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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Jan 21. 2017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 문화》 두번째 정리 노트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문화》  윤일권ᆞ김원익 지음


이번 글은 지난 번에 제3장(4명의 올림포스 신족 -  제우스와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까지 정리한 내용에 이어 제4장(올림포스의 라이벌 - 아폴론, 디오니소스, 아테나, 아프로디테)입니다.





5. 태양의 신 '아폴론'

(그리스 신화 'Apollon', 로마 신화 'Apollo')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폴론은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쌍둥이 남매다.

그들을 임신중이었던 레토는 헤라의 질투와 방해로 델로스('떠오르는 섬') 에서 간신히 해산하고, 그 섬이 아폴론 신앙의 발원지 역할을 하게 된다.


에게해 델로스섬 유적지 전경


태양의 밝은 빛을 상징하는 아폴론의 이미지는 그리스인 최고 덕목이기도 한 '이성(理性)'으로 통한다. (합리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가장 그리스적인 신으로 평가)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중용 절제 균형 감각을 중요시한다.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이 태양마차를 몰다 태양의 궤도를 벗어남으로 인해  파멸에 이른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인들은 아폴론의 성지인 델포이를 우주와 세상의 중심으로 믿었다. 이 곳엔 '우주의 배꼽'을 뜻하는 옴팔로스 라는 돌이 보존되어 있다.(크로노스가 자신의 자식으로 착각하고 삼켰다가 토해낸 돌이라는 설도 있다)


*옴팔로스 증후군 - 자신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는, 자기 중심적 세계관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아폴론은 델피의 무녀인 '피티아'라는 여사제를 통해 제우스의 뜻인 신탁을 인간들에게 내려준다.

(대통령의 비선실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트리푸스 위에서 예언하는 피티아(존 콜리어, 1891)


설득력이 결여된 예언 능력은 불행을 초래한다.

(신탁과 예언의 신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는 설득력을 상실한 예언력으로 인해 적장 아가멤논과 함께 처참하게 살해된다.)


아폴론은 디오니소스의 광적과 대비되는,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음악의 신이다.(아폴론과 예술의 여신 칼리오페 사이에서 음악의 달인 오르페우스가 태어난다)


또한 그는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했던 플레기아스 왕의 딸 코로니스가 인간과 정을 통하자 격분한 아폴론은 코로니스를 활로 쏴 죽이고 죽어가는 그녀의 몸에서 꺼낸 아이가 의술의 사 아스클레피오스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지니고 있는 뱀이 감긴 지팡이는 오늘날에도 의약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 아폴론은 자신에게 불행한 소식을 전해 준 흰 까마귀의 색깔을 까맣게 바꿔버린다. 원래 하얀색이었던 까마귀가 이때부터 까맣게 되었다고..


아폴론은 평정과 냉정이 필수적인  명수다.

목표물에 활을 한 치의 오차없이 적중시킨다.

사물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탁월한 대신 애정어린 마음으로 살피는 따스함은 부족하다.


아폴론과 다프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8)

둘의 추격전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아폴론의 시비에 자존심이 상한 에로스가 아폴론의 가슴에는 황금화살을, 다프네의 가슴에는 납 화살을 날린다. 그러자 아폴론은 사랑의 열병에 빠지고, 다프네는 증오의 덫에 걸려 아폴론의 추격과 다프네의 도망이 시작된다.

아폴론에게 잡히기 직전 다프네는 하늘에 소원을 빌어 자신의 몸을 나무로 변신시킨다.


*  다프네가 변신한 나무가 월계수이며, 그리스인들은 아폴론을 기리는 의미로 경기의 승리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준다.


궁술의 신으로 목표를 어김없이 꿰뚫지만 사랑의 화살은 번번이 빗나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 멀리서 숲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정겨운 눈빛과 따스한 손길에서 따스한 참사랑이 싹트는 게 아닐까. (p. 103)


올림포스 신족은 부권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폴론이 모권의 상징인 거대한 뱀 피톤(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수족)을 살해한 사건과 모친(클리타임네스)을 살해한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옹호한 사건은 그가 부권 신화의 수호신임을 보여준다.


"아이를 생산하는 건 아비다. 어미란, 손님을 맞는 접대인으로서 새싹을 보호할 따름이니라"


오레스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아폴론의 이 말에서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가 엿보인다.



6. 술의 신 '디오니소스'
(로마 신화 '바쿠스Bacchus')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인간(테베의 공주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올림포스 신이다.

