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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Jul 02. 2016

《집 나간 책》

재밌고 친근한 서평을 만나다

기생충학자 서민교수님의 서평집 《집 나간 책》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지난 번에 《책을 읽을 자유》라는 어마어마한 서평집에 기가 잔뜩 눌린 나를 토닥여주고 웃게 해 준 제목과 표지 그림조차 귀여운 책 《집 나간 책》.


'서민'작가님의 성함친근하다.(필명이 아닐까 싶어 검색해 보았으나 본명이 따로 안 적힌 거 보면 본명이 맞는 거 같다)


서민 작가님은 기생충학자이자 단국대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말 대신 글로 뜨자고 결심하고 십여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칼럼리스트가 된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으로 기생충 책 시장을 평정하고, 1년여 동안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하기도 했으나, 자질 부족으로 잘리고 난 뒤 초심으로 돌아가 책만 쓰며 살기로 했다고 한다.

tv출연 당시의 서민 교수님(왼쪽)

《집 나간 책》 이후 최근 발간된

흥미진진한(?) 기생충 이야기로 가득한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라는 책도 관심이 가득 간다.


기생충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서민 작가님이 학교 근처 식당에서 밥 먹다 우연히 기생충학 교수님을 만났는데 자신의 밥값을 계산해주셔서 이런 분과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에 기생충 연구에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기생충에 대한 각별한 애정

기생충 공부를 하다 보니 기생충이 하는 짓에 비해 지나치게 탄압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기생충은 알고 보면 우리한테 별로 해를 안 주는 존재라고 한다. 실은 기생충으로 고생하거나 기생충 때문에 죽는 그런 경우가 사돈의 팔촌을 봐도 하나도 없는데 '왜 나는 기생충을 미워했을까?' 라는 생각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한다. 얼굴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고. 공부도 못 할 거라 생각하고, 여자들도 자신를 만나면 고개를 젓고..이런 세월이 겹쳐져서 기생충에 대해서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집 나간 책》을 읽다 보면 서평 중간중간 작가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들려주고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친 묵직한 주제들도 서민 작가님 고유의 입담으로 유쾌하고 친근하게 풀어낸다.



책은 집구석에서 읽을지라도 앎을 통한 실천은 집 밖에서 해야 한다.


그래서 제목이 《집 나간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말한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책 읽기'처럼 기생충을 이용한 제목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자신의 정치 성향이 한국 사회를 기준으로 약간 왼쪽에 있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따금씩 나온다. 읽다가 "이 자식 좌파잖아!"라며 부르르 떨지 않도록 미리 주의하라고 솔직 당부도 한다.


 서민작가님의 서평에 대한 개성적인 생각


" 서평집을 내는 분들은 대개 리뷰를 아주 잘 쓰지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글들이 무지하게 쉽다. 독자로 하여금 서평을 쓰고픈 욕구를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내 서평집의 가장 큰 순기능이리라."


글 잘 쓰는 분들은 글 잘 쓰는 대로, 나는 나대로 쉽고 즐겁게 쓰겠다는 작가님의 생각에 왠지 모를 동질감까지 느껴진다.

(지식의 폭과 깊이 천지 차이겠지만 말이다)


목차


제1장 사회 | 무지에서 살아남기


양심이 더 간지 난다 『양심을 보았다』

좌파의 앞날을 예언하다 『유령 퇴장』

닭의 나라 『대한민국 치킨전』

변명의 여지가 없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당신도 고소당할 수 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된 걸까?

 『가장 멍청한 세대』

세 번의 시련에서 살아남기 『언브로큰』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 『부러진 화살』

교회 비리, 고작 이 정도? 『서초교회 잔혹사』

사라진 63조 원을 찾아서 『말라리아의 씨앗』

2017년이 멀지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괴물이 되어버린 20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만나기 힘든 스승 『정희진처럼 읽기』

우리는 평화를 사랑했을까? 『종횡무진 한국사』

마법의 인터뷰어 『그의 슬픔과 기쁨』

가상의 그분이라면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 『리뎀션』

거짓말일까, 아닐까? 『텔링 라이즈』

살아서 싸워야 한다 『멈춰버린 세월』

다시 황우석을 생각한다 『진실, 그것을 믿었다』

여성이여, 버티시라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제2장 일상 | 편견에서 살아남기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하석아, 미안하다 『온도계의 철학』

아내에게 잘하자 『가트맨의 부부 감정 치유』

베스트셀러에 내 이름이 『나의 한국현대사』

거절을 잘할 수는 없을까?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아버지는 빨대다 『소금』

개를 기른다는 것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글이 술술 써진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내가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도 당할 뻔했다 『유괴』

