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한 변호사 Sep 25. 2024

범인은 둘 중 하나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항소심 제1회 공판기일]


"벼.. 벼.. 변.. 호사님! 저.. 오늘 구속되는 겁니까?"

"아니, 재판에 술을 드시고 오시면 어떡합니까?"

"너무 불안해서..."

"오늘 구속은 절대 안 되시니 걱정 마세요"

"아이고.. 전 또 바로 교도소 가는 줄 알고..."

"얼른 화장실에 가서 세수부터 하고 오세요"


항소심 첫 기일에 법정 앞에서 만난 동철은 술에 취해 있었다. 1심 재판 내내 교도소에서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무죄판결 선고 후에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던 동철은, 항소심에서도 바로 구속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미리 말해주지 못한 내 실수였다. 나는 동철에게 최대한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술김에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겠고, 술을 마시고 재판에 왔다는 것 자체가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줄 리 없었다.


동철의 죄명은 살인죄였다. 그리고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된 경우 항소심 변호사는 크게 할 일이 없다. 1심 무죄 판결문에 적힌 내용이 곧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무죄 변론 내용이 되고, 검사가 항소심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는 경우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것이 다시 항소심에서 유죄로 바뀌는 경우는 더 희귀한 경우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조금 달랐다. 1심에서 유일한 목격자가 행방불명으로 재판에 출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검사는 목격자를 항소심에서 증인으로 다시 부르겠다고 했고, 이미 목격자의 소재를 확보한 상태였다.


[사건의 내용]


동철과 창수, 정호는 친구 사이다. 세 사람은 사건 당일 새벽 동철의 집으로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정호가 가슴 부위를 칼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범행도구는 동철의 집에 있었던 칼이었고, 신고자 또한 동철이었다. 동철은 세 사람이 같이 침대 위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자신은 먼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 아래쪽에 정호가 칼에 찔린 채 엎드려 죽어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동철의 집 입구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건 전날 밤 11시쯤 세 사람이 동철의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오후 1시경 동철이 경찰에 신고를 할 때까지 동철의 집에 들어간 사람은 세 사람 외에는 없었다. 결국 정호를 죽인 범인은 동철과 창수 둘 중 하나였다. 경찰은 즉시 두 사람을 모두 용의 선상에 두고 수사를 시작하였다. 사실 두 사람에게는 모두 수상한 점이 있었다.


CCTV에 찍힌 창수는 아침 7시경 한 손에 범행도구인 칼을 들고 비틀거리며 집에서 나왔다. 창수는 집 앞 나무에 칼을 꽂아두고 길바닥에 잠시 누워있다가, 지나가던 동네 사람에게 119를 불러 달라고 부탁한 후 출동한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안에 칼에 찔린 사람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간 이후 경찰에 신고하거나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 경찰이 찾아와서 당시 입었던 옷을 요구하였는데 옷은 깨끗하게 빨려 있었다. 창수는 경찰에서 동철이 정호를 찔러 정호가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동철은 오후 1시경 경찰에 정호의 사망을 신고하였다. 그런데 경찰이 통화기록을 확인하자 아침 9시경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30분 이상 통화한 기록이 확인되었고, 신고 직전에는 친한 선배와의 통화기록도 확인되었다. 동철은 여자친구와는 침대 위에서 누운 채로 통화하여 아래쪽에 정호가 사망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통화 후 다시 잠들었고, 오후 1시경 통화는 시체를 발견 후 너무 놀라 아는 선배와 먼저 통화를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선배에게 확인한 결과 동철은 그에게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산에 가서 묻어버릴까요?"라고 했다는 진술이 확보되었다.


경찰은 동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수사를 본격화하였다. 창수와 동철 둘 다 수상한 점은 있었지만 동철은 잠이 들었다고 하여 사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창수는 동철이 정호를 찌르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하면서 당시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질조사까지 거쳐 동철은 경찰에게 자신이 칼로 정호를 찔렀다고 자백하였다. 현장검증에서는 자신이 정호를 찌르는 장면을 직접 재연하기까지 하였다. 사건은 이렇게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반전은 1심 재판에서 일어났다. 동철은 돌연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고, 경찰에서의 자백은 몸이 아픈 자신에게 경찰이 밥과 약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자백을 강요하여 거짓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더구나 창수는 법정에서 수 차례 증인으로 소환하고 소재탐지까지 하였지만 결국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형사소송법에 따라서 동철이 경찰에서 했던 자백과 창수가 수사과정에서 했던 진술은 모두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심 판사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피고인과의 접견]


접견과정에서 만난 동철은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주장했다.


"변호사님 저는 진짜 억울합니다. 자다 깨서 깜짝 놀라 신고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왜 본인이 했다고 자백하셨어요?"

"그거야 제가 아픈데 경찰에서 약도 안 주고 밥도 안 주면서 계속 굶겼습니다. 정신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부인해 봤자 처벌만 더 크게 받을 것 같아서 그랬지요"

"창수씨가 2심에서 증인으로 나오면 저희가 많이 불리해질 수 있어요"

"창수 그놈은 지가 죽여놓고 재판에서 들통날까 봐 재판에 출석도 못한 거 아닙니까?"