제우스와 세멜레의 사이를 질투한 헤라가 노파로 변신하여 제우스가 천상의 갑옷을 입은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거짓 사랑이라고 약을 올린다.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앙탈을 부리여 부탁하고 제우스가 입은 갑옷에서 뿜어나오는 광채에 그만 불에 타 재로 변한다.  제우스는 죽은 세멜레의 배에서 태아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꿰맨다. 이후 태어난 아이가 바로 디오니소스다. (그의 이름은 '두번(Dio) 태어난 자(nysos)'를 의미한다)

디오니소스는 인간에게 술을 선물한 신이며 또한 술의 기능을 상징하는 신이다.
초창기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은 당시 사회적 약자로서 노예나 다를 바 없던 여성들이었다. 디오니소스 여신도들은 마이나데스라고 불리었는데 '미친 여자들'이라는 뜻이다.
('광기'를 뜻하는 영어 'madness' 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별명 브로미오스는 '미쳐 날뛰는 자'라는 뜻이다)

광란의 디오니소스 축제 때 신도들은 가면을 썼다. 가면 뒤 숨은 인간에게는 모든 금기가 사라진다.
축제는 난잡한 집단 성행위로 끝맺는다.
(디오니소스의 추종자 가운데 '사티로스'라는 무리는, 머리와 몸은 젊은 남자요 머리에 달린 뿔과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한 괴물로 음란한 호색한이다)


<님프들과 사티로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1873)


마이나데스는 축제의 막바지에 이르러 황홀경(엑스터시)에 빠져서 산 짐승의 피와 살을 미친듯이 먹어치운다. 그리고는 무아경의 절정에서 춤을 추다 탈진한다.


이들이 맛보려는 것은 죽음이요 탈한계다.

죽음은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개체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자연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건은 무한창조와 영원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술이 시인과 예술가의 영원한 벗인지도 모른다.(p. 111)


* 술의 전승 과정에서 디오니소스는 이카리오스에게 포도주 제조법을 가르쳐주지만 처음으로 술을 마신 이카리오스의 친구들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 독을 탄 것으로 오해하고 그를 찢어 죽여버린다.


* '펜테우스'(테베의 통치자)나 '리쿠르고스'(트라키아의 왕)처럼 디오니소스와 신도들을 박해하다 갈가리 찢겨 죽는 인물들도 있다.


 디오니소스 축제는 한겨울 어두운 밤에 거행된다. 아폴론의 이성이 약화되는 틈을 타 디오니소스의 광기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아폴론의 이성은 항상 절제된 세계를 지향한다.

반면 디오니소의 광기는 해체 의지요 자유 의지다.


인간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간의 긴장과 대립 속에 던져진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성이 강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동안 저 밑바닥에서는 광기가 꿈틀거리고, 광기가 뜨겁게 폭발하는 순간 어느덧 이성이 다가와 차가운 물을 퍼붓는다.

겨울 한 철, 아폴론이 북쪽 끝 히페르보레이오스 지방으로 떠나있는 동안에는 디오니소스가 신탁소를 대신 주관한다. 이성과 광기 간의 절묘한 조화와 결탁이 아닐 수 없다.(p. 113)


디오니소스는 비극을 탄생시킨 신이다.

비극은 디오니소스 축제, 즉 '디오니시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 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dia',  '양의 노래'라는 뜻이다.)


* 디티람보스 -  고대 그리스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고 노래한 합창


조형의 예술로 대표되는 아폴론제 예술과,

음악으로 대표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대립과 투쟁, 균형과 조화 속에서

예술의 정수인 그리스 비극이 탄생했다.

-  니체, 《비극의 탄생》에서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유럽 시민사회의 편협함과 고루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생의 철학자 니체에게 산소같은 바람을 불어준 것은 '아폴론적인 것'에 대비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었다. (p. 117)


7.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그리스 신화 'Athena', 혹은 'Athene', 로마 신화 'Minerva')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 관계한 제우스는 그녀가 낳을 자식에게 자신의 왕권을 빼앗길까 두려워 임신한 메티스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제우스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느끼고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그의 정수리를 가르자 갑옷으로 무장을 한 아테나가 태어났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서양의 근대 철학가들의 이상형으로 평가되어 왔다.

('철학 philosophy'이란 '지혜 sophia'를 '사랑한다 philos'는 뜻이다)


아테나의 상징 올빼미는 부리부리한 두 눈으로 어둠을 밝힌다. 인간의 지혜가 무지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듯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서야 날갯짓을 시작한다."

ㅡ 독일의 철학자 헤겔


지혜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찾아든다는 뜻이다.

경험과 사색과 반성이 겹겹이 퇴적된 후에야 비로소 인생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혜안을 갖게 되리라.

여신의 로마식 이름 '미네르바'는 오늘날에도 지혜로움과 총명함을 일컫는 의미로 쓰인다.

