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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Nov 14. 2016

경주의 가을, 역사를 돌아보다

ㅡ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첨성대를 만나다

괜찮을까..?

걱정스런 마음으로 찾았던 경주는 다행히 천년고도의 역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지난 9월 12일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고

이후 수백차례의 여진으로 전 국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못한 큰 지진으로 경주의 문화재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큰 피해는 없었지만 문화재의 경우 작은 파손에도 복구에 드는 비용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14일인 오늘밤엔 68년만에 슈퍼문이 뜬다고 하는데, 지진 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어제는 충남 보령에 규모 3.5의 지진이 일어났고,

아르헨티나와 뉴질랜드에서도 강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자연재해까지 더해져 힘든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인명 피해 없이 위기의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11월 초 경주에서 만났던 가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경주 불국사.

학창시절 수학여행 이후 거의 20여 년만의 방문이던가.

지진의 여파로 관광객들이 경주 관광을 꺼려하고  이곳으로의 수학여행도 줄줄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경주에 들어섰을 땐, 또 지진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곳곳에 살아숨쉬는 역사와 문화유산의 모습에 신비스럽고 경외감이 느껴진다.

경주에서는 가옥은 물론이거니와 낮은 아파트, 가게 심지어 주유소까지 기와가 얹혀져 있다.  사람들이 말하듯, 도시 전체가 한옥 마을 같기도 하고, 문화재로 가득 찬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불국사 입구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소나무.     낮은 자세로 지난한 세월을 버텨온 것일까.
지진으로 기와 몇 장 떨어졌지만 의연하게 버티어 준 대웅전.

지난 7일, 지진 이후 처음으로 전남의 한 중학교에서 경주 불국사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와 줘서 억쑤로 반갑심더. 그카고 참 고맙심더."

라며 경주시장은 정감넘치는 말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 역시 경주가 다시 활기를 띤 모습으로, 아름다운 이 곳이 오래도록 무사히 보존되길 바란다.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탑. 석가탑과 다보탑.

그 어느 때보다 숨죽여 유심히 올려다 보게 된다.

왼쪽의 석가탑은 1020~1030년대 지진으로 붕괴되어 보수의 기록이 있으며, 오른쪽의 다보탑은 일제강점기에 위쪽 난간이 파손되어 접합 했다고 한다. 이번 지진으로 그 접합 부위가 떨어지긴 했지만 긴 세월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내 온 두 탑이 참 고맙고 그 의연한 모습에 숙연해진다.


바람과 비에 시달린 지 천여 년을 지낸 오늘날에도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고, 이지러지지 않고, 옛 모양이 변하지 않았으니, 당대의 건축술 또한 놀랄 것이 아니냐!


라고 했던 현진건 작가님의 《불국사 기행》 의 한 구절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석가탑은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와 함께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나란히 서 있는 두 탑은 각기 다른 미를 보여준다. 석가탑은 간결하고 단정하다. 수수하게 차린 '담장 미인(淡粧美人)'에 견줄 만하고,

다보탑은 한눈에도 석가탑보다 화려한 느낌에 잔손질이 많이 간 탑이다.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 미인(盛裝美人)'이라 할 만하다.


석가탑은 다보탑 서쪽에 있는데, 다보탑의 혼란한 잔손질과는 딴판으로, 수법이 매우 간결하나마 또한 정중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다보탑을 능라와 주옥으로 꾸밀 대로 꾸민 성장 미인(盛裝美人, 화려하게 치장한 미인)에 견준다면, 석가탑은 수수하게 차린 담장 미인(淡粧美人, 엷게 단장한 미인)이라 할까? 높이 27척, 층은 역시 3층으로 한 층마다 수려한 돌병풍을 두르고, 병풍 네 귀에 병풍과 한데 어울러 놓은 기둥이 있는데, 설명자의 말을 들으면 이 탑은 한 층마다 돌 하나로 되었다 하니, 그 웅장하고 거창한 규모에 놀랄 만하다.

석가탑은 오히려 그만둘지라도 다보탑이 돌로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하여도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연한 나무가 아니요, 물씬물씬한 밀가루 반죽이 아니고, 육중하고 단단한 돌을 가지고 저다지도 곱고 어여쁘고 의젓하고 아름답고 빼어나고 공교롭게 잔손질을 할 수 있으랴. 만일, 그 탑을 만든 원료가 정말 돌이라면, 신라 사람은 돌을 돌같이 쓰지 않고 마치 콩고물이나 팥고물처럼 마음대로 뜻대로 손가락 끝에 휘젓고 주무르고 하는 신통력을 가졌던 것이다. 귀신조차 놀래고 울리는 재주란 것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름이리라...

                              ㅡ현진건, <불국사기행>中

두 탑에 대한 묘사와 느낌을 현진건 작가님만큼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과 함께

나의 짧은 언어 표현력에 대한 한탄이 뒤섞인다.


우리 모두의 소망이 담겨있길..
불국사의 붉고 노란 단풍이여!
붉게 물든 불국사의 단풍
불국사 연못 위에 드리운 단풍나무의 자태.

다음으로 향한 곳은 경주역사유적지구에 위치한 첨성대.


경주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곳곳에서 '능'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선덕여왕릉, 무열왕릉, 내물왕릉 등   신라 왕들의 무덤부터 그 유명한 천마총까지 모두 이 곳에 있다.

잘 다듬어진 초록능선에 시선이 머문다.

능만큼이나 소나무도 많은 이 곳은,

직접 다 가보진 못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도시 한 가운데 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성인이 되어 재회한 첨성대의 모습은 아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탄탄한 내진 설계에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위엄이 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되어 1400년에 이르는 세월을 버텨 왔다. 신라시대 이후 숱한 지진이 있었으나 무너졌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첨성대의 내진 설계의 비밀은 내부 적심, 즉 자갈·호박돌 등을 쌓고 그 사이에 흙을 넣어 다진 것에 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는 기존보다 북쪽으로 약 2cm 기울었고, 상부 정자석의 모서리는 약 5cm 벌어졌다. 하지만,

규모 6.5까지의 충격은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주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떠나면 언제 또 다시 찾게 될지..

어젯밤에 나를 부여잡고 울던 옛 서울은 오늘 아침에도 눈물을 거두지 않은 듯.
그렇지 않아도 구슬픈 내 가슴이어든 심란한 이 정경에 어찌 견디랴? 지금 떠나면 1년, 10년, 혹은 20년 후에나 다시 만날지 말지! 기약 없는 이 작별을 앞두고 눈물에 젖은 임의 얼굴! 내 옷소매가 촉촉이 젖음은 안개가 녹아내린 탓만은 아니리라.
                               
                              ㅡ현진건, 《불국사 기행》 中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 경주 여행을 통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소중한 문화재를 관심갖고 바라보게 되었다.

머지않은 때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 곳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보리라.


단순히 재미만 주는 방송이 아닌, 유익한 방송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전에 미국 LA에서 도산 안창호선생의 발자취를 다룬 방송도 굉장히 의미 있었는데, 이번에는 역사X힙합의 콜라보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주고 있다.

이번 방송에서 설민석 강사는

'최근 우리 국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이런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역사' 라고 했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라고 하셨던 도산 안창호선생님 말씀도 이쯤에서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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