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남은 그녀를 추억합니다
《별 다섯 인생》 물만두 홍윤 지음 / 바다 출판사
처음에는 책에 대한 정보도 저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도서관 서가에서 물만두 홍윤이라는 이름에 끌려 무작정 읽게 된 책이었다.
모자 작가님(《방구석 라디오》의 저자), 생선작가님(본명 김동영, 《당신이라는 안정제》의 저자) 그리고 물만두 작가님..뭔가 거창한 필명보다 이 분들의 평범하고 인간적인 느낌 물씬 나는 친근한 필명이 좋다.
이 책 《별 다섯 인생》의 저자 물만두 작가님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거에서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10년 간 1838편의 리뷰를 올린 전설적인 서평 블로거다. 알고보니 읽으려고 찜해두었던 방대한 양의 추리소설 서평 모음집 《물만두 추리 책방》의 저자였다.
아무 생각없이 책 표지 날개 부분의 저자 소개를 읽어내려 가다가
'2010년 10월 어느 날 건강해져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끝으로 그해 12월에 영면했다'
는 문구에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 책표지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스물다섯에 근육병(근육이 점점 약해져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희귀병 '봉입체근염')진단을 받고 이후 거의 20여 년간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고 서평을 쓰는 한편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일기처럼 써나갔다.
《별 다섯 인생》은 바로 저자와 그녀를 포함한 다섯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책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생을 살고
또 다른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산다.
그중 하나가 내 인생이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라도 상관없다.
라고 말할 만큼 의연하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남의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고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게 변하고 마지막에는 손가락 여섯 개만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때조차도 그녀는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렸다고 한다.
불치병, 희귀병, 난치병..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저자처럼 20대 젊은 날 쾌활하기 그지없었던 동생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원인도 치료도 불분명한 난치병..
동생의 신체를 여기저기 망가뜨리는 그 병이라는 놈은 무차별적으로 찾아와 재발과 완화를 반복하며 우리 가족을 괴롭혔다 도망갔다 한다.
20대를 병마와 싸우면서 고통스런 나날들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속으로 단단해진 걸까.
동생은 병이 재발하면 의연하기만 하다.
또 언제 찾아들지도 모르고 더 큰 불행을 안겨다 줄지도 모르지만 지금 주어진 현실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별 다섯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녀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권위적인 가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배움에의 열정과 자식과 언제나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움직이지 못하는 딸을 헌신적으로 보살피면서도 유쾌한 유머를 잃지 않는 어머니, 투닥투닥 다투기도 하지만 언니를 웃게 해주는 속 깊은 여동생 만순이, 듬직한 남동생 만돌이까지..다섯 식구의 이야기는 참으로 따뜻하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에게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인터넷.
저자는 인터넷을 자신의 인생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그녀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연을 맺으면서 자신의 글을 읽어주고 댓글을 달아주고 안부를 주고받는 분들에게 감사해 한다.
그녀의 블로그를 괜시리 기웃거려 본다.
주인없는 빈 방을 그녀의 여동생과 추모해주시는 분들이 채워주고 있다.
'그의 부재가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까닭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서평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즐길 책들은 여전히 나오는데 그는 더 이상 말을 걸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
라는 말이 코끝에 찡하게 와닿는다.
책의 말미에는 여동생 만순(본명홍현수)님이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그녀를 기억하는 분들의 추모글이 실려있다.
별다섯인생.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별점을 후하게 준다. 혹여 자신의 별점 때문에 추리소설을 안 읽는 독자가 생길까 봐서.
제목처럼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도 별점을 후하게 줄 것만 같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내 인생에 별을 몇 개 줄 수 있을까.
책 속 그녀의 이야기
넘어져도 일어설 땅이 있어 좋은 사람은 일어서기를..일어설 수 없는 사람은 그 땅이 늪이 아님에 감사하기를..설사 늪이었다 하더라도 똥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를..
지금 분기점에 있는 사람은 그 분기점을 넘으면 쉬어 갈 그늘이 있음을 기억하기를..잠깐 쉬었다 갈 수 있음에 만족하기를..넘어야 할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나락으로 떨어지는 자도 그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 냄새, 내 기억의 편린 한 조각만 남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책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어떤 지식도 지혜도 경험도 아닌 나 자신과의 소통, 내 과거와의 만남이다. 그로 인해 다시 내 미래와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다.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그 책은 남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책을 읽을 것이므로. 내가 굳이 그 책의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내가 죽을 때 가져갈 책도 아니다. 내가 가져갈 것이라고는 죽으면 끊어질 내 기억뿐이다.
산다는 건, 어쩌면 항상 부모에게 짐만 지우는 자식이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것이고, 자식은 그런 부모를 위해 단 한 번 지팡이와 의자가 되어 드리는 것이다.
이마저도 못하겠다면 나중에 당신이 당신 자식에게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생각하기를...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니까.
