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your life <디어 마이 프렌즈>

ㅡ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

by 책사이

노희경 극본 16부작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방송일 : tvN 2016. 5.13~2016. 7. 2)


"안궁, 안물.(안 궁금하다. 안 물어봤다.)

요즘 누가 꼰대들 이야기를 돈 주고 읽느냐. 자기 부모한테도 관심 없는 게 세상이다"

1화에서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로 책을 써보라는 엄마의 말에 완(고현정 분)은 딱 잘라 대답했지만

난 궁금했고 보고싶었다.

다루어지는 이야기들이 지난 날 나의 이야기면서 머지않은 나의 이야기이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면서 부모의 이야기이기에.


정작 TV에서 한창 방영할 때는 한 편도 못 봤다.

책이든 영화든 한창 베스트셀러이거나 흥행할 때 보는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느긋해지면서 한참 후에 찾아보게 된다.

<디.마.프>도 그랬다. 제 때 볼 시기를 놓치니 느긋하게 한꺼번에 몰아 볼 요량으로 드디어 며칠 전 야심한 밤 TV를 켰다.


그런데 그만 3,4회에서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한번 더 돌려보기하고 있다.

때로는 완(고현정 분)에게 때로는 희자 이모(김혜자 분)에 때로는 정아 이모(나문희)에 자연스럽게 이입되어 눈물이 왈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4차원 소녀같은 순수함을 지닌 그녀, 희자(김혜자)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혼자가 된 그녀는 자식들 도움 없이 혼자 꿋꿋하게 살아보고자 하나 현실은 깨진 전구 하나 갈기도 쉽지 않다.

의사에게 망상장애 증세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이러다 치매 걸리면 자식들에게 피해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꽃단장을 하고 스스로 죽기로 결심한다.

몇 차례의 자살 시도는 다행히도 한바탕 왁자지껄한 소동으로 끝난다.

친구 정아(나문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난희(고두심)와 그녀의 딸 완(고현정)과 돌아가는 길에 희자는 웃는 듯 우는 듯 차창 밖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큰 숨을 내쉬며,


"너무 좋다, 살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뭉클하게 와 닿는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문득 한 순간이고

고작 한강 다리의 불빛이나 바람 때문에 살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희자의 앞집에 사는 외국인 사진작가 마크 스미스(다니엘 헤니)에게 영정 사진을 찍어두었던 정아. 그가 문자로 보내온 사진을 보고 완의 엄마 난희도 영정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인생 모르는데, 이 참에 내 영정 사진도 찍어야 겠다."


"엄마가 웬 영정 사진?"


"나는 뭐 안 죽냐?"


"엄마가 왜 죽어!"


엄마의 영정 사진 얘기에 짜증나는 말투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받아치는 그녀, 완이의 속마음을 안다.

나 역시도 언젠가 갑작스런 엄마의 행동에 그녀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기에..

오래 전에 찍어놓은 증명 사진을 꺼내 보이며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혹시 엄마가 급작스럽게 죽게 되면 영정 사진으로 쓰라고 했던 그때 그 순간이 떠올라 가슴이 턱 막힌다.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꽃단장을 하고 나서는 그녀들.

화장한 여자는 사진을 안 찍는다는 마크의 말에 충남(윤여정)은 '평생 고생스럽게 일만 해오며 평생 화장할 일도 없이 살아 온 자신들이 죽어서 영정 사진까지 초라하게 찍어야 겠냐'고 따진다.

마크는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사진을 찍어주기로 결정하고 그녀들은 다양한 포즈로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처음으로 늙은 엄마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갔다.
자신들의 영정사진을 재미삼아 찍는 사람들.
저승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살아도 오늘 할 빝일은 해야한다는 내 할머니.
우리는 모두 시한부.
정말 영원할 것 같은 이 순간이 끝나는 날이 올까.
아직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ㅡ '완'의 내레이션 中


끝을 맞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을 산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모두가 떠난 후,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혼자 사진 찍겠다고 다시 마크를 찾아 온 희자.

친구들한테는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그만 울컥 하고 말았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왜 화장도 안하사진을 찍었냐는 완의 물음에 그녀는 답한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에게는 가장 젊은 한 때더라고.. '


남은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나역시도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날씬하고 파릇파릇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의 내 외양이 한없이 초라하고 미워질 때가 있지만 세월의 흐름만큼 늘어난 살과 주름 만큼

그 시절에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고 배우고 깨닫는다.

