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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Jan 17. 2017

신화로의 초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ㅡ 지식과 지혜,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寶庫)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나의 무지와 상상력을 깨우쳐주는 책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윤일권ᆞ김원익 지음)


발행일  2015년 3월 10일                                        (2004년도 출간된 책의 개정 증보판)

다른 책들은 다 제쳐두고 조금씩 읽기 시작해 일주일동안 10장까지 읽었다. (이 책은 총 14장 715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토막토막 흩어져있던 지식들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쾌감을 느낀다.


11장부터 시작되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 이야기,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이아스

의 모험 이야기도 빨리 읽어보고 싶지만 10장까지 등장하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올림포스 신족 구성원들을 먼저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상태로 계속 읽어내려 간다면 내머리는 과부하로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기에)


명로진 작가님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다음으로 이 책을 추천해주신 건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하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선 《시학》에서 접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와 반갑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의 본질이라든가 비극의 전형으로 극찬한 <오이디푸스>, 탄탈로스 가문의 가족 간 처절한 복수극, <타우리케의 이피게니아> 등 )


이 책을 어찌 단 몇 장으로 압축하여 요약할 수 있을까.

그리스 신화 속 헷갈리는 수많은 이름들은  도식화하지 않으면 누가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인지, 누구의 남편이고 아내인지, 뉘집 자식들인지, 심지어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도통 분간해내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친근한 이름들부터 접근해보자.


화장품 '헤라' (알다시피 제우스의 아내), 초콜릿 '아트라스'(프로메테우스 형인 '아틀라스'의 우리식 표현), 과자 '씨리얼'(곡식의 여신 데메테르, 로마에서는 케레스Ceres라고 부름), 건강 음료 '박카스'(술의 신 디오니소스, 로마에서는 바쿠스로 부름), 청바지 '닉스'(그리스 로마 신화의 밤의 여신), 음료수 '암바사'(그리스 로마 신들의 음식 암브로시아),캔으로 된 음료 '넥타'(그리스 로마 신들의 음료수 넥타르) 등 우리의 실생활 속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이름들이 많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2>에서 바이러스 이름인 '키마이라'백신 이름 '벨레로폰'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각각 괴물과 영웅의 이름이다.

영화 <해리포터>에 신비한 마법사의 돌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플러피'라는 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케르베로스라는 개를 닮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어마어마하다.

셰익스피어, 라신, 괴테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는 힘들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최고의 미녀 헬레네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처럼 신화 속 특정 인물을 다룬 작품도 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피그말리온 효과', '나르시시즘'이라는 심리학 개념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적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또한 유명한 서양 미술가들과 음악가들의 많은 작품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텔레스 등의 철학자도 자신의 생각을 종종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사건들에 빗대어 설명한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그리스 로마 건축의 대부분도 신화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신화에 담긴 내용은 성서와 더불어 서양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특징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무엇보다 '휴머니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본성과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되짚어볼 수 있다.


죽음을 초월해 있다는 사실 외에는 우리 인간들과 다름없이 사랑하고,질투하고, 갈등하고, 욕망을 좇는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신과 인간이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그 결실로 영웅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어떤 인물들에는 애정이 가고 공감이 가고 이해되는 한편, 어떤 인물들에는 분노가 치밀

욕을 퍼부어주고 싶다.


'인본주의' 다음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특징은 내세가 아닌 현세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세주의'라는 점이다.


그리스인은 인간의 삶이 비록 유한하고 불완전할지라도 이를 소중히 받아들이고 사랑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이 아닌가. 길고 짧아본들 '오십 보 백 보'인 셈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고 했던 그리스의 명의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그리스인은 짧고 유한한 인생이지만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남긴 작품(예술)을 통해서 영원한 삶을 꿈꾼 게 아닐까. 히포크라테스는 수 천 년 전에 태어나 유한한 생을 살다 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이 자리에 살아 숨쉬고 있다. (p. 25)


짧고 유한한 인생이지만 나역시 그런 의미에서 삶에 더욱 애착을 갖고 최선을 다해 글을 쓴다.

