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것을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번에 친척 여동생이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여름이 가기 전 친척 형제자매들끼리 바다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동생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한 20대이자 막내였다. 그렇게 우리는 충남 태안군 청포대로 향했다.
첫째 날은 해수욕과 바비큐 파티를 즐기며 야무지게 놀고 이튿날 아침, 우리는 조개를 잡으러 갯벌로 향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햇볕이 생각보다 뜨거워 내 두 팔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통에 담긴 조개를 누나에게 주고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숙소를 정리하고 쉬고 있을 때, 누나도 돌아왔다. 그리고 곧이어 친척 형도 돌아왔다. 하지만 막내 여동생은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도 가져가지 않았기에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친척 형은 '이제 어른이니까 알아서 돌아올 거야' 라며 밥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는 형을 거들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식사가 완성되어가고 있을 때, 나는 여동생을 찾으러 갯벌로 향했다. 혹시나 여동생이 더위를 먹고 쓰러진 건 아닌지 걱정하면서..
갯벌에는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조개와 맛조개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여동생이 홀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다가가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말했다. 여동생은 언니 오빠들이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나는 여동생과 돌아오는 길에 언니 오빠들이 왜 따로 움직였는지를 설명하며 다음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숙소에 있던 언니 오빠들의 반응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여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지만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다.
나는 뒤늦게야 여동생의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입장에선 언니 오빠를 믿고 따라왔는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이 서운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여동생의 마음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간과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간과는 내가 그동안 배운 것들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아니 더 악화시켰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동생이 2시간 동안 홀로 남겨진 '구덩이' 같은 순간을, 메우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파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는 만큼만 최선을 다할 뿐이라 믿는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어도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동생을 발견하고 데려올 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오빠 동생을 떠나서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의 맥락을 살펴야 했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한 뒤에 판단과 설명이 따라와야 했다. 하지만 내 맥락으로 상대를 섣부르게 판단하고 거기다가 교정까지 하려는 것은 나의 오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이는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배운 것이 담겨있는지 점검해보기로 했다. 만약 배운 것이 담겨있지 않으면 스스로 피드백을 주고 다음 행동을 교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글로 남겨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이 내가 배운 것을 정말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