항소심에서 창수가 출석하여 경찰에서 했던 진술을 다시 한다면 유죄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았다. 자백했다 입장을 바꾼 동철보다는 일관된 창수의 진술을 더 신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심과는 완전히 다른 변론전략을 세워야 했다.


[항소심 제2회 공판기일]


예상대로 다음 기일에 창수는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황당하게도 창수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 원래 날이 따뜻해지면 집을 나가 노숙생활을 하다가 추워지면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여름에 진행된 1심에서는 집에 없었으나, 겨울에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집에 있어 소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정호가 동철이를 보고 '절름발이', '병신'이라고 하면서 놀렸어요. 그랬더니 동철이 침대 옆 탁자에서 칼을 꺼냈는데, 정호는 그래도 계속 '찔러봐라, 찔러봐라' 하면서 깐죽댔어요. 그러자 동철이 '이 새끼가'라고 하면서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면서 칼을 쭉 내밀어 정호를 찔렀습니다. 정호는 칼에 찔린 후 바로 침대에서 떨어져서 엎어졌고요.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나왔고, 내가 "119 불러 줄까?"라고 하니 정호는 '으으으으' 하고 신음소리밖에 못 냈어요. 동철은 정호를 찌른 후 벽에 기대어 침대에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조용히 20분 정도 기다리다가, 또 칼부림이 날까 봐 걱정돼서 동철이 옆에 놓여 있던 칼을 몰래 들고 나왔습니다."


창수는 목격 장면을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법정에서 직접 재연까지 했다. 동철이 정호를 더 찌를까 봐 칼을 들고 나왔고, 나중에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하여 나무에 꽂아 두었다는 것이다. 119를 불러놓고 혼자 구급차를 타고 집에 간 이유는 정호가 칼에 찔리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술에 많이 취해 스스로 귀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에 가서 피가 묻은 옷을 세탁한 이유는 옷을 벗어두었더니 어머니가 평소대로 세탁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창수의 진술은 구체적이긴 했지만 시간관계가 뒤죽박죽이었다. 칼에 찔린 사람을 두고 혼자 119를 불러 집으로 돌아간 창수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의심스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재판부는 창수가 당시 술에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사실조회]

 

나는 먼저 동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실조회를 보냈다. 


구치소에서 온 사실조회 회신은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동철은 경찰이 자신에게 약도 주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지만, 구치소 기록에는 병원도 데려가고 밥도 병원에 가기 직전 검사 때문에 1끼를 굶은 것 빼고는 모두 제공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동철이 평소 다니던 병원에서 온 사실조회 또한 크게 의미가 없었다. 동철은 왼쪽 다리가 좋지 않아 다리를 저는 상태였는데, 침대에 앉아 있다가 바로 몸을 일으켜서 정호를 찌를 수가 없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온 사실조회 회신은 동철의 다리에 이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앉은자리에서 바로 일어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답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동철은 억울해하며 재판 도중 법정 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절뚝거리는 모습과 법정 바닥에 앉아 바로 일어날 수 없다면서 낑낑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연(?)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긴장이 풀렸는지 비교적 자연스럽게 걷는 바람에 검사가 "저기 보십시오. 지금 똑바로 걷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샤우팅을 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새로운 변론전략]


나는 사건 당시 집 안에 있던 핏자국에 주목했다. 당시 집안에는 정호가 피를 흘린 흔적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특히 출입문 앞쪽에 뿌려진 것 같은 핏자국이 많이 발견되었다. 창수의 진술에 의하면 정호가 칼에 찔린 곳은 침대 위이고 바로 바닥에 쓰러졌는데, 왜 출입문 앞쪽에서 핏방울들이 이렇게 많이 발견되었을까? 사람이 칼에 찔리면 순간적으로 찔린 곳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며 뿌려질 수 있다. 혹시 이 핏방울들은 누군가가 문 앞에서 정호를 찔러다는 증거는 아닐까?


내가 의견서에 이런 의문을 제기하자, 검사는 추가 증거를 제출하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현장에 있던 혈흔을 분석한 보고서였다. 국과수에는 '공업사'라고 하여 핏자국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핏자국의 모양이나 크기·개수 등을 통해 생전에 어떤 상황에서 피가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 앞에서 발견된 핏자국은 칼에 찔렸을 때 발생한 핏자국이 아니라 누군가가 피가 묻은 신체나 물체를 강하게 털었을 때 피가 비산한 흔적으로 보인다. 위치로 봤을 때는 허리보다 아래 높이에서 피 묻은 물체를 털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철이 앉아 있었던 침대 오른쪽 시트에서 핏자국과 핏방울 3개가 발견되었다. 핏자국은 피가 묻은 어떤 물체를 놓아두었을 때 묻은 것으로 보이고, 핏방울은 원형 형태로서 피가 묻은 물체에서 피가 바닥으로 떨어진 자국이다.