내게 남은 세월이 얼마일지 몰라도 저자의 말처럼,


'금쪽같은 시간을 나누고 쪼개서 생을 멋지게 마무리하려는 애틋한 마음'


을 그려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승 과정


신화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구전되거나 기록되어 전승된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신화에 '로마'가 끼어들어간 이유는 그리스 신화가 로마라는 징검다리를 거쳐 근대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신과 영웅들의 명칭이 로마식으로 바뀌기도 하고 로마 신화의 일부가 섞여들어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8세기경 구전으로 떠돌던 그리스 신화는 호메로스에 의해 문자로 기록된다. 영웅 서사시 <일리아스><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리스 비극의 전성기(기원전 5세기경)에는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 등을 통해 신화의 문학적 지평이 넓혀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신 중심의 헤브라이즘) 천 년 동안 '암흑' 속에 파묻히기도 했지만 '재생'의 의미를 지닌 르네상스 운동(14세기 경)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헬레니즘의 명성을 되찾는다.


이후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기독교 사상과 함께 근ᆞ현대 서양의 정신세계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 역을 맡으며 서양 문화 형성에 밑거름이 된다.

(p. 31)


우주의 기원(헤시오도스의 《신통기》)


태초의 신들 (p. 36)


그리스 신화의 첫머리에 소개되는 태초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주와 세상의 창조가 아니라 기원이나 생성에 관한 설명이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한 주체이지만 그리스 신화에는 명백한 창조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에 생겨난 카오스와 가이아 그리고 에로스, 그리고 그들로부터 태어난 그리스 신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세상이 창조자와 피조물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기독교의 세계관과는 달리 그리스 신화의 우주와 신과 인간은 같은 피조물로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공유한다.

신성을 보유한 모든 신적 존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다투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이는 우주와 세상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을 꿈꾸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태동을 말한다.


신들의 전쟁


하늘 신인 '우라노스'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우라노스는 자식들(위의 도식 참조)의 괴물같은 몰골을 끔찍하다고 여기고 가이아의 자궁 속 타르타로스에 가둬버린다.

티탄의 막내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의 고통을 덜기 위해 극악무도한 아비 우라노스의 성기를 낫으로 싹둑 잘라버린다. (하늘 신의 자리에서 물러난 우라노스는 지금의 천왕성이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루벤스 작품)

잘린 성기에서 떨어진 피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스며들어 복수의 여신들 '에리니에스', 거인족 '기간테스',  요정들 '멜리아데스'가 태어난다. 그리고 바다에 떨어진 성기는 바다 거품과 어우러지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를 생산한다.


우라노스를 거세한 '크로노스'는 신들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지만 갇혀있는 형제들을 해방시켜

주기로 한 가이아와의 약속을 어긴다. 자식에게 죽임을 당한 우라노스에 이어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낀 가이아도 저주를 퍼붓는다.


"아비를 내친 자식 또한 그 아비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


크로노스는 아내 '레아'가 잉태한 다섯 자식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을 통째로 집어 삼키는 극악무도한 방식으로 저주를 피하려 한다.


크레타 섬의 릭토스로 피신한 레아는 가이아의 도움을 받아 여섯 번째 아이 '제우스'를 낳게 된다.


제우스는 성장하여 가이아와 손잡고 아비 크로노스 몸 안에 있던 형제들을 토해내게 하고 타르타로스

(지하세계)에 갇혀 있던 키클로페스 3형제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해방시킨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제우스는 티탄 신족과 싸워 승리하고 우주와 세상의 패권을 차지한다.

(이렇듯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세대 간의 투쟁 이야기에는 가부장제하의 부자 갈등이 투영되어 있다.)


신들의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제우스는 형제들과 함께 올림포스 신족 시대를 연다.

