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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Dec 04. 2016

유쾌한 반전의 《맛》

ㅡ 우울함을 떨쳐버릴 이야기의 맛

《맛》 로알드달 소설ᆞ정영목 옮김

1판 1쇄 2005. 5. 30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다음은 <뉴 타임즈>(캘리포니아 샌 루이스 오비스포 시에서 발행)에서 후원하는 짧은 이야기 공모전에 당선된 제프 위트모어의 글이다.


- 불륜 이야기

(명로진 작가님 번역의 책 《아이디어 블록》에서 발췌)


"조심해, 자기야. 그 권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보드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이걸로 자기 와이프 쏘려고?"
"내가 직접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전문킬러를 쓸 생각이야"
"난 어때요?"
그는 낄낄거렸다.
"귀엽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여자 킬러를 쓰겠어?"


이 뒤에 이어질 한 문장을 추측해볼 수 있겠는가.

짧은 이야기 속에 반전이 숨어 있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총을 들고 조준을 한 채 대답했다.
"당신 와이프."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로알드 달 작가님의 단편소설 모음집 《맛》이라는 책에서도 이와 같은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야기를 쭉 이끌어 나가다가 마지막에 한 방 날려주는 책인 동시에 섬뜩한 장면도 유쾌함 속에 녹여내는 맛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 실린 성석제 작가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로알드 달은 철두철미한 프로다.

그에게는 허술한 작품이 없다.

무서운 상상력, 수공으로 짠 비단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묘사, 타고난 호기심과 설득력으로 잘 무장된 소설은 무섭고 섬세하게, 흡반과 같은 마력으로 독자를 잡아끈다.

그의 필치는 끈덕지고 능청스럽지만 소설의 뒷맛은 산뜻하다.'


정말 그렇다. 《맛》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다내려가다 결말에 이르러 아!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쾌ᆞ통쾌한 이야기의 맛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책에는 포도주 이름 알아맞히기 내기에 얽힌 절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맛>을 포함한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편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해 보겠다.

(이야기의 핵심인 결말의 반전을 상상해 보시길.)



<목사의 기쁨>


보기스 씨는 물건을 '아주아주 싸게 사서 아주아주 비싸게 파는' 골동품 가구 상인이다.

주말이면 그는 목사를 가장하여 영국 런던 시골 마을 집들을 방문한다. 값어치 있는 고(古)가구를 발견하면 어떻게든 사기를 쳐서 싼 가격에 사간 다음 시내로 나가 비싼 가격에 파는 거다. 그는 무려 9년 간이나 이런 수법으로 돈을 벌어왔다.

그러던 어느날 세 남자가 살고있는 농가를 방문하게 된다. 거기에서 보기스 씨는 눈이 번쩍 뜨이는 진귀한 물건(18세기 영국 가구 가운데 누구나 선망하는 가장 유명한 가구인 '치펀데일 장')을 발견한다. 그는  싸게 가져갈 궁리를 하며 부자가 될 상상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호락호락할 것 같지 않은 세 남자를 온갖 감언이설과 교언영색으로 그들이 가진 진품가구를 가짜인 것처럼 속여 가격 흥정에 들어간다.


"나한테는 다리만 필요합니다. 서랍은 나중에 다른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나머지는 시체에 불과합니다. 친구분이 말씀하셨듯 땔감에 불과합니다." (보기스 씨)


"삼십오로 쳐주시오." (남자)


"안됩니다, 안 돼요! 그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고, 안 되면 그냥 가겠습니다. 이십 파운드 " (보기스 씨)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는 대답한다.

"받겠소. 가져가시오."


흥정에 성공한 보기스 씨는 차를 가지러 가고, 세 남자는 큰 가구를 차에 어떻게 실을지 궁리한다.


"이 염병할 놈의 것은 너무 커서 차 안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 이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그 작자는 집어치우라고 하고 그냥 떠나버릴 것이고, 돈도 구경 못하겠죠."


고민 끝에 남자들은 차에 실을 방법을 생각해낸다.

