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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Feb 22. 2017

쓴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다 《작가 수업》

ㅡ 재고(再考)를 통한 제고(提高)의 과정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다

이디스 워턴




이런 글이 쓰고 싶다.


내 글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여다보겠지만

나만 자꾸 들여다보는 글이 아닌,

한번보고 마는 글이 아닌,

자꾸자꾸 꺼내고픈 글.


트집 잡고 싶은 글이 아니라,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하고 싶은 글.


(어느 날 메모해두었던 글 중에서)


글을 써나가면 써나갈수록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더 짙어진다.

쓰는 양에 비례해서 실력이 느는 게 아니기에

쓰다가도 어느 순간 주춤하게 되고

이렇게 써나가는 게 맞는건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다시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글이 잘 써진다 싶다가도 어떤 때는  써놓은 글이 형편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이상 진전이 없는 거 같아 낙담하기도 한다.


난 그저 글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지 내가 감히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글 쓰는 모든 분들은 작가라고 생각하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건 예의와 존중이 바탕이 된 호칭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브런치에서 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뭔가 내 글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가끔 아주 가끔 우쭐해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어색하고 내게 맞는 옷이 아닌 거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다.

갈 길이 먼 꿈이지만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낸다면 라는 이름이 어울리게 될까. 겪어본 적 없어 막연히 상상만 해보지만 혹시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게 되는 건 아닐까.


글은 결코 뚝딱 써지는 게 아니기에 이런 끊임없는 고민들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로 하여금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게 하고 글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기도 하다.


《작가 수업》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 강미경 옮김       (2016년 4월 25일 1판 16쇄 펴냄)


쓴다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들이 머릿속을 부유(浮遊)하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34년이라는데 이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 수업》 이라는 제목이 거창하고 딱딱하고 막연하게 느껴져 망설여지긴 했으나 조금 읽다보니,

글을 쓰며 느끼는 막막함, 어려움, 자기 부정의 감정, 감정의 기복, 인격의 분열, 낙담의 수렁 등..

 '이거 내 고민인데..'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고개를 끄덕이고 연필을 들고 밑줄 긋기 시작한다.


존 가드너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저자 도러시아 브랜디글 쓰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염두에 둔다. 어떤 문장에서는 내 얘기같아 찔리기도 하고 어떤 문장에서는 아프기도 하고 어떤 문장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유부단하거나, 수줍음이 많거나, 귀가 얇은 작가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원고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경우라면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법과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거장의 노련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필치를 배우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p. 34)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저 꿈을 꾸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 꿈이 지니는 매력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작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 완결지어야 한다.
문체나 정확성만 가지고 겨우 글 몇 쪽 쓴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체, 내용, 설득력을 두루 갖춘 글을 분량에 상관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p. 45)

혹시 쓰는 이야기마다 모두 비슷하지는 않은지 두렵고, 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두 번 다시는 이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는 이 작가만한 유머나 저 작가만한 독창성이 없기 때문이다. 백 가지 이유를 대며 자신을 의심하는 사이 그의 자신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진짜 천재의 작품을 읽어보니 재능 차이가 그의 희망을 모조리 집어삼키고 남을 만큼 커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이따금 자신의 재능이 살아 요동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런 기간은 몇 달 또는 몇 년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러한 낙담의 기간을 경험한다.(p. 46)

주의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즉 자신을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고 귀찮게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대고, 충고를 늘어놓고, 불평을 쏟아내선 안 된다.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을 때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철저하게 임하되, 개선책이 나오는 대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에 또 필요해질 때까지 자기 분석일랑 모두 잊고 생활해야 한다. (p. 109)


뒤에 이어지는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들(습관에 관한 조언, 무의식의 활용, 습작의 정석 등)은 읽으면서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실천해나가야 하겠지만.


표지의 그림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 책을 읽기 전엔 무지하여 표지 그림의 인물이 이 책의 저자인줄 알았다.

(이 책의 저자는 저명하신 여자분이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의 사진은 윌리엄 서머싯 몸, 아래 사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가의 모습이다.)

책상에 앉아 을 들고 을 쓰고 교정하고..글 앞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진지해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살갑게 느껴진다.


작가의 근본 문제는 개인의 문제, 즉 자신감, 자존감, 자유의 문제라고 하는 얘기에 동감한다.

그리고 침체의 늪에 빠져 고전 중인 작가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작가든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어떤 사고와 행동 습관이 진전을 가로막는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어떤 힘이 자신감을 좀먹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나는 왜 어느 분처럼 재밌게 쓰지 할까, 나는 왜 그분들처럼 공감가게 쓰지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비교하기 시작하니 자학하고 자괴감에 빠져 나 자신을 괴롭히고 부정하는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다.

급기야 자신감은 극도로 떨어져 글 하나 올릴 때마다 조심스럽고 조바심이 든다.

물론 이런 것들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나 결국 문제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도 안되겠지만, 우선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극복해낼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되고 나 스스로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른 데에는 감사하게도 늘 곁에 이 있었고 조력자가 있었다.(말씀 안드려도 그분들은 알고 계실거다)


이 책을 읽으며 절실하게 와닿는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글로 정리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 과정이 단순히 재고(再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의 글쓰기가 제고(提高)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가져본다.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라.

진정한 열정이 솟아오르거든 할 말을 모두 하라.

정열적으로 말하라.

D. H 로런스



* 귀한 책을 선물해주신 퓨쳐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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