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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Feb 18. 2017

지식과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ㅡ 영화 <컨택트>의 원작, 테드 창의 소설 이야기


<컨택트> 덕분에 영화 이상으로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초판 발행 2016년 10월 14일(엘리 출판사)


원래 2004년도에 다른 출판사(행복한 책읽기)

에서 출간됐던 책인데, 8편의 단편 중 하나인

'네 인생의 이야기'가 영화 <컨택트>(2016)로 만들어지면서 새롭게 재발행된 듯하다.

이 책의 두번째 단편인 '이해'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님이 경이롭게 연출한 컨택트에 이어 어떤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게 될지!)


이 책의 저자 테드 창(1967~)은 중국계 이민 2세로 미국의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과학 소설가이다.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되는 네뷸러상, 휴고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캠벨상, 아시모프상, 세이운상, 라츠비츠상을 모두 석권한 소설

이라는데 이쪽 분야에 통 무지하여 이제서야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책 뒤표지에 적힌 문구처럼 말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8개의 단편 소설 뒤에 저창작 노트가 실려있다는 점이다. 저자인 테드 창이 각 소설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어떻게 얻었는지 어떤 생각을 바탕으로 쓰게 됐는지 엿볼 수 다.



이 책에 실린 첫번째 단편인 '바빌론의 탑'은 친구와 바벨탑 신화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영감을 얻어 쓰게 된 작품이라고 한다.



* 바벨탑 신화 -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던 때, 사람들이 공동작업으로 높은 탑을 쌓아 하느님이 계시는 천국에까지 향하겠다는 욕심을 품었고, 이 의도를 알아챈 신은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어 버린다. 이로 인해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 사람들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뤄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된 것이다.


저자는 바벨탑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래 그림이 연상되는, 공중에 뜬 환상적인 도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영화 <컨택트>의 '셸'을 떠올리게 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탑이 소설에서는 하나의 공간이 되고 세계가 된다. 실제 사람들이 하늘까지 맞닿은 탑을 쌓고 올라가고  탑의 정상, 즉 하늘의 천장에 도달한다.

그런데 도착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곳이(전혀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즉 출발점 되고 만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떤 이유에선가 하늘의 천장은 대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두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치 서로 맞닿아 있는 듯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들이 어떻게 서로 맞닿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골이 지끈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원통형 인장.
 원통형 인장 (오른쪽의 점토판 위에 그림이 새겨진 왼쪽의 원통형 인장을 대고 굴리면 하나의 그림이 형성된다)
점토판 위에서는 각자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인물도 원통 표면에서는 나란히 서 있을 수 있다. 세계는 이처럼 원통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천상과 지상이 점토판의 양 끄뜨머리에 각각 존재하며, 그 사이에 하늘과 별들이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왔다. 그러나 세계는 천상과 지상이 서로 인접하도록 어떤 현묘한 방법에 의해 둥글게 말려있는 것이다.
이제는 왜 야훼(하느님)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는지, 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왜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인간은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p. 50~ p. 51)



두번째 단편인 '이해'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이야기의 싹은 대학 시절 룸메이트의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사르트르의 《구토》 속 주인공은 그 어떤 것을 보아도 무의미함으로 느끼는 사람인데, 이와 반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의미와 질서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라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소설에는 호르몬 주입으로 초월적인 지능을 가지게 된 남자가 등장한다. 완벽에 가까운 기억력, 패턴 인식력, 데이터 베이스 침입, 위조 프로그램 제작, 신체 제어 능력, 새로운 언어 설계, 나 자신의 사고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 등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이과(물리학)와 문과(언어학)를 아우르는 저자의 확장된 사고력도 이와 맞먹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3류 신문에 흔히 실리는 마인드 컨트롤 광고를 연상케 하는 능력을 개발했다. 내 몸이 표출하는 방사물을 제어함으로써 타인의 정확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페로몬과 근육 긴장을 이용해 상대방이 노여움, 두려움, 공감, 성적 욕구를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친구를 얻는다거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에 충분하다.
타인에게서 자기 충족적인 행동을 유도해내는 것조차 가능하다. 특정 반응과 만족감을 결합시킴으로써 나는 바이오피드백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행동 강화 루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면 당사자의 신체가 이 반응을 자발적으로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 총수들에게 이 능력을 써서 내가 필요로 하는 산업 분야를 지원하도록 할 생각이다.
(p. 96~p. 97)


