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트리 (2)

환상 그림 소설

by MIA

“이제야 오셨군요. 그동안 쭉 기다렸어요. ”

"나를요?"

"우선 편안한 곳 아무 데나 앉으세요."


여자의 신비로운 목소리는 숲 속의 메아리처럼 작은 방안에 울렸다. 진호는 앉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온 방안은 나무뿌리에 점령돼 있었다. 그중 가장 거대하고 평평해 보이는 뿌리에 엉덩이를 걸친 순간 여자가 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요, 아직 감각이 살아있나 보군요. 그럼 여기, 아니 여기도 온통 뿌리네... 전 그냥 문 밖에 서 있을게요.”


진호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여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에요. 처음 오시는 손님은 다들 속는답니다. 나무는 사람처럼 일일이 고통을 느끼진 않아요. 어린아이에게 우리는 이렇게 가르치죠, 나무 가지를 꺾으면 나무가 아프단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 식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지요. 제가 나무가 된 것도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방금 우리 식물, 이라고 하셨나요?”


“네, 보시다시피 저는 나무니까요.”


여자는 눈을 뜨고 진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여자의 검고 큰 눈 속에 황토색의 실 같은 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나무뿌리 같았다.

“사람이 어떻게 나무로 변한다는 건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요."


“사람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나무가 되길 바랐어요."


“나중에는 그 얼굴도, 팔도 다 나뭇가지로 변하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식물이 동물을 잡아먹는 그야말로 생태계의 변혁이 일어나는 셈이군요.”


진호는 틀림없이 무슨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농담 같은 상황을 동석이나 래미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동물을 잡아먹고사는 식물은 예로부터 존재했어요. 당신도 잘 아는 끈끈이주걱이 있죠. 하지만, 저의 경우는 나무가 나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내 몸이 나무로 변하는 거예요. 당신이 죽은 뒤에도 나무가 된 나는 아주 오래오래 나무로 살아갈 거랍니다."


진호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분명 특수분장으로 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 이라. 분명 여러 명의 전문가가 이 여자의 뒤에서 이 모든 일을 기획하는 거겠지.


“만져보셔도 돼요.”

“네?”

"다들 이게 속임수가 아닌가 하고 다들 의심해요. 그러니 절 만져보셔도 돼요. 당신이라면 믿을 줄 알았지만..."

진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자의 어깨를 살짝 만졌다. 분명 뜨거운 피가 흐르는 피부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어깨 뒷부분에서부터 나무가 연결된 부분은 이미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진호는 나무도 손바닥으로 쓸어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나무는 진짜였다. 여자가 나무로 변하고 있다는 것도 이렇게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조작의 증거를 찾지 못한 진호는 어쩐지 힘이 빠졌다.


“다들 소울 트리를 찾아가라고 해서 일단 오긴 했는데 그럼 전 뭘 하면 됩니까?”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나는 듣지요."


"무엇을 말이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한 비밀, 마음을 어지럽히는 고민, 밤에 꾸는 악몽, 잊고 싶은 기억.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요."


진호는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여잔 현대판 대나무 숲이 되고 싶은 거야. 누구나 힐링이 필요하다고 외쳐대는 시대에 힐링의 대가로 유명해져서 매스컴도 타고 인기와 부를 얻는 거지. 정신과 의사처럼 부담스럽지도 않고, 선무당이나 점쟁이처럼 미심쩍지도 않고, 이름도 ‘소울 트리’라니, 있어 보이잖아.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으면 이런 뻔한 연극에 속아 넘어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진호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창문으로는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방 안 가득 향긋한 나무와 풀 냄새가 가득했다. 어디선가 파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소울 트리의 머리에 앉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방안에서는 시간도 멈춘 듯했다.


"음... 전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아요. 잊어버렸나 잃어버렸나, 아무튼 무언가 중요한 게 오래전에 사라진 느낌입니다. 저는 그냥 껍데기 같아요. 일어나서 회사에서 가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회인의 연기를 충실히 하는 누군가의 아바타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저는 한 번도 편하게 자본 적이 없어요. 잠이 하루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을 한다면 저는 마침표 없이 계속 이어지는 책을 읽는 기분이에요. 숨이 차서 질식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런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한 적이 없는데..."


소울 트리는 다 이해한다는 듯 진호를 가만히 보았다. 검은 눈 속에 나무의 잔뿌리 같은 것이 살짝 비쳤다.


"자신을 용서하세요. 스스로를 용서하면 남도 용서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었든 모든 건 과거로 흘러갔어요. 당신에게는 오직 지금 밖에 없어요. 봐요, 지금이라는 순간도 금세 과거가 되었어요.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두고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래서 사람들이 다들 넘어가는구나. 진호는 소울 트리의 말에 마음이 편해지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신의 악몽과 후회를 저에게 버리고 가세요. 제 등 뒤에 있는 나무에 귓속말로 속삭이면 된답니다."