 '불한당'이라는 어원처럼 거칠고 우악스러운 티탄들과 비교하면 올림포스 세대는 한결 정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올림포스 세대는 티탄 세대와는 달리 덩치와 힘이 아닌 머리와 지략으로 다스린다. 이들은 자연의 야성보다는 '인간의 이성'을 닮은 신들이다.

(티탄에서 올림포스의 세대교체는 자연신에서 인격신으로의 진보를 반영하는 것이다.)


올림포스 신족
올림포스 신족(p. 54)


올림포스 신족은 지하 세계를 통치하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역할이 미약했던 헤스티아를 제외한 12명의 신을 말한다.


1. 올림포스의 1인자 제우스

(그리스 신화 'Zeus', 로마 신화 'Jupiter')


 '빛나는'이라는 뜻의 어원을 지닌 제우스는, 말그대로 빛나는 창공의 빛을 상징하는 '하늘의 신'이다.

('구원자', '자유의 수호자', '관습과 국가의 보증인'등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그의 로마식 이름 '주피터'는 태양계 최대의 행성인 목성의 명칭이기도 하다)


하늘의 신 제우스의 상징은 번개와 독수리다. 제우스는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신과 인간을 번개로 처단하며, 제우스의 독수리는 인간 세상에서도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차용하고 있다.


제우스는 12명의 신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우월한 1인자일 뿐,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인간 사회의 여느 지도자처럼 제우스도 경쟁자들의 도전을 극복해야 하는 운명의 소유자다. 따라서 경쟁자들의 도전에 맞서 권좌를 지키려면 뛰어난 리더쉽이 필요하다.

(그리스 신들의 세계는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찬탈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는 결단력, 정보력, 조직 관리 능력, 냉철한 정치 감각 등 집단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제우스가 발휘하는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이지 민주적인 리더십은 아니다. 자신만을 떠받드는 심복들에 둘러싸여 우둔한 백성들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던 제왕의 리더십은 자의식에 눈뜬 현명한 국민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제우스'에게는 섬기는 마음, 포용력, 소통하는 자세 등과 같은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지 않을까.(p. 62)


제우스는 정실부인 헤라 이외에 여러 여신들 및 여인들과 관계하여 수많은 신과 인간을 자식으로 거느린다.

그는 '대표적 난봉꾼이요 바람둥이 신'이다.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 관계를 맺어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탄생하고, 이치의 여신 '테미스'와 관계하여 계절의 여신 '호라이' 세 자매를 낳고, 기억의 여신 '므시모시네'와 결합하여 음악과 예술의 여신들인 아홉 명의 '무사이'를 낳는다. 

티탄 신 오케아노스의 딸 '에우리노메'와의 사이에서 우미(優美)의 여신들인 '카리테스' 세 자매를 낳고, 자신의 누이 '데메테르'를 겁탈하여 딸 '페르세포네'를 낳았으며, 티탄 신족인 '레토'와 관계하여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쌍둥이를, '마이아'에게서 '헤르메스'를, 인간 '세멜레'에게서는 '디오니소스'를 낳는다.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정령 '디오네' 와의 소생이라는 설도 있다)


'헤라'와의 사이에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낳는다.

(청춘의 여신 '헤베'와 산파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를 낳기도 한다)


한 술 더 떠 제우스는 자신의 변신 능력을 이용해 여인들에게 접근한다.


소아시아의 공주 '에우로페'가 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멋진 황소로 변신하여 접근, 크레타의 시조 '미노스' 왕을 낳고, 은근히 거칠고 더러운 것을 꿈꾸는 테베의 공주 '안티오페'에게는 흉측한 몰골을 한 '사티로스'로 변신하여 테베의 영웅 '암피온'과 '제토스' 쌍둥이를 낳는다.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다나에'에게는 황금 비로 변신하여 접근, 그녀에게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태어난다.


그는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백조의 모습으로 유혹하여 두개의 알을 낳게 한다. 이 알에서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 그리고 쌍둥이 형제 '디오스쿠로이'가 태어난다. 정절의식이 투철한 테베의 왕 암피트리온의 처 '알크메네'는 그녀의 남편으로 변신하여 '헤라클레스'를 낳게 한다.