소설 속 '나'는 지능이 확장될 수록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 호르몬을 한 번 더 주입한다면 뇌 손상이나 광기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이 따른다 할지라도 '악마의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다.


여기에 자신과 같은 초지능을 갖고 있는 또 한명의 인간이 등장한다면? 그는 친구인가, 적인가.


지능을 수단으로 보는 자와 지능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보는 자의 한판 승부는?

 

만약 초지능을 갖게 된다면 무엇을 할 작정인가?


그들의 확장된 지능은 내 지식의 폭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내맘대로 이렇게 저렇게 추측을 해본다.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유방암과 투쟁하는 자기 아내를 소재로 한 폴 링케의 1인극을 본 후, 어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이야기에 변분 원리(소설에서는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가 거론된다)를 대입해보자는 아이디어와 친구에게 들은 갓 태어난 아기의 이야기가 결합되면서 쓰게 됐다고 한다.


저자가 인용한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

서문에 나오는 구절은 이 이야기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인내심을 가지도록. 제군의 미래는 제군을 잘 알고 있으며, 제군이 어떤 인간이든 간에 사랑해주는 개처럼, 제군의 발치로 달려와 드러누울 것이므로'


영화도 소설도 과학적인 이론은 여전히 어렵지만, SF를 뛰어넘어 언어를 통한 소통과 통찰의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시간과 사고를 해체하고 조합한다. 서사의 흐름에 시작과 끝의 경계가 없다. 결말에 이르러 처음과 끝이 하나로 연결됨을 깨닫게 된다. 만약에 라는 가정을 통해 인생에 대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찾아본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딘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p. 230)



이 책의 일곱번째 단편인 '지옥은 신의 부재'는 저자가 <예언>이라는 초자연적 스릴러 영화를 본 후,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실제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천사들이 지상에 강림하게 되는데,(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도 목격 가능한 현상으로 표현한다) 저자가 소설에서 그려낸 강림은 내가 막연하게 상상했던 것과 달리 불길이 치솟고 번개가 내리치고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피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축복을 가져다 주는 한편 다른 이들에게는 재앙을 가져다 준다. 같은 공간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떤 이는 참혹하게 죽거나 다치지만 어떤 이는 찰과상조차 입지 않고 살아남는 것처럼..


때때로 선함에도 또는 아무 죄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자연 재해를 비롯고통을 받는 것에 대해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독실한 믿음이 없는 나같은 사람이 가질 만한 의구심일까.)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지옥 역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곳과 다르다. 신을 믿지 못해서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의 제목처럼 '지옥이 곧 신의 부재'라는 결론을 주인공 '닐'의 이야기를 통해 이끌어낸다.


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 의롭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p. 362)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p.  363)


이 작품의 결말 역시 일반적인 사고의 틀을 깬다. 저자는 소설 속 인물들을 빗대어 의문을 제기한다.

종교적으로 생각하면 민감한 내용일 수 있지만 한번쯤 의문을 품었던 것에 대해 유의미한 가정도 해볼 수 있음에,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철학적인 사유를 가능케 하는 저자의 치밀한 서술력이 놀랍다.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이 책에 실린 4편의 중단편을 읽고나니 머릿속이 묵직하다. 나머지 4편은 좀 쉬었다 읽어야겠다.

읽는 것보다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내 얕은 지식과 미약한 필력으로 명쾌하게 써내려가지 못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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