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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Apr 24. 2016

《배고픔의 자서전》

발칙하고도 은밀한 유년 시절의 기억

《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ᆞ전미연 옮김

오랜만에 집이 아닌 근교 여행지에서 책을 읽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빠알간 조명을 켜고..


겹겹이 쌓여있는 책 중에서 나와 함께 집에서 해방된 책은 독서가 지인의 20대를 함께 한 아멜리 노통브ㅡ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으며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노통브의 다른 작품들로는 <사랑의 파괴>,<불쏘시개>, <오후 네시>, <시간의 옷>, <공격>, <머큐리>, <두려움과 떨림>, <배고픔의 자서전>, <아버지 죽이기>등이 있다ㅡ

의 책들 중 우선 순위로 읽어보라고 했던 《배고픔의 자서전》


아, 정말 '오묘하고도 절묘한' 지인의 추천과  선택이 아니었나 싶은 책이다.


보편적인 일상이 아닌 저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유년 시절의 어느 한 부분의 기억이 자극되어 그 기억을 떠올려본다.

나도 발칙하고 은밀한 행위와 상상을 아무도 모르게 즐겼던 소녀였고,

같은 동성에 대한 흠모의 감정으전전긍긍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이방인처럼 느껴져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에 시달렸었고,

때로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사랑을 갈구하고,  

때로는 좌절감으로 모든 것을 향해 증오심을 분출했던,

어느 한 시기가 분명 있었다.

(작가는 이 모든 걸 고작 일곱여덟 살 남짓 유년기에 이미 다 겪고 알아버렸다고 말한다. 나는 중고등학생때까지 겪은 일을..그러고보면 난 뭐든지 늦다..)


여러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책이지만 적어도 이 책 속의 한 소녀의 관점에서만큼은 모든 건 배고픔에 귀착되므로 다시 난 '배고픔'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내 배고픔을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자. 음식에 대한 배고픔일 뿐이었다면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있을까? 음식에만 배고픈 게? 보다 광범위한 배고픔의 징표가 아닌, 단순한 밥통의 배고픔이라는 게 있을까?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


배고픔은, 진정한 배고픔은, 벼락같이 느껴지는 식욕이 아니라 가슴을 풀어헤쳐 영혼의 본질을 빼내 오는 배고픔이요, 사랑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위대한 연인들은 다 배고픔의 학교에서 배웠다.


나는 배고픔을, 배고픔들을, 내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의 배고픔을, 심지어는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 자체까지도 증오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을 증오했다. 돌만이 예외였다. 나는 돌이 되고 싶었다.



나의 이 배고픔은 무엇을 향한 배고픔일까.


나는 원초적으로도 배고픔을 잘 느끼지만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


이것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대는, 하염없이 책에 파고드는 이유일까.

감히 그녀처럼..


독서는 감탄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나는 자주 감탄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독서는 알코올과 함께 내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 되었다. 이제 나의 독서는 이 수수께끼같은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였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육체적인 행위였다. 내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세포 조직 비슷한 것을 이루어 내 몸이 되었다.

작가의 내밀한 기억을 풀어내는 상상력과 감수성,

독창적이고 색다른 재미와 맛을 주는 재능 넘치는 글쓰기의 진수를 보여준 책 《배고픔의 자서전》


불현듯 드는 생각

조숙함이 작가의 재능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배고픔의 자서전》 작가의 소녀 모습에서

오래전 읽었던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이나 오정희작가님의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 소녀 모습이 투영된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기억력과 지식의 한계다. 경험의 폭도 좁으니..

그래서 나는 지극히 평범한 글을 쓰는 범인凡人인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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