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때 우연한 기회로 1살 된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종은 스코티쉬 폴드, 그 유명한 귀가 접혀있는 종이다. 나는 앞으로 함께 살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변덕이 심하고 암컷이라 '변덕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편하게 '덕순아~', 혹은 '떡순아~'라고 불렀다.
당시 나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고 작은 원룸에서 지냈기 때문에 덕순이가 내 방에 있는 것만으로 온 방안이 활기가 돌았다. 수업을 마치고, 혹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덕순이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발라당 드러누워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쓰다듬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계속 쓰다듬다 보면 도망갔다. 그러다가 간식이나 장난감으로 유인하면 다시 냅다 왔다. (그래서 이름이 '변덕'순이다) 덕순이와 노는 게 하루의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덕순이가 더 재미를 느끼는지, 짜증을 덜 내는지도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며 존중과 배려를 배웠다. 나도 덕순이도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가끔씩은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을 때, 덕순이를 보면서 온갖 말을 쏟아내곤 했다. 덕순이는 '뭐라냥?'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봐 주었다. 그것만으로 내게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언제 한 번은 너무 힘든 일이 있어 누운 채로 흐느끼고 있을 때였다. 덕순이가 내 가슴 위로 조용히 올라오더니 *빵 자세를 취하고 *골골 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녀석이 눈치 없게.. 지금은 못 놀아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가슴에는 어느새 덕순이의 따뜻한 온기와 진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힘들었던 내 마음은 덕순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동에 의해 흩어져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양이의 골골 송 진동 주파수가 세포 재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쩌면 덕순이는 상처 난 내 마음을 회복시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옆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그러니까 아파할 필요 없다고.
*빵 자세 _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자세
*골골 송 _ 고양이 몸에서 나오는 '그르릉', '갸릉', '그릉그릉'과 같은 소리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