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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Jan 11. 2017

홍콩&마카오 <내인생 최고(?)의 여행기>

ㅡ 어설픈 외국어 사용자의 최후



여동생과 홍콩&마카오 여행 (2011 9)



"언니야, 이제 중국어 좀 하지?"


"글쎄..회화 정도야 뭐"


"그럼 우리 홍콩 가자!"


그렇게 여동생과 단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을지도 모를 홍콩&마카오 여행 계획을 짰다.


여동생은 나만 믿고 자유여행을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때마침 배우고 있던 중국어로 우쭐해 있었다.


'맞다, 홍콩은 광동어지!'


일반적으로 중국어도 다 통하는데 굳이 광동어까지 써보겠다고 동영상으로 회화 공부까지 했더랬다.


그래봤자 실제 써먹은 건 '레이호우'(안녕하세요),

'또제'(감사합니다)정도였지만..


숙소는 홍콩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침사추이 근처 부티크 호텔로 정했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여 호텔 리무진 버스를 타고 호텔로 편하게 이동했다.

호텔의 규모는 비록 작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인테리어로 여자 둘이 머물기에 만족스러웠다.


홍콩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맛본 먹거리는 '비첸향' 육포와 '허유산' 망고주스였다.

그 중 '비첸향'은 이제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어 손쉽게 먹을 수 있지만 그때만해도 홍콩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첫째날은 쇼핑몰 '하버시티'에서 아이쇼핑을 하고 홍콩의 야경을 보기 위해 '스타의 거리'로 향했다.

TV로만 보던 홍콩 스타들의 핸드프린팅과 조형물들을 직접 보니 신기했다. 사진을 찍고 시계탑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딤섬을 먹었다. 육즙이 톡톡 터지는 맛이 환상적인 '샤오롱바오'를 포함한 만두 몇 종류를 주문했다.


주문은 중국어로 했는데 말이 어설펐는지 종업원이 한번에 못 알아듣는 표정을 지어 여동생 앞에서 좀 난감했다.

결국엔 메뉴판의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음..쩌거(这个, 중국어로 '이거'라는 뜻)..쩌거"


하는 식으로 주문하여 간신히 원하는 걸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와 빅토리아 만을 사이에 두고 홍콩 섬을 바라보며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를 거닐었다.

야경을 보러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였다. 다양한 외국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여기가 동양인지 서양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시작되는 저녁 8시가 다가오자 어느새 스타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레이저쇼가 시작되고 바다 건너 홍콩섬 건물들이 화려한 빛을 발산하며 연주하는 듯 환상적인 야경을 선보여줬다.

환상적이었던 홍콩의 야경                                                   (사진 출처 - 채여린 님 포토갤러리)


'아, 이래서 홍콩하면 야경 야경 하는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둘째날은 침사추이에서 10분 남짓 스타페리를 타고 센트럴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긴 800m의, 영화 <중경삼림>(1994)에도 나왔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에 내렸다.

영화 <중경삼림>속 여주인공 왕정문

끊임없이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으니 그녀와 차마 똑같은 포즈를 취하진 못했지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쭉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타이청 베이커리'를 찾아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근데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한거지?'


여동생과 나는 서로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분명 맛은 있었으나 이걸 먹으려고 기를 쓰고 찾아 헤맸던게 조금은 허무했다.

 

발걸음은 서둘러 '빅토리아 피크'를 향했다. 홍콩 명물인 피크 트램을 타려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경사로를 타고  타이핑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서 홍콩 시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셋째날은 아침 일찍 마카오에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약 한 시간 후 마카오에 도착, 사람들이 알려준 대로 호텔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세나도 광장'에 내렸다.


마카오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건축물과 광장이 30개에 이른다더니 세나도 광장부터 '성바울 성당의 유적', '몬테 요새', '성 도미니크 성당' 등의 건축물이 색다르게 보였다. '아시아의 작은 유럽'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곳곳에 유럽의 정취가 느껴졌다.


마카오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촬영지로 유명했던 '베네시안 호텔'이었다. 다시 호텔 셔틀 버스를 타고 베네시안 호텔을 향했다.