검사는 문 앞 핏자국은 피해자가 피가 묻은 양말을 바닥을 향해 강하게 털어서 난 것이라고 봤고, 침대 시트의 핏방울과 핏자국은 동철이 정호를 칼로 찌른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서 핏방울이 동철 오른쪽에 떨어졌고, 칼을 침대에 놓으면서 침대에 핏자국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결국 피해자 정호의 시체를 부검하였던 부검의와 국과수 소속 공업사가 증인으로 신청되었다.


[항소심 제3회 공판기일]


먼저 부검의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었다.


"하대정맥 절단으로 인한 과다출혈이 사인이라고 하셨는데, 하대정맥 절단이 되었다면 보통 사망까지 이르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거의 10여분 정도이고, 분단위로 치명적 상태에 이르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피해자가 바닥에 엎어지고 피가 바닥에 A4용지 크기 정도로 흥건하게 흘러나왔으며, 약 20분 뒤 방에서 나왔는데 그때 피해자는 미동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피해자가 다시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있나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미 대정맥 절단으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20여분 정도가 지났는데, 그 사람이 다시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음은 공업사에 대한 증인신문이었다.


"증인, 침대 위에 있던 핏자국이 피가 묻은 물체에서 떨어진 핏방울 자국이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핏자국의 모양이 가만히 있는 물체에서 똑똑 떨어지는 모양과, 움직이는 물체에서 떨어지는 모양이 다르지요?"

"네 그렇습니다."

"침대 위에 있던 핏방울은 어떤 모양인가요?"

"피가 묻어 있던 물체를 바닥을 향해 힘차게 털었을 때 나타나는 핏자국입니다"

"그럼 칼로 상대방을 찌르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칼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진 핏자국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동철에게는 아주 유리한 증언들이었다. 부검의의 법정 증언에 의하면 창수가 진술한 내용은 거짓이 된다. 창수가 목격한 사실관계와 부검의의 증언을 합하면 온 집안에 묻어 있는 피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업사의 진술 또한 의미가 있었다. 동철은 창수가 정호를 칼로 찌른 후, 피 묻은 칼을 동철의 옆자리에 살짝 털어 핏자국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여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정도면 무죄가 나지 않을까 싶은 기대까지 들었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되었다.


공업사는 재판 이후 증언을 바꾸었다. 국과수로 돌아가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어보니 칼을 찌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그런 핏자국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 증언은 자신이 잘못 증언했으니 의견을 바꾼다고 하며 새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인공피를 묻힌 칼을 들고 흰 천 위에서 직접 실험을 한 영상도 보내왔다. 10번의 실험 중 2번이 이 사건에서 발생한 핏방울과 유사한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부검의가 진술한 내용도 반대되는 의견이 나왔다. 재판부에서 전문위원으로 선임되어 있는 2명의 의사에게 의견 제출을 요청하였다. 하대정맥절단으로 쓰러져 약 20분간 미동이 없던 사람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돌아다닐 수 있는지 가능성을 물어본 것이었다. 1명의 의사는 부검의 의견과 같이 그럴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으나, 나머지 1명의 의사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 하대정맥절단으로 흘러나오는 피가 혈전을 형성하여 오히려 상처부위를 막아 지혈이 되면서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의사생활을 하면서 그런 경우를 목격한 적이 1번 있었다는 것이다. 평생 의사생활을 하며 1번 있었던 희귀한 경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답변은 재판부에게 유죄판결을 쓸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재판 결과]


사실상 재판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그 뒤 몇 번의 공판이 더 열렸지만, 재판부는 증인의 증언과 피고인의 태도 등을 통해 이미 유죄의 심증을 굳혔던 것 같다. 결국 동철은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선고 이후]


진실은 나도 알 수 없다. 사실 재판 과정에서 나도 창수보다는 동철이 범인일 가능성이 조금은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철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든 정도는 아니었다. 유죄판결은 "피고인의 유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었을 것을 요구한다. 과연 동철의 유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고려하면, 동철이 범인일 가능성이 50%, 창수가 범인일 가능성이 50%라면 둘 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둘 중 하나는 범인임이 확실한 상황에서 둘 다 무죄가 되는 결과를 피해자의 유가족이, 또는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동철은 꽤 오랫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나에게 결과를 떠나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는 별 연락이 없었는데, 우연히 동철의 1심 재판을 담당했던 변호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해당 변호사에게는 편지를 자주 보낸다고 한다. 무죄판결을 받아주었던 변호사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욕을 하지는 않더냐고 물어보니, 다행히 내 욕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애쓴 건 알겠어서 욕은 못하겠는데, 무죄가 유죄로 바뀌었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들어 편지는 하기 싫은 그 애매한 마음. 이해가 갔다. 나도 심정적으로 피고인이 범인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변론을 잘하지 못해 유죄가 된 것 같기도 하여 미안하면서도 안 미안한 애매한 마음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 앞에 선 모정과 부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