(p. 121)


아테나는 공예의 여신이기도 하다. 기술은 지혜로부터 나온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공예 기술을 뜻하는 '에르가네'로 불린다)


아테나는 지혜를 사랑하고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킨 아테네인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샘을 솟게 한 포세이돈 보다 올리브나무를 심은 아테나 의 선물을 더 유용하다고 여겼기에)


* 아라크네의 우화


길쌈과 자수에 능한 아라크네라는 처녀가 아테나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신과 인간과의 자수 대결에서 아라크네의 오만함에 분노한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버린다. ('Arachne'는 그리스어로 '거미'라는 뜻이다)


아테나는 인간에게 필요한 여러 제도를 만들어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재판 제도이다.


* 아레이오스 파고스 -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겁탈하려던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인 일로 아테나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아레스의 언덕)에서 최초의 재판을 주관한다. 이 재판에서 아레스는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으며 그리스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대법원을 아레이오스 파고스라 부른다.

모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도 여기서 재판 받았다.


전쟁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의 주무기는 방어적인 방패(공격자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메두사의 머리가 박힌)이다.


그녀에게는 '도시의 수호자'를 뜻하는 '폴리아스' 외에 '팔라스'라는 별명이 있다. 이 별명은 어린 시절 자신이 실수로 죽인  친구의 이름을 딴 것이다.


*  팔라디온 - 아테나는 죽은 팔라스의 모습을 조각해 제우스의 방패 아이기스 에 매달고 언젠가 제우스가 이 조각상을 땅으로 던진다. 이 조각상이 바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도시를 지켜준다는 팔라디온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이 조각상이 트로이성을 오랫동안 지켰으나 트로이는 오디세우스에게 팔라디온을 도난당한 후 패망한다.


여신의 또다른 별명 '오브리모파트레'는 '강력한 아버지의 딸'을 뜻한다.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의 손을 들어줬던 사례로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의 무죄 선고를 들 수 있다)


아테나는 처녀신이다. 여신이 처녀의 신분을 고수하려는 이유는 철저한 독립심 때문이다.


* 파르테논  - 그리스 문명 최고의 걸작 파르테논 신전은 '처녀의 집'이라는 뜻으로 처녀신 아테나 파르테노스에게 바쳐진 것이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당대 최고의 건축가 페이디아스가 건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파르테논 신전 (출처 - 위키피디아)


아테나의 정절의식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헤파이토스가 그녀에게 반해 그녀를 덮치지만 완강한 거부에 달아오른 헤파이소스는 그녀의 허벅지에 사정을 한다. 아테나가 그 정액을 양털로 닦아 땅에 버리자 흙에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아테네의 전설적인 시조 '에릭토니오스'다.


아테나는 남성의 권위를 적극 인정하나 남성에게 종속되기는 싫어한다. 여신은 부권을 인정하고 남성의 힘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여권을 위해 싸우기에는 재능과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신은 '남성적 여성'으로 평가된다. 아테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독신 전문 여성의 표본이다.  똑똑하고 차가운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p.128)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


8.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리스 신화 'Aphrodite', 로마 신화 'Venus')

아프로디테 여신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거품'을 뜻하는 'aphros' 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아프로디테는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 '4월'을 뜻하는 'April'은 라틴어 'Aprilis'에서 유래된 단어로 '아프로디테의 달'을 말한다. 영국의 시인 엘리엇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것은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달콤한 유혹과 시련의 아픔을 갈파한 것인지도 모른다.
'샛별'이라는 별명을 가진 가장 아름다운 행성, 금성에도 아프로디테의 로마식 이름인 'Venus'가 붙여져 있다.

아프로디테의 태생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헤시오도스(우라노스의 거세된 생식기가 바다거품과 어우러져 태어났다)와 호메로스(제우스와 바다의 정령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주장하는 두 가지 설의 공통점은 여신의 탄생 근원이 바다거품이라는 사실이다.
아름다움과 사랑이란 한 순간 화사하게 피어올랐다가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는 깨우침을 담고 있는 탄생 설화이리라.(p. 129)

아테나차갑고 이지적인 지성미를 드러낸다면, 아프로디테뇌쇄적이고 육감적인 관능미를 자랑한다.
미술사에는 수많은 '아프로디테'와 '비너스'가 등장한다.
시대를 달리하며 탄생한 다양한 '아프로디테

(비너스)'를 살펴보면 아름다움의 척도가 끊임없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밀로의 '비너스'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비너스 상', 신윤복의 '미인도)


우리의 전통적인 미인상은 이목구비가 작고 가슴도 작은 아담사이즈의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치관이 서구화되면서 아름다움의 기준도 서구화 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모두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날씬한 서구 미인을 꿈꾼다.