보기스씨는 과연 고가구를 무사히 가져갈 수 있었을까?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빅스비 부부는 뉴욕시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았다. 남편 빅스비는 치과의사였다. 빅스비 부인은 몸집이 크고 정력적인 여자로, 언제 봐도 입술이 축축했다.

그녀는 한달에 한 번 금요일 오후면 기차를 타고 볼티모어에 사는 이모를 보러간다는 핑계로 실제로는 대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호색한과 시간을 보냈다. 대령은 아주 부유했다. 거추장스러운 부인이나 가족은 없었다.

빅스비 부인과 대령 사이의 즐거운 관계는 무려 8년 간이나 아무 문제없이 지속되었다.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대령의 하인은 크고 넓적한 종이 상자를 그녀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드레스일거라 생각하고 상자 안의 물건을 꺼냈다.


"어머나, 이럴 수가!"


그것은 코발트처럼 짙고 풍부한 파란색의 밍크 외투였다.

대체 값이 얼마 나갈까? 그녀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오, 이 모피의 감촉! 커다란 외투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치 제2의 피부처럼. 어머! 정말 묘한 느낌이야!

 

그녀는 거울을 보았다. 환상적이었다. 이 외투를 입으면 원하는 곳 어디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비 부인은 그제서야 상자 안에 든 봉투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대령의 편지였다.


'전에 당신이 밍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것을 선물하오. 진실로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니 이것을 작별 선물로 받아주시오. 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이제 당신을 더 만날 수 없을 것 같소. 안녕히. 행운을 비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일 때 이렇게 느닷없이?

그녀는 무시무시한 충격을 받았다. 편지를 찢어서 창밖으로 버리려는 순간 반대편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추신. 사람들한테는 당신의 착하고 너그러운 이모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고 말해주시오.'


"이 사람이 미쳤나!"

그녀는 소리쳤다.  그녀의 이모는 이런 걸 줄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준 것이 되어야 할까?

자기 부인이 갑자기 6천 달러짜리 밍크 외투를 걸치고 춤을 추듯 걸어 들어오면 남편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알았어. 염병할 대령은 나를 괴롭히러고 일부러 그런 거야. 그 사람은 결국 내가 이걸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반드시 이 밍크를 갖고 말거야!'


그녀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전당포를 찾아갔다.  전당포 주인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다면서 돈 오십 달러만 빌리고 며칠 후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필요한 인적사항을 모두 생략한 채 '50달러'라고 적힌 전당표를 건네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전당표를 우연히 주운 것처럼 가장하여 남편에게 보여준다.

남편은 전당포에 잡힌 물건이 분명 귀한 것일 거라며 자신이 찾아오겠다고 나선다.


한 시간 후, 남편은 환상적인 물건이 들어있었다며 그녀에게 전화로 알려준 뒤, 그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온 그녀 앞에 물건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밍크 외투가 아닌..  목도리 였다. 남편은 짐짓 감탄하는 척 말했다.

"완벽해, 정말 잘 어울려!"


빅스비 부인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전당포 주인을 죽여버리겠어. 당장 전당포로 가서 이 더러운 목도리를 그 놈 얼굴에 던져버릴거야. 내 외투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 놈을 죽여버릴거야.'


오늘 밤 늦게 들어갈 것 같다는 남편의 말을 뒤로 빅스비 부인은 밖으로 나오며 문을 거세게 닫았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좀 싱거웠을 거다.)


바로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또 하나의 반전이 있었으니..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시길^^)



<남쪽 남자>


자신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걸고 하는 황당한 내기가 시작된다.

내기에서 이기면 상대방의 최신형 캐딜락이 자신의 것이 되지만 지게 되면 꼼짝없이 왼쪽 새끼 손가락을 잘라 상대방에게 바쳐야 한다.


청년은 과연 살 떨리는 내기에서 어떻게 됐을까?



나머지 7편의 이야기에도 생각지 못한 반전이 숨어 있다.


모처럼 유쾌한 소설을 읽으며 침체되어 있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본다.

조금은 편안한 맘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일주일의 활기찬 시작을 위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줄 작은 반전도 기대해본다.

때론 반전의 묘미가 있는 것도 인생의 맛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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