를 꽃을 꺾고, 나뭇잎을 모아 소꿉놀이도 했다. 미나가 재잘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반에서 진호가 처음일 것이다. 진호는 내일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에 하는 공놀이에 미나도 끼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미나가 이렇게 명랑한 아이라는 걸 금세 알 것이고, 그러면 더는 미나를 따돌리지 않을 테니까.


어느덧 하늘은 붉게 물들고 먼 곳에 갔던 새들이 돌아왔다. 산속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미나는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진호는 산길을 내려가며 미나의 손을 살짝 잡았고, 미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나는 다시 활짝 웃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나무가 되면 나를 찾아와 줄래?”


미나가 조용히 물었다.


“에이~ 사람이 어떻게 나무가 돼.”


“진짜로 나무가 되면 나 찾아와 줄 거야?”


“그래, 그런데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찾아가?”


“자연히 알게 될 거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내 소식을 듣게 될 거야.”


미나는 나무판자로 벽을 세우고, 비닐로 지붕을 만든 움막 같은 곳 앞에 멈춰 섰다.


“잘 가!”


진호는 미나가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미 산속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진호가 아래 동네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긴 순간 등 뒤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그릇이 깨지는 소리, 금속의 물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무언가 둔탁한 것이 부드러운 것을 강타하는 소리, 뒤이어 들린 여자 아이의 비명. 진호는 내려온 길을 다시 뛰어 올라갔다.


미나가 집 안에서 뛰쳐나왔다. 미나는 이번에는 무릎이 아니라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미나의 낡은 티셔츠는 반쯤 찢겨있었고, 치마는 벗겨져 팬티 차림이었다. 미나는 절뚝거리며 진호 쪽으로 다가왔지만, 곧이어 따라 나온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덩치 큰 아저씨의 손에 목덜미를 잡혀버렸다. 그 순간 진호는 미나와 눈이 마주쳤다.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두려움에 질린 눈이었다.


진호는 발아래 땅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속이 안 좋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남자가 미나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진호는 정신없이 아래 동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자꾸 다리에 힘이 풀렸고, 눈물이 나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어둠에 잠긴 윗동네는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진호는 그날 밤부터 고열에 시달렸다. 귀가 아프고 볼이 퉁퉁 붓는 볼거리였다. 열이 내리지 않아 진호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에서 더 쉬느라 일주일을 쉬었다.


다시 학교에 갔을 때 미나는 보이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미나가 아파서 학교를 쉬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미나의 부재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호는 미나와 윗동네에서 놀았다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미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원래도 존재감 없었던 미나는 금세 잊혔다. 진호는 그 날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무엇부터 말해야 하고,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고,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학교에는 미나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었다. 미나는 아버지랑 단둘이 살았는데, 그 아버지가 실은 의붓아버지이고, 미나를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고 시체를 야산에 묻었다는 것이다.


소문에는 점점 상상력이 더해져, 밤 12에 윗동네 산으로 가면 귀신이 된 미나가 출몰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그 무렵부터 진호는 미나가 귀신이 되어 찾아올까 봐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밤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은 조회 시간에 단상으로 나가, 전교생에게 미나에 관한 헛소문을 더 이상 퍼트리지 말라고 했다. 미나는 이미 아버지와 함께 와서 전학 수속을 마치고 갔고, 이사 일정이 빠듯해 작별 인사도 못 하고 간 것이라고.


끝까지 소문이 진짜라고 믿은 아이들 몇몇은 미나를 찾아 윗동네로 탐험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가 미나의 집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번번이 허탕을 쳤다. 진호는 미나의 집을 안다고도, 미나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도, 미나를 학대하는 아버지라는 자의 얼굴을 봤다는 것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진호의 어머니는 아들이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고 푸념처럼 말하곤 했다. 애교 있고 수다스럽던 막내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볼거리를 심하게 앓은 뒤 말없고 어두운 아이로 인격이 아예 바뀌었다고. 5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방학 때, 진호 아버지의 전근이 결정되었다. 진호는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밝은 모습을 조금씩 되찾았다. 그러나 결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진 못 했다.

진호는 미나를 잊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미나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진호는 소울 트리가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했다. 진호는 날이 밝자마자 소울 트리, 아니 미나를 찾아갔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든 어떻게든 내 소식을 듣게 되겠지.”


미나의 예언은 정확히 실현되었다. 그러나 진호가 한 발 늦었다.


소울 트리의 집 앞에는 어쩐 일인지 아무도 줄 서 있지 않았고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뿌리가 무성한 현관 계단을 밟으며 진호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 미나를 기억 속의 ‘죽은 아이’로 만들어 버린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이다.


진호가 대문을 들어서자 방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선 열댓 명의 남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각자 울고 있었다. 진호는 방구석을 보고는 문지방 앞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소울 트리의 윗부분이 댕강 잘린 채 나무 둥치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떤 양심 없는 인간이 소울 트리를 잘라갔는지, 범인을 꼭 잡아야 합니다!"


한 남자가 분개했다.

“얼마나, 얼마나 아팠겠어요.”


한 여자가 눈물을 흘렸다.

“이제 우리는 어떡하죠? 소울 트리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사람들은 장례식에 온 사람들처럼 곡소리를 냈다. 진호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잘린 둥치를 끌어안았다.

"미나! 미안해... 미안해! 내가 너무 늦게 왔지......."


사람들은 진호를 둘러싸고 모두 함께 껴안았다.

“나무는 고통을 못 느낀대요. 잘리는 순간에도 아프지 않았을 거예요...”


진호는 래미의 집을 찾아갔다. 래미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진호는 문 밖에서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잘린 나무에서 다시 미나가 자라나는 꿈을 꾸었다. 나무 둥치에서 검은 머리부터 솟아 나오더니 어릴 적 미나가 나왔다. 미나는 작은 두 팔로 진호를 꼭 껴안았다. 진호가 눈을 떴을 때 역광을 받아 얼굴이 어두운 래미기 진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래미 야, 소울 트리가... 소울 트리가 없어졌어."


"그래요? 아무튼 나 남자 친구 생겼으니까 이제 찾아오지 마세요."


파란 나비가 그려진 시폰 원피스를 입은 래미는 눈부신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일 년이 지나자 소울 트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고 소울 트리에 관한 소문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둥치만 남은 소울 트리를 여전히 그 집에 남아 있었다. 방안은 거미줄과 이끼와 잡초가 자라 하나의 작은 숲이 되었다. 어느 날부턴가, 밑동만 남은 소울 트리에 붉은 꽃이 하나 둘 피었고, 나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푸른 식물과 붉은 꽃과 파란 어우러진 작은 숲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소울 트리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끝>



illust by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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