 '동양의 라스베가스'답게 카지노 호텔들이 즐비한 모습에 여동생과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베네시안 호텔에 들어서자 여기가 실내인지 바깥인지, 지상인지 천국인지, 가짜 하늘인지 진짜 하늘인지 구분이 안 가는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나와 여동생은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이곳저곳 그림같은 실내를 배경 삼아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하던 곤돌라에 탑승했다. 뱃사공 아저씨가 흐뭇하고 여유있는 표정으로 불러주는 세레나데에 그만 뿅 넋이 나가 버렸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못 가봐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THE VENETIAN (2011. 9. 3) 여동생과 나

호텔 안 카지노 구경도 살짝 하고 몹시 아쉬워하며 다시 홍콩으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저녁이 되니 건물들이 번쩍번쩍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늦은 저녁,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여동생과 '란콰이펑'에 가서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 여기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동양인들보다 서양인들이 더 많아보이는 이 곳은 술집마다 시끌벅적 흥겨운 분위기다.


'아, 이 얼마만에 느껴보는 젊음의 밤 풍경인가!'


여동생과 나는 내키는 술집에 고민없이 성큼성큼 들어갔다.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여 동생과 대화가 안 됐지만 흥청흥청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 옆 테이블에서 일행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던 도날드 덕 모자를 쓴 외국인 남자가 개구지게 웃으며 다가왔다. 자신이 마시던 병맥주를 들고 뭐라뭐라 하는데 여동생과 나는 당황해 그저 웃음으로 떼우며 같이 병맥주를 한모금 들이켰다.

'란콰이펑'에서..

그 외국인은 넙죽 빈 의자에 앉더니 '재패니즈?' 한다.

당연히 나는 '노, 코리안'이라 대답하고는 또 웃었다.

그리고 몇 마디 나눴는데 정말이지 몇 십 년을 영어 헛 배웠나싶게 영어 회화가 안 되는 거다.

떠오르는 건 '웨어 알 유 프롬? 하우 올드 알 유?'  정도라니..


몇 마디 알아듣는 질문에 그저 대답만 '예스' or '노'라고 할 뿐이었다. 그는 시시해졌는지 사진 한 장 찍자 하고는 사진 한 장만 자랑스럽게 남겨주고 자리를 떴다..


다음 날은 덜컹덜컹 2층 버스를 타고 리펄스베이를 지나 '스탠리베이'에 내려 피자를 먹고 '스탠리마켓'에서 기념품 몆  개를 사서 호텔로 일찍 돌아왔다.


며칠 바지런히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저녁에는 여동생이랑  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호텔을 나와 돌아다니다 보면 마사지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기에 무작정 나와서 가까운 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서 빼빼 마른 남자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받아들고 좁은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그 남자는 다시 내려가버리고 카운터에서 뚱뚱하고 퉁명스러운 표정의 여자가 안내를 했다.

검은 가죽의자들이 대여섯개 나란히 놓여있고 여동생과 나는 거리낌없이 의자에 앉았다.

여동생과 맘놓고 발 마사지를 다 받고 계산을 하는데 여전히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말투로


 " 량바이"


라고 한다.

2백 달러를 내고 여동생이랑 나오면서 얘기했다.

윤후도 만족시켰던 홍콩 발마사지                                      (출처 - MBC '아빠 어디가' 지난 방송분)

"은근 시원하네, 가격도 얼마 안 하고.  근데 여주인 영 맘에 안들지 않냐? 내일은 다른 데서 한번 더 받아보자."


"좋아!"


한 번 받은 걸로 만족했어야 했다.

마지막 날 밤..

이번엔 호텔 건너편 다른 방향으로 길을 걷다 전단지 나눠주는 아줌마 손에 이끌려 지하 마사지샵으로 들어갔다.

지하에 내려가면서부터 뭔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안마의자처럼 생긴 자줏빛 가죽의자가  나란히 두 개가 놓여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어제 간 데가 좋았던 데구나..'