미의 기준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라면 남의 기준에 무작정 따라 맞추기보다는 각자의 개성미를 잘 가꾸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보다 현명한 길은 물거품처럼 스러져가는 외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갈수록 강한 빛을 뿜어내고 진한 맛을 우려내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이리라.(p. 131)


* 파리스의 심판

〈파리스의 심판〉 (라파엘 멩스, 1757)


신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사과를 두고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세 여신이 다투게 되는데 제우스는 이 심판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여신은 보답으로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도록 도와준다. 졸지에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이 그리스 연합군을 동원하여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이 파리스 심판

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평이 있다.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를 점령하려는 그리스의 정복욕에서 발발한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다. 그녀의 곁에는 사랑의 신 에로스가 늘 동행한다. 사랑의 여신으로서 그녀는 자유분방한 애정 행각을 벌인다. (여신은 가슴 주위에 케스토스 비마스라는 띠를 두르고 있다. 이것은 상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마법의 띠다.)


아프로디테의 애정 행각의 대표적인 상대는 전쟁의 신 아레스다.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침대에 보이지 않는 황금 그물을 쳐 둔 사실을 모르고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열렬히 사랑을 나눈다. 두 신은 벌거벗은 몸으로 그물에 갇혀 올림포스 신들에게 망신을 당한다.

<헤파이스토스에게 밀애 현장을 들킨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알렉상드르 샤를 길레모, 1827)


두 신의  불륜의 결과로 포보스(공포), 데이모스(걱정), 하르모니아(조화)가 태어난다. (에로스도 둘 사이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

언제 발각될까 늘 전전긍긍하며 나눈 사랑의 결과로 '공포'와 '걱정'이 태어난 것일까? 하르모니아의 탄생은 사랑과 증오의 조화를 꾀하려는 희망의 메시지로 풀이된다.(p. 134)


아프로디테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관계하여 남녀양성의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낳는다. 여신은 또한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서 생식력의 신 프리아포스를 낳는다.

  
아프로디테는 인간과도 서슴없이 사랑을 나눈다.
잘생긴 목동 아도니스('식물의 주인'을 뜻하는 이름)는 여인의 당부를 무시하고 위험한 사냥에 나섰다가 멧돼지에 받혀 즉사한다. 돌아온 아프로디테가 눈물을 흘리며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 신주 넥타를 뿌려주시 거품이 일며 한 송이의 핏빛 꽃이 피어난다. 이 꽃이 바람처럼 피었다가 바람처럼 시들어버리는 바람꽃 아네모네다.

아프로디테는 목동 앙키세스와도 사랑을 나눴는데 그는 여신과의 동침을 입밖에 내지 말라는 비밀을 지키지 않아 제우스 벼락을 맞고 불구의 몸이 된다. 두사람 사이에서 로마의 전설적인 건국 시조 아이네이아스가 태어난다.

*아프로디테와 제우스의 애정 행각 비교
두 신 모두 감정이 동하면 신이건 인간이건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하지만 제우스의 애정 행각에는 정치적 계산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언제나 사랑의 감정에만 충실할 뿐이다. 여신이야말로 '순수한 바람둥이''프로 사냥꾼'이다. (p. 137)

아프로디테는 인간의 마음 속에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기도 한다.
상아로 여인상을 조각했던 피그말리온이 아프로디테의 섬 키프로스 축제에서 경배를 하면서 정성껏 빈다. '저 조각상을 아내로 주소서'라고. 아프로디테는 그의 사랑을 어여삐 여겨 조각상을 사람의 몸으로 바꿔준다.


영웅 테세우스의 후처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토스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었으나 히폴리토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파이드라는 치욕감에 자결한다. 히폴리토스는 아버지에게 오해와 저주를 받고 죽음을 당한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맡기라고 말한다. "사랑은 자유다"라고.

그녀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며 자유부인이다.
아테나가 가부장제에 현실적이며 이기적으로 적응했다면, 아프로디테는 성의 자유를 외치며 가부장제의 억압되고 뒤틀린 성문화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여신의 자유분방함은 가부장 사회와 엄격한 기독교 윤리하에 철저히 비하된다. 자유분방한 아프로디테는 기독교의 도덕성 앞에 추락한다.
그래서 여신은 아프로디테 포르네(음탕한 아프로디테)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음란과 외설의 상징이 된다.
여신은 기독교 최고의 적이었다. 중세의 마녀재판에서 아프로디테가 최후의 진술을 한다.
"그래도 사랑은 자유다!" (p.140)


<물에서 태어나는 아프로디테> (테오도르 샤세리오,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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