커피는 염소도 춤추게 한다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아는 티를 내자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고전을 놓치지 말지어다 『아주 사적인 독서』

평창에는 별이 산다 『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

그의 책을 보고 싶다 『해피 패밀리』


제3장 학문 | 오해에서 살아남기


멋진 고발, 멋진 보수 『공부 논쟁』

명품 대사 『사랑이 달리다』

여성에게 감사하자 『가슴 이야기』

경제학자의 족집게 과외 『불황 10년』

제약회사에 속지 말자 『불량 제약회사

파리도 기생충일까? 『투명인간』

죽음이 다가왔다 『다잉 아이』

우리나라 의사는 뭐해?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프로파일러는 답답하다 『프로파일러』

의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제노사이드』

마음속 멍울을 뱉어내자 『수박』

사랑스러운 과학소설 『라면의 황제』

책만 읽지 말라는 경고 『면도날』

소주 값은 싸야 한다 『19금 경제학』

거장의 ‘거대한’ 상상력 『신세계에서』

우리는 세균으로 덮여 있다 『좋은 균 나쁜 균』

노벨 생리의학상은 글렀다 『교양인을 위한 노벨상 강의』



총 50여권의 책. 《책을 읽을 자유》의 140여권의 목록과 비교하면 깜찍한 권수다.

 《집 나간 책》 목록에서도 알고 있는 책의 수는 몇 권 안되지만 서민 교수님의 서평을 읽다보면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 많다. 이건 정말 큰 수확이다.


《집 나간 책》 속의 서평을 몇 개 인용해 본다.


 창업 후 3년 내 폐업하는 치킨집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게 현실을 말해준다. 이걸 알면서도 치킨집에 뛰어드는 사람이 속출하는 건 다른 길이 없어서인데, 이런 사태를 계속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9월 말,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장년층 고용안정 및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했다. 여러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만, 이 대책이 작금의 현실을 바꾸어주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기야, 닭들이 내놓는 정책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 '닭의 나라'(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중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원칙이 제대로 서야 하고, 원칙을 지키려는 원칙주의자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원칙주의자는 주위 사람에게 불편한 존재다. 결국 김 교수는 다른 교수들과 부딪힐 일을 없애기 위해 강의를 오후 7시 이후로 몰아야 했다. 재임용 결정 과정에서 그의 자질 문제에 대해 김 교수 편을 들어준 사람은 없었다.
'원칙'보다는 '적당히'가 우선하는, 그래서 원칙주의자들이 돌을 맞는 사회를 나는 부러진 사회라고 부르련다. 우리 사회는 언제쯤 똑바로 펴질 수 있을까?

- '원칙주의자가 필요하다'(서형, 『부러진 화살』)중



현실에 이런 대통령이 만일 존재한다면, 그분이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 이게 출발점이다. 물론 바쁜 일정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니, 대안을 제시하겠다.  『마음을 읽는다』 는 착각을 반복해서 읽는 것. 최근 읽은 책 중 이만큼 내게 깨달음을 준 책은 없었고, 나 또한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책 읽기에도 시간이 없다고 투덜댈 것 같아 가상의 그분에게 말씀드린다. "이 책 다 읽는 데 7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 정도 시간도 못 내십니까?"

- '가상의 그분이라면'(니컬러스 에플리,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중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건 공부마저 못하면 인생의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으니까. 물론 괜찮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예를 들어 소개팅 자리에 나온 여자애는 나를 보자마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선자에게 말했다. “언니,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이런 상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은 외모에 대해서 어떤 말을 들어도 신경 안 쓰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는 남자고, 키가 작은 편은 아닌 데다 직업도 뭐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 외모의 열세를 만회할 수단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저 암담하다. 박민규가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나처럼 생긴 여자 이야기다.

- '이 얼굴로 여자였다면'(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아버지가 돈을 못 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비가 빨아오는 단물이 넉넉하면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그 단물이 막히면 가차 없이 해체되고 마는 가정을 그는 너무도 많이 보았다. 아버지가 실직하면 가족이니 더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해체였다."
지병으로 고생하다 마지막 3년간 병원에 누워만 계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짐스럽게 생각했는지 떠올리면 그저 부끄럽다. 책을 읽으면서 바뀐 건 이 땅의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만은 아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작가라고 생각했던 박범신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된 것. 아울러 통렬한 반성을 해본다. 나이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를.

- '아버지는 빨대다'(박범신,  『소금』)중


혼자 읽는 책이 자기가 걸어갈 앞길을 밝히는 도구라면, 여럿이 읽는 책은 우리 주위를 밝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ㅡ  윤성근  《책이 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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