그냥 나갈까 싶었는데 어디선가 남자 둘이 툭 튀어나와 우리를 앉히고 각각 내 발과 여동생 발을 한명씩 붙잡고 발마사지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두 남자의 인상이 위협적이지 않아 조금은 안도하며 발을 맡기기로 했다.

내 발을 맡은 남자는 내가 중국어를 조금 하니까 연신 말을 걸었다.

남자 말이 워낙 빨라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 적당히 대꾸하고(주로 중국인들이 맞장구칠 때 많이 쓰는 '对对对뛔이뛔이뛔이' 혹은 没错메이춰), 몇 개 아는 광동어도 던져 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어젯밤 간 마사지샵 얘기까지 나오게 됐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어제 간 곳 좀 이상했다면서 그 여자 얘기를 했다.


"她太胖了 타 타이 팡러. 而且没有礼貌 얼치에 메이요 리마오. 真讨厌!쩐 타오옌!"

(그 여자 엄청 뚱뚱했어요. 게다가 불친절했구요. 정말 별였어요!)


이렇게 말해 버렸다.


누가 알았으랴.


내가 한참 떠들고 난 후, 그 남자는 씨익 웃더니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이기에 나는 그저


"真的吗?쩐더마? 对不起 뛔이부치.."

(정말요? 죄송해요..)


라고 말하고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빠르게


"$€£¥¤..好吗 하오마? "


라고 묻는다.


앞에 부분은 못 알아들었지만 마사지 받는 거 괜찮냐고 물어본 것 같아서


" 하오"


라고 대답한게 화근이었다.


갑자기 손에 미용칼같은 걸 쥐고 주문하지도 않은 각질 제거까지 하기 시작한다.

발 뒤꿈치 깎아버릴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거 큰일났다 싶어 여동생한테 한국말로 좀전에 주고 받았던 대화 내용을 전해주고는


"여기 무서워. 빨리 끝났음 좋겠다ㅜㅜ"


했다.


나는 용기내어 간신히 물어봤다.


"这个 쩌거 免费吗 미앤페이마?"

(이거 공짜예요?)


그 남자가 한번 더 씨익 웃으며 그렇다고 한다.


다시 정적만이 흐르침은 꼴딱꼴딱 넘어가고 시간은 더디게 느껴지는 가운데 다 끝났다며 일어나란다.


속으로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계산을 후다닥하고 나가려는데 헉,

계산할 때 바가지를 씌다.

여동생 거랑 합쳐서 칠백을 내놓으라는 거다.


"七百 치바이? 不会吧 부훼이바。。"

(칠백 달러요? 그럴리가..)


세 명이 서늘한 눈빛으로 여동생과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속으로는 始發 始發 욕이 나오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달라는 대로 돈을 내고 후다닥 올라왔다.


여동생이랑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하려고 남겨두었던 돈이었는데 탈탈 다 털리고 말았다.


그런데, 맙소사! 핸드폰을 안마의자 손잡이에 놓고 온 것이었다.


"어뜩해, 어뜩해."


무서워서 도저히 내려갈 수가 없을 것 같아 지하 계단을 내려다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그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올라왔다.


건네주는 핸드폰을 재빠르게 낚아채


"谢谢 쎼쎼。 谢谢 쎼쎼。"  


연신 굽신거리듯 인사하고는 여동생과 호텔로 부리나케 달려 들어왔다.


호텔 방문을 닫고 나서도 심장이 쿵쾅쿵쾅 진정이 되질 않았다.


어제 간 마사지샵이랑 서로 연계된  조직이었나? 내가 욕한 그 여자가 여동생이었나?

홍콩  지하조직 삼합회가 아니었을까?

만약 돈이 없었더라면, 만약 내가 못 준다고 따지고 들었다면 여동생과 나는 어떻게 됐을까?

사지가 절단되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후덜덜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여자 둘이서 너무 무방비 상태로 다녔던 거 같다. 어설픈 외국어로 아는 척 하다 최고의 여행이 최악의 여행이 될 뻔했던 위험천만그 때의 여행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몇몇 사진은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네이버에서 모셔왔습니다.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대부분이 소실되는 바람에..ㅜ) 사진이 문제될 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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