할 수 있는 데 못하면 할 수 없게 되는 날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떤 관계를 맺고 산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부부 관계, 형제 관계, 친구 관계, 이웃 관계 등등..그 관계를 맺기 위해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배려와 이해는 필수다. 가끔 충돌도 하지만 단단한 관계는 충돌 몇 번에 깨지지 않는다.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많은 사랑이 있는 사람이 먼저 이뤄야 한다.
세상에는 열 가지 보따리가 있다. 그중 아홉은 불행 보따리고 나머지 하나만 행복 보따리다. 아홉에 얽매일 것인가, 하나에 기뻐할 것인가..선택은 우리 몫이다.
여름에 지하철을 타면 땀 냄새에 발 냄새에 온갖 냄새가 다 난다. 하지만 그런 냄새 없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화장품 냄새는 안 나더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사람들이 열심히 살면서 흘리는 땀 냄새 같은 게 없다면 과연 세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어떤 냄새에 인간이 열심히 살면서 흘린 땀 냄새를 비교할 수 있을까?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더이다. 그건 꽃향기보다 인간의 땀 냄새가 더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한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발냄새가 그립다.
나는 영화를 즐기는 '낭만의 눈'을 잃었지만 시대를 알아보는 '분별의 눈'을 얻었다. 또 언제 바뀔지 모를 눈이지만 나이 들면서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이 참 소중하다.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라도 괜찮다. 스칼렛 오하라에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이 지금 소외된 이들에게도 언젠가 태양은 떠오를 것이다. 내일은 언제나 온다. 내가 어디에 있든 태양이 항상 떠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가.
아파서 자다깨다 하는 일이 많아졌다.아침에도 후유증이 남는다.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매번. 매시간. 매일. 오는 날들이여. 반기지 않아도 되겠지. 작별은 의식없이. 언젠가 내가 떠나도 괘념하지 마시길. 오늘은 우울이 똬리를 튼다.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지니고 있기로 했다. 이런 날도 있는 법.
울고싶음 울고 우울하고 싶음 우울에 나를 던진다. 그래도 나는 빠져나올 자신이 있으니까.
로맨스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도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슬픔이 더 큰 슬픔과 연민을 동반하고, 가슴에 침잠해 있던 것들까지 부유하게 만드니 가슴이 먹먹해서 기분이 가라앉기 쉽상이다. 지금도 사랑 이야기를 읽고 나서 가라앉은 상태다. 기분을 바꿔 보려 애를 쓰지만 왠지 귀찮다. 그래서 추리소설만 읽는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측은지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가족을 서로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라. 밖에서 일하는 남편이 얼마나 고맙고 일하는 아내가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힘들게 먹이고 입히는 부모님의 어깨를 보라. 얼마나 굽어 있는지. 가방을 메고 가는 아이의 어깨를 보라. 자식이라 더 측은하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측은한 존재들이다. 좀더 따뜻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 아닐까.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위해 누군가 피를 토하며 썼을 글을 읽지 않고 모른 척 외면한 죄.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싶다가도 애써 눌러 가라앉힌 부유물이 떠오를 때면 저걸 다시 밟아 가라앉혀 아니면 토해서 뱉어내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를 만들어 내는 꼼수를 부리고 언제까지 갈지도 모를 생에 악착같이 매달리며 산다는 건 누구나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숨쉬기 싫어질 때가 있다.
힘내지 말고 그냥 이대로 있어 보자.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떠오를 일만 남으니까.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사람도 있고 추락만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일이 있을까 싶겠지만 세상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있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겠지만 더 나빠지기도 한다. 목숨이 있는 한 약해질 수 없음은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기운빠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 누군가 나를 바라봐 주는 한, 나는 절대 약해지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그리고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올 때까지 절대 떠나지 않겠다!
떠나는 그 날까지 열심히 글을 써내려 갔을 그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비를 부르는 듯 하다.
컴퓨터 앞에 앉으니 불현듯 감사하다는 생각에 뭉클했습니다. 만일 앉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님들을 만났을까?
아침에 나를 일으켜 주는 엄마에게 감사했습니다. 밤새 아파 끙끙대며 뒤척이던 내 몸을 이렇게 아침마다 일으켜주시니.
밥상을 앞에 놓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 손에 힘이 있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아직 볼 수 있어서.
오늘따라 왜 이리 감사한 마음이 넘치는지. 내게 아직도 쓸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내가 잃어가는 많은 것들 가운데 소중합니다.
지친 저녁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퉁퉁 부은 다리를 매만져 주는 가족이 있기에. 잠자리에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감사했습니다. 나에게 지탱할 힘이 있어 아직은 가족들이 덜 슬프다는 사실에.
새벽별님의 편지를 읽고 나니 감사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작은 감사로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ㅡ 《별 다섯 인생》 에필로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