우울해 말자.

지난 날보다 지금 이 순간과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낼지에 집중하자.


되돌릴 수 있는 길,
되돌릴 수 없는 길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순영의 교수 남편.

정아의 딸 순영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굴과 몸에 짙은 멍 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는 매번 감기 걸렸다고 아프다고 거짓말 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모르는 엄마는 그런 딸이 서운하기만 하다.

딸이 아프다고 할 때 어떻게든 찾아갔어야 되는데 사위의 방해로 딸의 상처를 보지도 못하고 더구나 순영의 아버지 석균(신구)은 딸과 부인을 다그치기만 한다.

4회에서 순영은 마침내 짐을 싸서 집을 나오기로 결심하고 패물을 챙겨 영원(박원숙)을 찾아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영원은 순영의 머리에 가려졌던 멍을 슬쩍 보게 되는데 폭행 당한 사실이 알려지게 될까.


순영 남편의 폭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감에 미리 6회의 결말을 찾아봤다.

다행이다. 딸이 폭행 당해 온 사실을 알게 되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뒤늦게라도 응징이 되어서.

남편의 폭력에서 해방된 그녀의 새로운 삶을 응원한다.


우린 모두 인생이라는 길 위에 서 있다

야심한 밤, 홀로 양푼에 쓱쓱 밥을 비벼 먹으며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보는 그녀.

영화 속 빨간 차를 타고 달리는 주인공들 대신 자신과 친구 희자가 타고 있는 상상을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남편과 세계일주하는 꿈.

하지만 짠돌이 잔소리꾼 남편은 그녀의 평생 소원을 무참히 짓밟는다.


남편,

"네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에 무슨 세계일주야?"


정아,

"난 우리 엄마처럼 지지리 궁상맞게 살다가 병원에 갇혀죽싫어.

새처럼 훨훨 날아서 죽더라도 길 위에서 죽을거야."


남편,

"사람 사는 게 별거냐. 너도 나도 그냥 그렇게 살다지는거야.

그리넌 무거워날지도 못해.

새처럼 훨훨 좋아하시네.

이불이나 깔어!"


망연자실한 표정의 정아는 옷장에서 트렌치코트를 꺼내입고 슬리퍼 질질 끌고 차를 몬다.

그녀는 친구 희자를 불러낸다.


"막상 나왔는데 갈 데도 없고, 기름도 없고, 돈도 없고..지랄 개방구 영감이 세계일주 안간대."


속상해 하는 친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희자.


"엄마한테 갈래? 요양원에 있는 엄마 보러 가자.

네가 직접 운전해서 오면 엄마가 좋아하실 거야."


정아는 그렇게 친구 희자와 함께 요양원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간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자유를 향해 음악을 빵빵하게 틀고 질주하던 그녀들. 안개가 자욱한 도로가 어찌 심상치 않다 싶더니 뭔가 알 수 없는 형체를 들이받고 만다.

희자는 충격으로 넋이 나간 정아를 재촉하여 그 자리를 뜨지만 그녀들은 내내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완은 그런 그녀들이 답답하고 짜증난다.


"이 밤에 늙은이들이 가만히 집에나 있지 뭐한다고 차를 끌고 나가서 난리야, 난리가!"


"나는 그 나이 먹었으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자수를 결심한다.

불행 중 다행히도 그녀들이 들이받은 것은 사람이 아닌 늙은 노루였다.


뒤늦게 자신의 경솔했던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들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독설을 내뱉었던.

이모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칠십 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모들을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여댔다니 후회했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나 역시도 지난 날 그랬으니까.

뭐가 그리 잘났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할 말 못할 말 따박따박 다 했는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니 그 분들과의 관계도 걷잡을 수 없이 틀어졌었다. 되돌릴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분들이 손을 잡아 주셨다. 지난 날의 내 과오를 들춰내지도 않으셨다. 그 분들을 뵐 때마다 부끄럽고 면목 없지만 다시 주워담을 수 있는 건 주워담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그렇게 조금씩 되돌리고 있다.


앞으로 그녀들의 삶은,

또 내 삶은 어떤 변화와 굴곡을 겪게 될까.

이 길의 끝까지 가 볼 일이다.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살아있는 한은

삶을, 당신 삶을, 그리고 우리네 삶을 응원하고 싶다.


bravo my life
bravo your life
bravo our life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