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짧은 그림 여행
시작은 짬뽕이었다. TV의 맛집 프로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온 한국말 잘 하는 여성이 냄비에 끓여먹는 짬뽕을 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진짜로 마싰오요!"
짬뽕은 그 여성의 커다란 입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고, 냄비의 짬뽕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정말 저 많은 걸 혼자 다 먹었을까? 방송이란 무수한 편집 속에 탄생하는 것이므로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짬뽕을 먹으러 가야 했다. 목적지는 전국 3대 짬뽕집 중 하나라는 논산의 짬뽕집이었다.
전국 3대 짬뽕집 중 공주에 있는 한 군데는 이미 가 봤는데, 그 짬뽕집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그날도 무슨 하늘의 계시(?)를 받고 짬뽕을 먹으러 친구와 함께 머나먼 공주까지 갔다. 3대 맛집답게 번호표를 받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붉고 진한 국물, 고기 고명이 수북이 올라간 짬뽕은 소문대로 참 맛있었다. 정신없이 짬뽕을 흡입하는 와중에 순간 발가락에 날카로운 고통이 전해졌다.
바닥을 보니, 새끼손톱만 한 새까만 지네가 지나가는 게 아닌가! 저게 지금 내 발가락을 문 거야? 나는 얼른 신발을 벗고 발을 의자 위로 올렸다. 우리의 소동에 지네도 겁을 먹었는지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지네한테 물린 엄지발가락은 벌에 쏘인 듯 따끔했고 그 부위가 점점 붓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에게 이 충격적인 상황을 보고했다. 직원들과 사장님은 그곳이 산이라 밖에서 일하다보면 지네에 많이 물린다는 위안(?)을 건넸다.
그런데 그때, 발등에 반쯤 걸친 내 샌들 속에서 사라졌던 지네가 기어 나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있는 힘껏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공중부양한 신발은 약 5m 떨어진 곳에 착지했고, 친구는 그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사인 볼트인 줄...네가 그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는 건 처음 봤어."
이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나는 다시는 짬뽕을 먹지 못 하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너무 슬프지만 다행히 이 이야기의 결말은 훈훈하다. 지네로 인해 고통받은 나의 불안한 눈빛과 거친 생각을 읽은 사장님은 음식값을 받지 않고 지네 물린 곳에 바를 약을 주셨다. 만약 병원에 가게 되면 치료비도 청구하라는 친절한 말씀을 덧붙이며. 이것이 3대 짬뽕집의 슬픈 전설에 관한 전말이다. 다행히 부은 발가락은 금세 가라앉았고 한 시간쯤 지나자 멀쩡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뒤늦게 후회했다.
"아, 탕수육도 먹었어야 했는데!"
논산에 있는 전국 3대 짬뽕집에 가서는 탕수육부터 시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 탕수육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 집의 명물은 비빔 짬뽕인데, 비빔이란 말이 무색하게 국물이 넉넉하게 나왔다. 보통 짬뽕보다 걸쭉하고 해물이 신선한데 매운 편이다. 일부러 찾아간 보람이 있을 만큼 맛은 있었다. 사실 짜장면이 더 맛있었는데 달달한 맛이 어린 시절 먹던 맛을 떠올리게 했다.
(내 돈 주고 먹은 후기입니다^^)
이 집에서는 개미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아 평화롭게 식사를 마쳤다. 문제는 너무나 배가 부르다는 것으로 우리는 좀 걸어야만 했다. 근처에 산책할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엄청난 불상이 있다는 관촉사에 가 보기로 했다. 입장료 1,500원을 내고 (불상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입장료까지 받나 투덜대며) 불상이 있다는 곳까지 계단을 올라갔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오를수록 얼마나 대단한 불상인가 두고 보자는 심정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두고 볼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저 멀리 서 있는 엄청난 크기의 미륵보살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일단은 크기에 압도되고 그다음으로는 불상의 생김새에 놀랐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과 복주머니 같은 코와 넉넉하고 펑퍼짐한 얼굴은 만화 캐릭터 같기도 하고 민화 속 여인의 얼굴 같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보살이 꼭 남자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관촉사의 설명문을 잠시 인용하자면 이 거불상의 정식 이름은 '석조 미륵보살입상'이다.
그러니까 은진미륵은 먼 미래 지구가 멸망하고 그때 살아남았으나 구제받지 못한 좀비 같은 인간들을 구하러 오신다는 건가. 아무리 이 세계의 미래가 어두워도 은진미륵이 우리를 구하러 오시리라는 걸 알고 나니 비로소 인류의 희망이 보이는 듯......
종이에 거석불의 전체 모습을 담아 보았으나 우스꽝스러운 만화 캐릭터 같은 얼굴이 되었고... 이렇게 그린 게 불경죄가 될까나란 걱정도 살짝 들었다.
이 미륵불상에도 전설이 있는데 다행히 슬픈 전설은 아니다.
"어느 여인이 봄날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는데 갑자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니 아기는 보이지 않고 큰 바위가 막 땅에서 솟아올랐다. 바위가 태어나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 기이한 광경을 마을에 내려와 퍼뜨렸고, 결국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임금은 불상을 만들어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라며 고승 혜명에게 불상을 세우라고 명했다. 혜명 대사는 석공 백 여 명을 모아 부처를 만들었다. 38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이윽고 갓난 바위는 미륵보살입상으로 환생했다."
은진 미륵불의 자비로움과 영험한 기를 한껏 받고 아직도 배가 불렀던 우리는 근처의 돈암 서원으로 향했다.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그의 사상을 잇기 위해 창건된 서원이라 한다.
돈암 서원 응도당의 대청마루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이런 곳에서 책을 읽으면 한나절이 금방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탁 트인 마루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공부했을 조선시대 아이들... 아니 조상님들이 부러울 따름.
응도당 마루에 앉아 서원 입구를 스케치했다.
(스무성한 컬링을 부르는 마루. 하지만 내겐 캐리어도 수행원노예도 없다. 노 룩 패스는 아무나 하나.)
물감으로 채색까지 하고
완성된 그림을 무심히 마루에 던져보니 잘 어울렸다.
주말임에도 관람객은 우리말고는 두 명밖에 없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서원에 앉아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림을 그리자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이렇게 우연히 발견하는 우리 문화재가 참 좋다. 고택과 서원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도 불과 몇 개월 사이 일이지만 전국 곳곳에 있는 서원을 하나씩 다 돌아보고 싶다. 무엇보다 돈암 서원은 짬뽕으로 시작된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