뿐만 아니라 트로이의 왕자 미소년 '가니메데스'를 독수리로 변신하여 납치하여 술 시중꾼으로 삼기도 한다.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달리 나왔겠는가.

제우스의 화려한 바람기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후대 서양 문화의 풍부한 예술적 자산으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한 부도덕성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기독교에 철저히 배척당하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p. 67)


2. 신들의 여왕 헤라

(그리스 신화 'Hera', 로마 신화 'Juno')


'영웅'을 뜻하는 그리스어 'Heros'의 여성형으로 '여주인, 혹은 여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원이 말해 주듯 헤라는 위대한 여신, 대지모신

이었다. 대지모신은 가부장제가 도래되기 이전의 원시 모계 사회를 대표하는 여신이다. (생명의 원천인 은 항상 생명의 모체인 여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우주의 기원에서도 태초의 우주 카오스로부터 가장 먼저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생겨났다. 하지만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등으로 이어지는 남신들의 공격과 배신으로 모권 신화는 부권 신화로 전환되며 여신들의 위상은 점차 약화된다.

인간과 세상 위에 당당히 군림하던 대지의 여신들이 남신들의 아내로, 정부로, 딸로 역할이 축소되고 제한된다. 그 중 '헤라의 추락'이 가장 두드러진다.


제우스와의 운명적 결합(헤라가 산에 홀로 있는 것을 발견한 제우스는 비를 내리게 한 후 뻐꾸기로 변신하고 헤라가 뻐꾸기를 가슴에 품자 본색을 드러내고 헤라를 덮친다)이 이루어진 곳이 옥좌 산에서 뻐꾸기 산으로 바뀌었듯이 헤라는 여왕의 근엄한 옥좌에서 물러나 비에 젖은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다.


신혼의 달콤함이 사라지면서 제우스의 화려한 바람기가 시작되고 제우스의 애정 행각과 더불어 여신의 여왕으로서의 위엄도 사라지며 헤라는 질투의 화신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헤라는 바람난 제우스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자신의 가정이 해체될 수 있으므로)제우스의 연인이나 그 자식을 공격한다. 이는 헤라가 결혼과 가정의 수호신으로 평가받는 배경이기도 하다.


세멜레는 헤라의 간계로 인해 불에 타 재로 변하고, 그녀의 자식 디오니소스도 헤라의 저주로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

헤라의 박해를 가장 혹독하게 받은 자식은 헤라클레스다.

요람 속에 뱀을 집어넣어 죽이려 했을 뿐 아니라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어 처자식을 죽이게 한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 신의 지위를 획득하고 헤라의 딸인 헤베와 결혼하여 사위 자리까지 꿰찬다.


헤라의 총공격을 견뎌내고 승리한 헤라클레스는 부권 신화를 확고히 정립한 순교자로 평가된다.

헤라는 결국 패배했다. 여왕의 패배는 원시 모계 사회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3.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리스 신화 'Poseidon', 로마 신화 'Neptunus')


포세이돈의 어원은 '땅의 주인 혹은 땅의 남편'으로 풀이된다. 이는 바다의 신으로 알려진 포세이돈이 원래는 땅과 더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말해준다.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동물 중의 하나는 말이다.

(암말로 변신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포세이돈이 수말로 변신하여 덮쳤다고 한다.  명마 아리온과 천마 페가소스는 포세이돈의 자식이다)


그러나 제우스의 올림포스 시대에 이르러 포세이돈은 땅의 지배자가 아니라 바다의 신으로 거듭난다.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밀려나 힘이 약화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거칠고 위협적인 존재이다.

