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갇히다

by 책사이


아이는 내가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널 때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늘 뒤만 졸졸 쫓아다녀 엄마 껌딱지라 불렸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여느 때처럼 다용도실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있었다.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딸깍 소리가 났다. 아이가 어쩐 일로 그날은 따라 들어오지 않고 다용도실 문을 덜컥 잠가버린 것이었다.


ㅇㅇ야, 문 열어! 엄마 추워.”


“싫어!”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무슨 속셈인지 문을 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잠옷 바람으로 덜덜 떨면서 아들을 살살 구슬리기도 하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 없었다.


그 때 불현듯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아이를 먼저 목욕시킨 후 남편에게 맡겨두고 나 역시 목욕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 아이는 또 따라 들어가겠다고 떼를다.


“으앙~나도 엄마 따라들어갈래.”


“안 돼! 넌 이미 목욕했잖아.”


빨리 씻고 나오고 싶은 마음에 결국 아이가 욕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확 잠가 버렸다.


그 날 엄마한테 당한 일이 분했던 걸까. 아들은 다용도실 문을 잠가놓고 거실 소파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팔짝팔짝 뛰어댔다. 그러더니 이내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니 속상하고 화도 났지만 일단 나갈 일이 급했다.


문을 거칠게 잡아 당기기도 하고, 남편을 애타게 불러도 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아 추워 죽겠구만…어떻게 나가지?’


1층이었다면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기라도 했을 텐데, 고층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문을 부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세탁기 위쪽에 주방으로 연결된 쪽 창문이 눈에 띄었다.


‘내 몸이 저기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세탁기를 밟고 올라가서 가로 25센티 세로 35센티 남짓의 쪽 창문을 열고 몸을 구겨 넣었다. 집에 잠입해 들어오는 좀도둑처럼 쪽 창문을 이용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겪고 참 어이가 없네.”


혼자 헛웃음이 나왔다.


간신히 창문 사이로 몸을 꾸역꾸역 빼냈다. 그 순 마치 내가 영화 <링>의 사다코가 된 기분이었다. TV화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던 그 귀신 말이다.


가스레인지가 있는 씽크대 위로 기어나오려는데 맙소사! 된장찌개 뚝배기를 오른쪽 무릎으로 쳐 버린 것이다. 방문을 빼꼼히 열고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들은 그제서야 다용도실 문을 열고 후다닥 다시 방으로 도망갔다.


주방 바닥은 된장찌개 국물로 범벅이 되고, 뚝배기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그 안에 들어있던 조각난 두부, 감자, 애호박 등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으악~내가 못 살아!"


바닥으로 안전하게 착지한 후,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주려던 내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무슨 일이야? 이건 또 뭔 냄새야?"


와장창 소리를 듣고 깬 건지, 나의 절규를 듣고 일어난 건지 남편이 황당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이러려고 애를 낳았나'


부자(父子)가 날 골탕먹인 것만 같아 씩씩대며 난장판이 된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하필 된장찌개 해 먹은 날 이 사단이 날 게 뭐람.'


엎어진 된장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간신히 뒷정리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니, 아이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었다.


아마 엄마한테 혼나리라 생각하고 이불 속에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니 분노의 감정이 눈 녹듯 누그러졌다.


코를 드르렁 골며 대자로 뻗어 자는 남편의 모습은 여전히 얄미웠다.


'내일은 남편을 한 번 가둬볼까?'


혼자 히죽대며 상상을 하다 나 역시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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