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똥'이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그것 뿐이랴. '똥'이 들어간 말 또한 얼마나 재밌어 하는지 모른다.
'똥구멍, 똥꼬, 똥덩어리'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속에도 '똥'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똥' 얘기가 나오니까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이 있는 집이면 한 권씩은 있거나 아마 모를 리 없는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에 나오는 각 동물들의 똥 떨어지는 의성어를 읽어줄 때마다 아이가 깔깔깔 웃으며 한창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간혹 들춰보지만 여전히 재밌다!
발음할 때 동그랗게 말리는 입모양이 즐거워서일까.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 때문일까.
제일 처음 '똥'이라고 명명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밥을 먹을때 '똥' 얘기하면 밥맛 떨어진다고 하지만 아이한테는 예외다. 아이가 있는 우리집도 그렇고.
밥 먹다 말고 아이가 " 똥 마려" 하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아이가 있어서인지 내게 '똥'은 더없이 친근한 단어이면서 중요하고 소중한 단어이다.
흔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라고 하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변비로 고생해 본 분들은 잘 알 거다. 나 역시도 변비에 좋다는 온갖 약을 다 먹어봤고 아이도 아기 때 변비로 엄청 고생한 적이 있었기에. (관장도 하고 급기야는 직접 비닐장갑 끼고 손을 넣어 염소똥처럼 땅땅하게 뭉쳐있는 똥들을 직접 꺼내 준 적도 있었다. ) 그리고 노년에 있어서도..
'똥'이라는 말은 원초적이면서도 가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똥'이라는 단어는 가려 쓰거나 다른 말로 대체해서 써야 하는 말이 되고 만다.
('똥'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면서 가식적이 되어가는 걸까.)
안도현 작가님도 '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신 적이 있다. 《발견》이라는 책에서 '똥, 이라는 그 귀여운 말'이라고 표현하셨었다. 정말이다.
의도치 않게 똥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는데, 경위는 오늘 낮에 겪은 아이와의 일화에서다.
하교 후,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후다닥 바지를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큰 볼일을 보면서 큰 소리로 오늘도 역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 : 엄마, '이름'이 뭐야?
나 : ..응?
내 이름을 모를 리 없는 아이의 질문의 의도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나.
아들 : '이름'이란 게 뭐냐구!
'이름'의 정의를 묻는 거구나.
나 : 이름이 이름이지..;;
라고 싱겁게 대답해주다가 이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런 시가 있거든?
아이한테는 당연히 금시초문일 김춘수 <꽃>의 한구절도 읊어주며,
"'야!' 라고 하는 것보다 'ㅇㅇ야' 라고 이름 불러주는 게 더 좋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 사람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거야."
"우리가 부르는 것에 저마다 붙인 이름이 있고..혼자 아무렇게나 부를 수 없는..어쩌고 저쩌고.."
골똘히 생각하는지 대답이 없길래 아무래도 아이한테는 친근한 '똥'을 예로 들어야겠다 싶어, 내가 좋아하는 '장미'와 아이가 좋아하는 '똥'을 바꿔 불러보기로 했다.
나 : '장미' 다 쌌니?
볼 일을 다 봤는지 시원하게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아들이 키득거리며 나온다.
아들 : 그럼, '똥'에 가시가 있는 거네?
그러더니 "'똥' 냄새 향기롭다!"며 중의적으로 들리는 말로 나보다 한 술 더 뜬다.
아이랑 한바탕 웃으며 우린 또 아무렇지 않게 밥을 맛있게 먹었고, 난 이렇게 아이 덕분에 글감을 또 하나 얻어 소소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