포세이돈이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와 결혼하여 낳은 프로테우스(변신술에 뛰어나다)와 트리톤(해변의 약탈자)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표면과, 바다의 약탈자 해적이나 해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포세이돈은 폭풍에 요동치는 성난 파도 같은 격정적인 감정파다. 술수도 모르고 전략도 없다. 충동적이며 즉흥적이다. 성급하고 직선적이며 변덕스럽다.


제우스가 현실주의자라면, 포세이돈은 낭만주의자다.

제우스는 득실 관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득이 되면 하고 실이 되면 안한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한다.


포세이돈의 행태에 나타나는 세련되지 못한, 거칠고 투박한 면모는 폭풍, 지진, 화산폭발 등 대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것은 괴물이다.


포세이돈은 괴물과 인연이 깊다. 오만한 이디오피아의 여왕 카시오페이아를 혼내주기 위해 바다 괴물을 출몰시켰으며, 아버지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히폴리토스를 바다 괴물이 덮치게 만든다. 아름다운 처녀였던 메두사는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눈 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뱀으로 된 흉칙한 괴물이 된다.

메두사의 머리(루벤스 작품)


포세이돈이 낳은 자식들도 대부분 정상을 벗어난 괴물이다.

지나가는 행인을 침대에 눕히고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잘라내고, 짧으면 잡아늘리는 괴물 프로크루스테스, 헤라클레스에게 씨름을 도전한 거인 안타이오스 등의 괴물이 모두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이 괴물들은 대부분 제우스의 자식들인 올림포스 신이나 영웅들에게 퇴치된다. 결국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완패한다.

포세이돈의 패배는 괴물 같은 자연에 대한 인간 승리로 해석된다. 하지만 '폭풍노도의 바다'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인간은 어쩌면 속물화와 왜소화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p. 83)


4. 땅의 어머니 데메테르

(그리스 신화 'Demeter', 로마 신화 'Ceres' )


데메테르는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토지의 여신이며 곡물의 어머니다.

제우스와의 인연으로 얻은 외동딸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됨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우스의 절묘한 타협안으로 그녀는 일 년 중 삼분의 이는 지상의 데메테르 곁에 머물고(곡물이 싹트고, 성장하고, 수확하는 순간들) 나머지 삼분의 일은 하데스의 아내로 지하세계에 머무르게(수확이 끝난 곡물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된다.  이는 생명의 탄생, 성장,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순환의 이치를 깨우친다.


데메테르는 지독한 모성의 소유자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식에게 지나치게 얽매이는 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헤라가 남편에게 지나치게 종속된 아내의 전형이라면, 데메테르는 자식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어머니의 표본이다. 두 여신의 삶에는 가부장제 하의 비독립적 여성의 그늘이 짙게 깔려있다.


데메테르는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엄벌하는 역할도 맡는다. 여신은 '자연 파수꾼'이요 '환경 지킴이'다.

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인간 '에리시크톤'이 데메테르에게 봉헌된 숲의 나무를 도끼로 내려치고 이를 만류하던 자의 목도 쳐버린다.


데메테르는 에리시크톤에게 아무리 먹어도 배고픔이 그치지않는 아귀병의 형벌을 내린다.

에리시크톤은 끝없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팔아치우고 하나뿐인 딸까지 팔아먹는다. 그는 결국 팔다리를 잘라먹고 몸통까지 뜯어먹는다. 결국 먹는 입만 남을 때까지 자신을 뜯어먹도록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에리시크톤의 비극은 끝없는 소유욕과 개발욕에 사로잡혀 자연과 환경을 마구 훼손하는 현대인들

에게 경종을 울린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안락하게', '조금 더 편리하게'라고 외치는 인간의 욕망은 에리시크톤의 아귀병을 능가한다.

우리는 지금 자연이라는 팔다리를 잘라먹고, 환경이라는 몸통을 뜯어먹고 있다. (p. 90)



여기까지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프롤로그~3장 올림포스 신족 - 제우스의 형제들' 정리 내용입니다.

열심히 '읽고'
또 '읽다'


다음은

'4장 올림포스 신족 - 올림포스의 라이벌'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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