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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Nov 07. 2019

모기와 싸우려면

왼쪽이 정상 적혈구, 오른쪽이 겸상 적혈구

한국인은 잘 모르지만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라는 유전병이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적혈구가 저산소상태가 되면 가늘고 길게 변형되어 낫과 같은 모양으로 변하는 유전적 돌연변이이다. 겸상 적혈구는 쉽게 파괴되어 심한 빈혈을 일으키고, 모세 혈관을 통과하기가 어려워 모세 혈관을 막으므로 육체적 피로, 통증, 뇌출혈, 폐·심장·신장의 기능 장애를 가져오기도 하며 아직까지도 완벽한 치료제는 없다고 한다. 특히  겸상 적혈구 대립유전자를 2개 가진 동형 접합자는 겸상 적혈구만 있기 때문에 극심한 빈혈증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무서운 돌연변이는 어째서 생긴 걸까?  봄, 여름만 되면 우리를 괴롭히는 작은 흡혈귀, 바로 모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생활사 중 일부 기간 동안 적혈구 안에 들어가 번식하여 적혈구를 파열시키고 나오며 이때 오한과 발열이 생기는데, 겸상 적혈구는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되기 전에 파열되므로 말라리아 기생충의 번식을 막아 말라리아 증세를 완화시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겸상 적혈구 빈혈증'


모기가 옮기는 질병인 말라리아 기생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맞대응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평균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았던 시대에는 상당히 좋은 거래였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 돌연변이가 오히려 건강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책 [모기]의 저자 티모시 C. 와인 가드는 이 불편한 거래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마치 우리의 유전자 서열을 엄선해 만들던 생명공학자가 "연구하거나 임상실험을 할 시간이 없다. 우리 종의 생존을 보존하려면 서둘러 수정할 부분만 보완해야 한다. 나머지는 나중에 손보면 된다"라고 생각한 것만 같다. 절박한 시기는 늘 자포자기식 조치를 취하게 한다.
[모기] p053




우리 선조들은 모기 매개 질병으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유전적 변형뿐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천연 및 합성 의약품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모기 매개 질병에 맞서고자 하는 민간요법이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흔히 마시는 차와 커피는 물론 양파, 육두구, 계피, 바질 등 식습관까지 변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입맛이 모기에 의해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커피의 경우 전 세계에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모기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카페인이 함유된 커피는 그 효과로 보자면 믿을 만한 항말라리아 치료제로 여겨왔으니 말이다.


모기야 커피냄새 맡고 물럿가라!

이렇듯 모기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모기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옮기면서부터다. 농경사회의 시작은 인간이 환경을 간섭하고 조작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모기들의 생활공간을 침범하고, 관개수로를 건설하면서 의도치 않게 모기가 번식할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짐승을 기르고 가축을 사육하면서 인간이 사는 곳마다 병원체가 득실거리는 '질병 보유고'를 만들고 말았다.


인류의 동물 가축화와 식물 작물화는 모기가 전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때 묻지 않은 변두리 지역과 손 타지 않은 기회의 수평선에까지 질병을 퍼뜨리는데 박차를 가했다.
[모기] p070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이런 질병의 확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전혀 몰랐을까? 책 [모기]에서는 고대인들이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을 거라 말한다. 비록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민간요법들을 실험했고, 고인 물과 습지, 늪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쁜 공기'가 모든 질병을 유발한다고 추측했다. 고인 물과 습지, 늪은 모기의 번식지이니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셈이다. 

'Beelzebub' 베엘제붑,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재미있는 건 고대의 신화에 나타나는 재앙 신들이 곤충과 유사한 형상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바빌로니아의 지하 신 네르갈은 모기와 유사한 형상으로 묘사되어있다. 가나안과 블레셋의 신 베엘제붑 또한 파리대왕, 곤충 대왕으로 등장한다. 불을 숭배하는 고대 종교 조로아스터교의 마귀들도 질병의 신 바알과 더불어 파리 혹은 모기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특히 인도인들은 '질병의 왕' 말라리아를 열병 마귀 타크만으로 의인화했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질병을 미신적 개념으로 해석했다. 신비주의와 기적, 신의 분노가 지배하는 세상 말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질병의 원인인 모기와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과의 전투는 늘 불공평했다. 모기와 모기 매개 말라리아 기생충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왔다.
[모기] p054


그리고 어쩌면, 이는 현재 진형행일지도 모른다. 선조들이 그들 나름대로 현상을 해석하고 추리하고 결론을 내렸듯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현상을 해석하고 추리하고 결론을 내린다. 이를 먼 미래의 인류가 본다면 현재의 우리 또한 어리석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거짓으로 밝혀진 과학이라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지금이 거짓일 수 있음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과 생각을 열어야, 제대로 모기와 싸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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