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 윤문영 글ᆞ그림ㅣ 이윤진 영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디찬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있어요.
입을 꼭 다문 채, 눈을 똑바로 뜨고
건너편 일본 대사관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거짓말에 속아 마치 생가지 자른 듯
거칠게 싹둑 잘려 버린 머리카락.
아픈 세월에 몸부침치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소녀의 어깨에 앉아 있는 작은 새.
숱한 꽃송이의 순결을 난도질하고도
사죄할 줄 모르는 그들을 향한 분노와
평화에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꼭 움켜쥔 두 주먹.
아픔의 세월 속에 편안히 발을 디딜 수 없었던
할머니들의 삶을 상징하는
발뒤꿈치가 들린 맨발.
소녀 옆의 빈 의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빈자리이자
우리가 소녀 옆에 앉아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에요.
어느 추운 겨울날에는,
어린 소녀가 다가와 내 머리에 빨간 털모자를 씌워 주었어요.
낙엽이 흩날리던 어느 가을에는,
씩씩한 소년이 자기가 두르고 있던 노랑 목도리를 내 목에 둘러 주었지요.
언젠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에는,
경찰관 아저씨가 내게 우산을 받쳐 준 일도 있어요.
난 이제 알아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더욱 크게 눈을 뜨고 건너편을 보고 있어요.
할머니들이 어서 다 죽기를 기다리는
일본 정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어요.
금보다 귀한 사죄 한마디가 듣고 싶어,
죽어도 죽을 수 없는
할머니들 생각에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어요.
부산 동구청에 강제로 압수ᆞ철거 당했던
'평화의 소녀상'이 반환되고 일본영사관
(부산 동구 초량동) 앞에 재설치하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민심의 힘이란 이런 것임을,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