진호는 시키는 대로 순순히 나무에게 귓속말을 하려고 다가갔다. 불면에 대해 소녀가 나오는 악몽에 대해 진호는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소울 트리에게 다녀온 직 후 진호의 불면증은 기적처럼 사라졌다. 잠을 푹 잘 자니 입맛이 돌았고 밥을 잘 먹으니 혈색이 좋아졌다. 동석의 표현대로 마음이 구름에 둥실 뜬 것처럼 가벼워졌다. 그즈음 진호를 보는 사람마다 칭찬 일색이었다.


“얼굴이 확 폈는데 무슨 좋은 일 있나 봐?”


“이 대리님, 장가가실 때 되셨나 봐요. 미모에 물이 올랐어요.”


몇몇 동료들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축 처진 어깨로 좀비처럼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활기차게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다 얼굴에는 늘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그들 역시 소울 트리를 찾아간 게 분명했다. 진호도 누군가 근심 걱정이 있어 보이면 소울 트리에게 찾아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포털 사이트에도 차츰 소울 트리에 대한 기사가 나기 시작했다.


'소울 트리라 불리는 인간 나무가 있어 화제다. 나이도 이름도 미상, 언론의 인터뷰를 극구 거부하는 이 여성은 몸에서 나무가 자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손이나 발이 나무껍질처럼 변하는 희귀병은 해외에서 수 차례 보고된 바 있지만 이 여성처럼 몸 자체가 나무로 변한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이 여성이 알려진 건 작년 말부터인데,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고 한다. 소울 트리라는 이름도 그녀를 찾아오는 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실제로 소울 트리를 통해 고민 해결은 물론 자살하려던 생각을 버린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소울 트리는 이제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전국구 교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소울 트리의 효과를 체험한 이들이 블로그와 SNS를 통해 소울 트리를 알리는 바람에, 소울 트리의 집 앞에는 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소울 트리의 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주민들의 항의도 잇따랐다.

언론에는 ‘소울 트리의 실체’, ‘소울 트리를 필요로 하는 병든 사회’, ‘소울 트리는 힐링의 대가인가 사기꾼인가?’ 등 소울 트리의 정체를 의심하는 의심하는 칼럼도 여러 개 실렸다.


진호는 드물게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불면의 밤은 다시 찾아왔다.


그날 밤 꿈속에서 진호는 소울 트리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검정 대문이 열리고, 무릎에서 피가 흐르는 소녀가 진호에게 달려왔다. 소녀가 흘린 피는 바닥에 떨어져 붉은 장미 꽃잎이 되었다. 진호는 소녀가 내민 손을 잡으려 했지만 몸이 그 자리에 굳어 꼼짝도 할 수 없다. 이번엔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다. 소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 나무뿌리가 있었다. 진호는 그 눈을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했다.


“너 괜찮아? 피가 흐르고 있잖아.”


소녀는 수줍게 웃더니 무릎에서 빨간 꽃을 떼어내 진호에게 건넨다.


“이건 꽃이에요. 제가 넘어지면 무릎에선 꽃이 피어요.”


장미보다 잎이 크고, 피처럼 붉은 이름 모를 꽃이다.


"아프진 않아?”

소녀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로젓는다. 검정 대문 안쪽에서 소녀를 찾는 중년 남자의 외침이 들린다.


“아저씨, 우리 도망가요.”


소녀는 진호의 손을 잡고, 진호는 영문을 모른 채 소녀와 함께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어느새 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서 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숨을 고르며 소녀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다. 뒤를 돌아보면, 소녀의 무릎에서 떨어진 꽃잎이 줄지어 떨어져 있다.


“전 언젠가 나무가 될 거예요. 제 무릎에선 꽃이 피고, 머리에선 잎사귀가 자랄 거예요. 그리고 나무가 되면 전 더는 아프지 않을 거예요.”


아이의 얼굴은 문득 스무 살 여인처럼 보인다. 검은 눈 속에 나무뿌리가 살짝 비친다. 소녀가 진호를 돌아보았을 때 진호는 소녀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미나!”


땀에 흠뻑 젖어 꿈에서 깬 진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진호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발작적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쉰 다음에야 평정을 되찾았다. 진호는 늘 목에 가시가 걸린첫처럼 불편했던 이유를 기억해 냈다. 진호의 기억 속에 잊힌 이름 미나, 나무가 되고 싶어 하던 소녀. 무의식 깊은 곳에 꽁꽁 묻어둔 이름 미나,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자 잊힌 기억이 한꺼번에 떠 올랐다.


illust by 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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